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독식 추경 독주 민주당 ‘승자의 저주’ 우려…국회 복귀해 ‘민생정책 실패’ 파고들 예정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론조사에서도 통합당 지지율은 오르고 있다. 통합당은 7월 국회 복귀를 선언, 먹고사는 문제로 승부하면서 여당이 지난 3년 동안 한 일을 모조리 들춰내 국민들에게 생중계한다는 계획이다.
7월 2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비굴한 7자리’ 포기 당당한 ‘무식’
더불어민주당과의 지리한 협상을 했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원구성 협상에 나선 민주당 지도부는 ‘통합당 없이도 우리끼리 할 수 있다’고 일관되게 말해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관행적으로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 자리는 물론, 18개 상임위원장 전석 싹쓸이까지 실제 결행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강경 입장’을 고수한 데는 청와대의 국회에 대한 강한 불신도 자리 잡고 있었다. 국회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다투면서도 야당 몫으로 줄 것은 내줘야한다는 ‘협상의 법칙’을 잘 알지만, 청와대는 “국회는 도대체 일을 언제 하려고 저러나”라며 느리기만 한 국회 속도를 비판했던 것이다.
특히 민주당 지지율을 훨씬 상회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감안할 때 청와대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민주당 입장이었다. 7월 1일 나온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내용은 국회 원구성 협상 과정에 누적돼온 국회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6월 5일 개원연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긴 연설문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설이 개원식이 계속 지체되면서 상황이 바뀌어 구문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연설문을 다시 준비했다. 전면 개작을 해야 했다. 그런데 또 협상 타결이 안 됐다. 완전히 연설문을 또 한 번 새로 써야 했다. 6월 5일 이후 20여 일간 문 대통령은 연설문을 세 번 전면 개작했다. 크고 작은 수정 작업까지 포함하면 모두 8번 연설문을 고쳐 썼다.”
이런 사정 속 여당의 강경 의도를 간파한 주 원내대표는 결국 ‘다 내주는’ 결정을 내렸다. 법제사법위원회를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할한 뒤 여당과 제1야당이 나눠 상임위원장을 맡는 ‘분할안’과, 전·후반기 법사위원장을 여당과 제1야당이 나눠 맡는 ‘교대안’까지 내놨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주 원내대표는 법사위에 대한 여당 집착이 너무 강해 협상은 처음부터 진전이 어려웠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작심 비판, 여당 일부 의원들의 한명숙 전 총리 재심 주장 등은 물론, ‘평생 전세법’ 등 여당이 내세우는 황당한 법안들이 많은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법사위를 뺏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민주당이 강하게 갖고 있었다. 반면 민주당이 절대 못 내놓겠다고 한 법사위는 통합당 입장에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어서, 통합당 지도부는 레드라인을 넘어온 여당과의 동행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협상 결렬 후 민주당이 6개 상임위원장을 우선 가져갔을 때 원내대표 사임 후 산사로 잠행을 떠났던 주 원내대표를 향해 비난보다는 당내 지지가 더 많았던 것도, 주 원내대표의 상임위원장 ‘무식(無食)안’ 최종 선택에 힘을 실어줬다. 상임위원장을 욕심낼 법한 당내 3선 중진들이 합심해 지지했다. 무엇보다 정진석 의원의 “국회 부의장 안 한다”는 한마디가 당내 이견을 완전히 잠재워버렸다.
통합당 한 3선 의원은 “꼼꼼한 성격의 주 원내대표가 협상 과정에서 3선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협상과정을 설명하고 각각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를 통해 협상장에 나간 주 원내대표에게 힘이 실렸고 부담 없이 결론 내릴 수 있었을 거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사사건건 간섭해 협상이 꼬였다는 민주당 주장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김 위원장을 잘 아는 사람은 알지만 김 위원장은 큰 것만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모습이 없다. 정당 경력이 많은 김 위원장인데 원내대표와 당대표 업무 구분도 못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여당은 부담, 야당은 홀가분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한 여당의 분위기는 밝지만은 않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3차 추경 예산 심의다. 35조 원에 이르는 추경안을 여당이 불과 며칠 만에 단독 심의해 통과시키는 부담을 안은 것이다.
