김 ‘통합당 잠룡 견제’ 안 ‘대선주자 도약’ 이해관계 일치…목표 지향점 달라 보수대통합 불투명
2017년 11월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오른쪽)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기본소득’ 이슈를 둘러싼 논쟁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의제를 먼저 꺼내든 이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6월 3일 통합당 초선 모임에 참석해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인데, 법 앞에 만인이 평등 같은 형식적 자유는 의미가 없다”며 “국민의 물질적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해야 하느냐가 정치의 기본 목표”라며 기본소득 도입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다음날도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고용문제가 심각해지고,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 소득보장이 필요하다”며 “보편적 기본소득은 불가피하다. 재원 실현성 검토 작업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의제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을 두고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SNS에 “기존 복지체계 구조조정과 증세가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청년층 노인계층만 한다면 청년수당 확대나 기초노령연금 인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빵을 살 자유를 드리기 위해 굳이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것이냐” 등의 글로 김 위원장을 비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6월 9일 국회에서 열린 특강에서 “진보의 아류가 돼선 영원히 2등”이라며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며 기본소득 등 진보적 의제로 당의 ‘보수색 희석’에 나선 김종인 위원장을 겨냥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던진 화두를 놓고 내부 비판이 거센 가운데, 정작 외부에선 긍정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대표적이다. 안철수 대표는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 이슈를 제기하자 “어려운 계층에 우선 배분돼야 한다는 개념에 따라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하겠다”고 호응했다.
김 위원장이 ‘전일보육제’도 언급하자 국민의당은 논평을 통해 “전일보육제는 안철수 대표가 이미 2018년부터 미래교육공약으로 주창해온 ‘온종일 초등학교’와 궤를 같이 한다”며 “여야 정치권은 평등교육의 가치를 실천하고 혁신적 인재양성을 위한 ‘전일교육제’에 대승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 공감대 형성을 계기로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가 연대 및 통합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과 통합당 연대 가능성은 4·15 총선 전부터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안 대표는 여러 번 부인했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1월 귀국길에서 당시 최대 화두였던 중도·보수 통합 논의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자유한국당(현 통합당)과의 통합에 선을 그었다. 이어 2월에도 선거연대·통합설이 제기되자 “투쟁하는 중도 정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고, 3월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의 통합 제안에도 “실용적 중도정치의 길을 가겠다”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접어들면서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더 희박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안철수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 간 과거 악연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 ‘정치 멘토’로서 그를 정치권에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여부, 김 위원장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비대위원장 취임, 2017년 대선 막바지 ‘개혁공동정부’ 구성 등을 거치며 입장이 갈리고 서로를 향한 비판을 이어가며 관계가 멀어졌다.
4월 총선에서도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특별하게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2017년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은 시효가 끝났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공통분모를 늘려가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 입장에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김 위원장은 보수진영 기존 잠룡들을 차기 대선에 내세울 계획이 없어 보인다. 대권주자들도 이를 알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고 당내 두드러지는 새로운 잠룡 후보군도 안 보이고, 키워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에게 안철수 대표는 당내 잠룡들을 견제할 좋은 카드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 역시 세를 확장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통합당이 필요하다. 안 대표는 새로운 중도정치를 표방하며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총선에서 3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차기 대선에 다시 나서기 위해서는 통합당과의 연대 및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6월 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 틀을 갖고는 (대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테니 새로운 기반을 구축해보겠다고 생각하면 통합당에 노크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당과 국민의당 의원들 간의 접점은 이미 만들어졌다. 두 당 의원들은 공동연구모임 ‘국민미래포럼’을 결성했다. 통합당 황보승희 의원과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통합당에서는 유의동 김병욱 김웅 윤희숙 의원이, 국민의당은 최연숙 의원 등 20여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 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혁신준비위원회 1차 회의 및 총선평가회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의 정책 동조가 연대를 넘어 보수대통합까지 이뤄낼지는 불투명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현재는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져 기본소득제 등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공감대 형성은 각 당의 정체성 문제까지 건드리는 것은 아니니 부담이 없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이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연대와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당의 정체성도 맞아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최종 목표로 가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의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둘의 목표지향점이 달라 결국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 국민의당에 몸담았던 전직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은 민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 안철수 대표도 그 후보 중 하나로 보고 있을 것”이라며 “반면 안철수 대표는 본인이 대선후보가 돼야 한다. 보수 재집권을 위해선 후보직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안 대표는 그게 없다. 그 타협점이 없기 때문에 결국 통합까진 어려우리라 본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