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봉 진정서 속 경찰 최고위 간부 건 수사 중 포착…윤상현 “유상봉 허위주장, 이미 수차례 사기행각 벌인 사람”
윤상현 의원 측과 선고공작 공모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함바왕’ 유상봉 씨.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함바’는 건설현장 임시식당을 뜻한다. ‘함바왕’으로 통했던 유상봉 씨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를 활용해 전국 함바 업계를 주름잡았다. 결국 2011년 유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드러났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구속되고,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과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른바 ‘함바 게이트’다.
유 씨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돼 1년 6월을 선고 받았다. 이후 2013년 출소했지만, 또 다른 여러 사건에 연루돼 수감과 출소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유상봉 씨가 최근 그의 아들과 윤상현 의원실 조 아무개 보좌관 등과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인천지방경찰청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관심을 모았다.
유 씨 부자는 윤상현 의원 및 보좌관 등의 요청으로 경쟁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비리 의혹이 담긴 진정서와 고소장 등을 일부러 써준 혐의를 받는다. 그 대상은 박우섭 더불어민주당 미추홀을 지역위원회 위원장(전 인천 남구청장)과 안상수 전 통합당 의원이다.
실제 유상봉 씨 고소장은 4월 총선 과정에 이용됐다. 유 씨는 안상수 전 의원에 2008년부터 수차례 직간접적으로 거액을 전달했다고 진정서를 작성했다. 이어 같은 내용의 고소장까지 만들어 총선을 앞둔 4월 2일 인천지검에 제출했다. 이러한 고소장은 인천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보도되면서 선거 국면에 이슈로 떠올랐다. 안 전 의원 측은 허위사실이라며 유 씨 및 고소건을 처음 보도한 지역 언론을 고발했다.
유 씨는 이러한 고소장을 작성해준 대가로 윤 의원 측으로부터 성남시 힐튼호텔 공사현장 임시식당 운영권, 롯데백화점 일산점 구리점의 음식판매 입점권 등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병원 치료나 법률 자문 등 여러 편의 도움도 받았다고 전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5월 13일 유 씨가 당시 수감 중이던 서울구치소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17일 윤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과 조 보좌관 및 유 씨 아들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정치권에서는 유 씨와 윤 의원에 대한 수사가 신속히 이뤄지고 있는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사건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고소·고발건은 보통 선거 끝나고 두 달은 지나야 수사가 시작된다”며 “그런데 이번 유상봉 씨와 윤 의원 선거공작 의혹 사건은 이례적으로 수사가 빠르다. 5월 중순 이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미 경찰에서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유상봉 씨 측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경찰은 올해 초부터 사건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이던 유 씨는 옥중에서 자신이 금품을 준 수십 명의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작성했고, 이 중 일부를 검찰로 보냈다. 여기엔 전직 경찰 최고위 간부인 A 씨도 포함돼 있었다. 유 씨는 지난 2009년 A 씨가 서울의 한 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당시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019년 4월 유 씨로부터 진정서를 접수받아 A 씨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A 씨는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며 유 씨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이후 유 씨는 3개월 만에 진정을 취하했다. 하지만 A 씨는 ‘불필요한 오해 억측을 막겠다’며 유 씨에 대한 고소를 거두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지난 3월 기소의견을 달아 유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A 씨 무고죄 사건을 진행하면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유상봉 씨를 찾아온 서울구치소 면회기록을 살펴보다 윤상현 의원실 조 보좌관이 방문한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조 보좌관은 2개월여 동안 10여 차례 유 씨를 면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유상봉 씨와 윤상현 의원 측 연관성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 그 와중에 선거 공작 공모라고 볼 수 있는 윤 의원 측과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사건을 인천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했다. 유 씨 측 한 관계자는 “어느 날 경찰청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 보좌관의 면회 경위 등에 대해 묻더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경찰청에서 수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치권 관계자는 “유상봉 씨가 6월 중순 넘어 언론 등을 통해 양심선언 비슷한 발언을 하고 있다. 상황을 파악해보니 유 씨는 지난 5월 중순 출소하자마자 인천경찰청에 불려갔다. 조사를 6번 받을 때까지는 ‘스스로 했다’ ‘안상수가 미워서 썼다’는 식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며 “그러던 중 죄를 혼자 덮어쓰기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라고 본 것 같다. 또한 경찰이 윤상현 의원의 연루 혐의를 이미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봐, 혼자 죄를 안고 가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거라 판단해 고백하는 걸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면서도 “사건 파악 경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무소속 윤상현 의원. 사진=연합뉴스
윤 의원은 7월 15일 입장문을 통해 “유상봉 씨 허위 주장”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지난해 8월 초순에서 중순쯤 자유한국당 소속 소통위원의 부탁으로 억울한 민원이 있다는 유상봉을 처음 만났고, 의례적이고 통상적인 민원처리를 해줬다”며 “국회의원 선거기간도 아니고 경선 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아 누가 경쟁자가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상봉은 이미 수차례의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이라며 “인천경찰청 수사에 의해 유 씨의 허위 진술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가에서는 유 씨 폭로가 윤상현 의원을 넘어 다른 고위직 인사로 확대될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유 씨는 최근 “여권의 유력 인사 측에도 과거에 억대의 돈을 준 적이 있다”는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유상봉 씨는 구치소 수감 동안 끊임없이 진정서와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씨의 고백이 수사까지 이어진 적이 있느냐. 막무가내 폭로일 가능성이 높다”고 일축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