6월 26일 21대 국회 원구성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왼쪽)와 회동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 한 당직자는 “추경이라는 것이 급하게 짠 것이고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이라 속성으로 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돈이 막상 집행될 때 심사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국가 재정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고 일부는 국민에게 빚으로 전가되기도 하는데 예산 집행 과정에서 낭비적 요소가 드러난다면 여당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할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독식했다’ ‘고속도로 전세 내 혼자 달린다’ 등 독주에 대한 비판도 여당 내부 ‘승자의 저주’ 걱정을 증폭시킨다. 이를 감안해 민주당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간다’는 프레임도 준비해 놓았다. 상임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민주당은 국토위·정무위·문체위·농림위·교육위·환노위를 통합당 몫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안은 아직 유효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당초 통합당 몫으로 분류됐던 상임위원장에 국회 운영 관례에 맞지 않는 장관 출신 및 재선 의원을 배치한 걸 보면 어떤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통합당에 상임위원장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포석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빈손으로 국회에 들어오게 된 통합당이지만 참패 분위기는 읽기 어렵다. 통합당 의원들은 ‘여당의 의회독재 규탄’ 리본을 달고 다니는 방법으로 ‘투쟁 중’이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21대 국회 출발이 나쁘지 않다는 목소리가 대세다.
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지역구를 다녀보니 통합당이 큰소리 내지 않고 잘 싸우고 있다는 여론이 많았다. 예전엔 시끄럽기만 하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는데 이번엔 소리 없이 강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리 국민들이 잘나고 너무 앞서가는 것을 못 봐준다. 이번에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7월 2일 발표된 TBS 의뢰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통합당 정당 지지율이 3개월여 만에 30%대를 회복했다는 소식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일단 성공했다는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합당 지지율은 30.0%로 집계됐다. 총선 한 달 뒤인 5월 3주차 주중 잠정집계에서 23.4%로 바닥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보름 만에 6.6%포인트(p) 상승한 것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이나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총선 이후 고점과 비교해 14~15%p 떨어졌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경우 전주보다 3.9%p 내린 49.4%로 집계됐는데, 50% 밑으로 내려간 것은 지난 3월 3주차 조사(49.3%) 이후 15주 만이다.
민주당 지지도 역시 전주보다 3.1%p 하락한 38.1%로 나타났다. 4월 5주차(7.4%p 하락)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다. 민주당 지지도가 30%대를 기록한 것은 2월 2주차(39.9%) 이후 20주 만이다. 이에 따라 양당의 지지율 격차는 8.1%p로, 3월 3주차(8.5%p) 이후 15주 만에 한 자릿수로 좁혀졌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일하면서 싸운다
통합당은 ‘경제전문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모셔온’ 효과를 100% 살려 먹고사는 민생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는 방침이다.
7월이 시작하자마자 자고 나면 뛰는 집값을 두고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 계획을 밝히라”고 공세를 시작한 통합당은 지난해부터 민주당이 공들여온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 출범도 민생과 연결 지을 계획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신경전 벌이는 모습과 연계시켜 또 하나의 사정 권력기관이 탄생할 경우 국민의 피로도는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법조인 출신 통합당 의원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벌어지고 있는 다툼의 양상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19 비상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법무부 장관이 저런 식이라면 검찰총장 자리는 필요 없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역할을 하면 되지, 뭐 하러 국민 세금을 들여 자리를 하나 더 만드나. 더욱이 지금 검찰총장은 파격적 인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발탁해 기용한 사람이다. 그런데 정권 마음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지금 내치려 하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선진국에는 없는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국민들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통합당은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드러난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순, 북한의 도발적 태도에서 드러난 대북 유화정책의 허점, 규제 위주 부동산 정책 등은 이미 실패의 민낯이 드러났고, 문재인 정부의 대표정책인 탈원전 및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물도 곧 성적표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인 출신 통합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 결산 공고의 시점이 왔다. 손익계산서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굳이 아스팔트 위에서 안 해도 된다. 국회에서 하면 언론이 써준다. 빈손 귀환이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던데 마냥 싸우기보다 국회 안에서 일하면서 싸우는 방법이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말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