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에 최측근 7명 지명, 두 파로 갈려 신경전…탈세 혐의에 전담 회계사 돌연 잠적 상황 더욱 꼬여
2019년 2월,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무리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라거펠트가 사망하면서 가장 관심이 모아졌던 부분은 그가 남기고 간 방대한 양의 유산을 상속받는 행운아가 과연 누구인가에 있었다. 이유인즉슨, 라거펠트가 생전에 결혼을 하지 않아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반려묘인 ‘슈페트’가 유일한 상속자라는 소문이 퍼졌고, 곧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고양이로 등극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칼 라거펠트가 사망하기 전에 작성한 유언장에 따르면 반려묘 ‘슈페트’에게는 비교적 적은 몫이 남겨졌고, 대부분의 유산은 일곱 명의 지인들에게 분배되었다. 사진=칼 라거펠트 인스타그램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라거펠트가 남긴 유산은 약 2억 7300만 달러(약 3200억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약 5억 달러(약 6000억 원)라고 추측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파리에 있는 서점 ‘7L’을 비롯해 파리와 모나코의 저택, 30만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 디자이너 가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라거펠트가 가장 애정했던 ‘롤스로이스 팬텀 컨버터블’의 가격은 현재 약 63만 달러(약 7억 5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러니 이처럼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동성애자였던 라거펠트는 생전에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슬하에 자식도 두지 않았다. 이에 가장 먼저 유력한 상속인으로 떠오른 것은 그의 애완묘인 ‘슈페트’였다.
#슈페트는 잘 지내고 있지만…
버만 품종인 ‘슈페트’는 생전에 라거펠트가 가장 사랑했던 존재로, 어디를 가나 함께 여행하는 것은 물론이요, 공개 자리에서는 늘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슈페트’를 가리켜 ‘내 세상의 중심’이라고 불렀는가 하면,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심지어 ‘슈페트’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까지 비치기도 했었다. 라거펠트는 “내가 고양이와 이렇게 사랑에 빠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법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슈페트’와 결혼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또한 ‘슈페트’를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에 비유하기도 했던 라거펠트는 2011년부터는 ‘슈페트’의 푸른 눈동자에서 영감을 얻은 ‘슈페트 블루’라는 새로운 색상을 출시했는가 하면, ‘슈페트’의 얼굴이 담긴 핸드백을 디자인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슈페트’에 대한 애정이 가장 많이 드러날 때는 유산 상속에 대해 언급할 때였다. 라거펠트는 생전에 만일 자신이 ‘슈페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대부분의 재산을 ‘슈페트’에게 물려주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 잡지 ‘르피가로’ 인터뷰에서는 “‘슈페트’가 내 상속녀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나자 ‘슈페트’에 대한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했다. 많은 사람들이 ‘슈페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누가 돌보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라거펠트가 사망한 후부터 ‘슈페트’는 라거펠트의 가정부이자 ‘슈페트’의 유모인 프랑수아즈 카코테가 맡아 돌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슈페트’가 막대한 유산의 주요 상속자라는 보도는 정말일까. 이에 대해 ‘르파리지앵’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라거펠트가 사망하기 전에 작성한 유언장을 살펴본 결과 ‘슈페트’에게는 비교적 적은 몫이 남겨졌고, 대부분의 유산은 일곱 명의 지인들에게 각각 분배되었다. 상속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7인은 모두 라거펠트와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들로, ‘샤넬’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동료부터 라거펠트가 사랑했던 남성 모델, 경호원 혹은 가정부(‘슈페트’를 돌본다는 조건하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칼 라거펠트가 남긴 유산은 약 2억 7300만 달러(약 3200억 원)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약 5억 달러(약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사진은 모나코의 저택.
