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국 속 ‘K-좀비’ 열풍 이을 수 있을까…캐릭터 케미는 ↑, 투박한 스토리는 ↓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살아있다’는 아파트 등 인구밀집지역으로 갑작스럽게 퍼진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한 좀비 사태가 불거진 가운데, 아파트에 홀로 갇힌 ‘준우’(유아인 분)가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 분)을 만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행으로 집을 비운 부모님을 배웅조차 하지 않고 늦잠 삼매경에 빠져 있던 준우의 즐거운 백수 생활은 갑작스럽게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진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의 아파트 주변에 누가 봐도 좀비 같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들은 전화도 받지 않고, 사람들의 연이은 통화 시도로 통신 데이터가 불통이 돼 음성메시지조차 전달이 되지 않는다.
영화나 게임으로 쉽게 접했을 이 같은 재난 사태를 두고 준우는 희한하게도 태평해 보인다. 언젠가는 신호가 닿겠지. 통신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늘 하던 게임을 켜고, TV에서 뉴스 속보를 보내주는 중간에 송출한 라면 광고를 보고 ‘최후의 식량’으로 아껴두던 컵라면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흔해빠진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생존자들이 그렇듯 초반부터 패닉에 빠지는 모습도 없다.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좀비들이 사람 살을 물어뜯는 세상 안에서 맥이 풀릴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준우를 보며 위화감을 느낄 관객들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영화는 준우가 이처럼 태평한 것에 대한 이유로 미디어의 역할을 보여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뉴스에서는 생존에는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수박 겉핥기식 분석이 이어지고 좀비 바이러스 속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정신 다스리기’ 요가를 추천한다. TV만 보고 있자면, 요가를 통해 좀비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일도 있을 법 해 보인다. 간간히 스크린에 등장하는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TV화면을 보다가 현실로 눈을 돌리면 부조리의 극치가 들어온다.
휴대전화 데이터와 와이파이에 대한 무한정 맹신도 준우의 우유부단함에 한 몫 한다. 공기만큼이나 주변에 당연하고도 막연하게 존재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데이터와 와이파이가 존재하는 한 준우의 아파트는 좀비로 들끓는 세상과는 유리된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짐과 동시에, 현대인으로 표현되는 준우의 패닉이 시작된다. 이제까지의 고립이 단순한 물리적 고립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완벽한 세상과의 단절이 된 셈이다.
이처럼 데이터와 와이파이를 잃은 현대인이 생의 지푸라기를 놓아버리려는 사이 ‘현대인이지만 현대인 같지 않은’ 또 다른 생존자 ‘유빈’이 등장한다. 자동화된 현대문물에만 익숙한 준우와 달리 유빈은 서바이벌에 특화된 생존자다. 취미 또는 직업으로 등반을 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빈은 집 안에 텐트 요새부터 부비트랩까지 살아남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 아버지의 양주를 몰래 따 마시고 물대신 맥주를 들이켜 관객들로 하여금 이마에 손을 짚게 한 준우와는 완벽한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한 손에 손도끼, 다른 한 손에 로프를 들고 ‘일기당천’을 펼치는 유빈의 모습은 단순한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서바이벌과 탈출극으로 향하는 장르의 변화를 단 한 신으로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박신혜가 이제야 제 캐릭터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어설프면서도 귀여운 면모로 또 한 번의 변신을 보여준 유아인의 준우와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도 만들어내는 티격태격 케미는 두 배우의 팬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이 영화의 백미다.
‘#살아있다’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는 이처럼 서바이벌과 탈출극으로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생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다’에 담겨 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소 세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질문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끼워 넣은 장치는 투박하고, 단순한 메시지만이 요철처럼 부각돼 장르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단점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휴대전화 데이터와 와이파이가 모두 단절된 세상이라는 배경은 일견 새로워 보이지만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중후반부에서는 그 새로움마저도 변색된다. ‘부산행’ 배경 속 ‘엑시트’를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 속에 ‘#살아있다’ 만의 특별하고, 그래서 더 돋보이는 차별점이 없다는 것은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유아인과 박신혜는 ‘#살아있다’로 첫 호흡을 맞췄다. 두 배우 모두 독특한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5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살아있다’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유아인은 이에 대해 “부담스러웠지만 굉장히 즐기면서 호흡을 조절하고, 밸런스를 잡고 루즈해지지 않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배역이었다. 또 그런 걸 허용해주시는 현장이었다”라며 “많은 분들이 인식하는 유아인의 강렬한 느낌 외에 친숙하고 귀여운 옆집 청년 같은 느낌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전사 캐릭터로 분한 박신혜는 “지금까지 찍었던 장르와는 다르게 제가 근래에 촬영한 작품 중 가장 즐겁게 찍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뭔가 많은 생각을 일으켜 머리를 복잡하게 하기 보다는 생존에 관한, 생명에 관한, 나의 삶에 대한 것이 후반부로 갈수록 전달이 되는 것 같다”며 “지금 힘든 시기에 있지만 저희 영화를 보시면서 비록 힘들고 지치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그러다 보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라고 전했다.
한편 ‘#살아있다’는 오는 6월 24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98분.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