하지만 현재 문제는 모두 저마다 자신의 몫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라거펠트를 더 사랑했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1순위 후계자’라며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 라거펠트의 한 측근은 후계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현재 두 파벌로 나뉘어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를테면 모델 출신의 경호원인 세바스티앙 종두와 모델이자 절친이었던 밥티스타 지아비코니를 중심으로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탈세 의혹과 회계사의 칩거
이렇듯 유산 분배가 말끔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뜻하지 않은 혼란 때문이다. 프랑스 재정부와 관련된 한 소식통에 따르면 라거펠트는 생전에 탈세 혐의를 받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된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식통은 “라거펠트의 사업체 가운데 한 곳을 압수수색해 증거를 확보했으며, 앞으로 추가 조사가 전세계로 확대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라거펠트는 생전에 2400만 달러(약 290억 원)에 해당하는 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때문에 아무도 정확히 라거펠트의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런 가운데 얼마 전에는 그의 자산을 관리하던 회계사가 종적을 감추면서 상황은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라거펠트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무한한 신뢰를 받았던 회계사 루시엔 프라이들렌더(37)는 현재 라거펠트의 자산 규모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유언을 공평하게 집행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런 그가 사라졌으니 관련자들이 당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프라이들렌더가 연락을 끊고 잠적한 것은 지난 2019년 9월이었다. 사무실 문을 닫은 채 모습을 감춘 그는 현재 일체 외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으며, 어떤 약속도 잡지 않은 채 칩거에 들어간 상태다.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최근 프라이들렌더의 아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남편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남편이 라거펠트의 재산을 갖고 섬으로 도망을 갔다느니 하는 소문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남편은 현재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 따라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다”라고 밝혔다. 또 “남편은 파리에 있는 집에서 그 나이대의 노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조용히 ‘은둔’하고 있다. 결코 (라거펠트의) ‘비밀 보물’을 숨겨두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유언장에 이름이 올라있는 상속인들의 긴장감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현재 저마다 ‘내가 1순위’라고 주장하면서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당분간 ‘보물’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행운 거머쥔 7인은 누구? 종두-지아비코니 ‘1순위’ 놓고 불화 왼쪽부터 세바스티앙 종두, 칼 라거펠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 #세바스티앙 종두(45) 전직 복싱 선수에서 모델로 변신한 인물로, 라거펠트의 눈에 띄어 경호원 겸 운전기사로 일했다.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종종 ‘진정한 후계자’라고 불렸으며, 라거펠트의 임종을 지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 언론은 “라거펠트가 눈을 감을 때 종두가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밥티스트 지아비코니(31) 프랑스 출신의 모델로 ‘슈페트’의 원래 주인이었다. 19세 때 누드모델링 세션에서 라거펠트를 만나 친분을 텄으며, 그 후 ‘아버지와 아들’로 불릴 만큼 라거펠트와 가깝게 지냈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 TV에 출연해서 자신이야말로 라거펠트가 가장 사랑했던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주요 상속인은 일곱 명이다. 이들 가운데 내 순위가 가장 높다. 내가 첫 번째 상속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르파리지앵’은 지아비코니의 이런 주장으로 인해 그와 종두 사이에 ‘질투와 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보이치’ 잡지는 지난 3월호에서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요컨대 “사실 지아비코니와 라거펠트는 라거펠트가 사망하기 전부터 이미 사이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라거펠트의 정신적 후계자는 종두다”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에 덧붙여 ‘보이치’는 “라거펠트와 지아비코니의 사이는 지난 몇 년 동안 틀어져 있었고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한마디 대화할 시간조차 갖지 않았다”라고도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지아비코니는 즉시 부인하면서 현재 명예훼손으로 잡지사를 고소할 뜻을 밝힌 상태다. #제이크 데이비스(40) 영국 요크셔 출신의 모델로 라거펠트의 뮤즈 가운데 한 명이었다. 라거펠트가 진행한 수많은 광고 캠페인에 모델로 참가했으며, 대개는 셔츠를 벗은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섰다. #캐롤라인 레바(55) 라거펠트와 가장 오래 일했던 직원 가운데 한 명으로 라거펠트의 패션하우스에서 홍보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둘이 함께 일한 시간은 무려 30년이었다. #프랑수아즈 카코테 애완묘 ‘슈페트’를 돌보는 유모이자 라거펠트의 개인 가정부였다. 현재 ‘슈페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관리하면서 ‘슈페트’와 함께 라거펠트의 파리 저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브래드(41)와 허드슨(12) 크로닉 미국 출신의 모델인 브래드는 ‘아베크롬비 앤 피치’ 광고 캠페인에서 올누드로 등장하면서 처음 라거펠트의 눈에 띄었고, 그 후 라거펠트의 뮤즈로 자리를 잡았다. 평소 라거펠트는 그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허벅지 곡선’을 꼽기도 했다. 2003년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했으며, 오직 브래드만을 촬영한 네 권짜리 화보집을 출간하기도 했었다. 브래드가 유명한 테니스 코치인 닉 볼레티에리의 딸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인 허드슨 역시 라거펠트가 아끼는 인물로 상속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허드슨은 두 살 때부터 샤넬 패션쇼 무대에 올랐으며, 라거펠트가 대부를 자처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라거펠트는 종종 허드슨의 손을 잡고 패션쇼 피날레를 장식했으며, 그를 ‘샤넬의 어린 왕자’라고 부르면서 애정을 표현했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