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 10% 개방, 전자출입명부 등 방역 철저, 일부 관객 일탈은 ‘흠’…1루 내야석에 팬들 몰아넣은 롯데에 문체부 ‘엄중경고’
개막 이후 약 3개월 만에 프로야구 관중석이 열렸다. 하지만 롯데는 일부 좌석에 관객을 밀집시키는 미흡한 대처로 지탄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때마침 관중석 개방 첫날 서울 잠실구장에선 전통의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맞대결했다. 시즌 첫 ‘유관중 경기’ 분위기를 담기 위해 AP통신, 로이터통신, CNN, AFP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과 국내 30여 매체 취재진이 몰렸다. 또 현장 통제 및 방역 관리를 위해 진행요원 77명이 투입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도 방문해 세밀한 현장 점검을 마쳤다.
#처음 관중을 맞이한 잠실의 풍경
잠실구장은 2만 5000명(입석 포함)까지 입장할 수 있다. 착석 가능 좌석의 10%인 2424장의 티켓이 경기 하루 전인 7월 25일 오전 10시 온라인 예매로 풀렸다. 오랜 시간 이 순간만 기다렸던 팬들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예매 시작 1시간 25분 만에 모든 티켓이 팔려나갔다.
홈팀 두산 베어스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오전 7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관중석과 복도를 방역했다. 야구장 중앙 출입구 인근에 유증상자 격리실을 마련하고, 선수단 주차 구역과 원정팀 버스 하차 구역에 가림막 펜스와 차단봉을 설치했다. 매점, 화장실, 출입구 등 관중이 자주 오가는 장소엔 ‘거리두기’ 강조 스티커를 부착했다. 3층 복도 4곳에 설치된 실내 흡연실은 폐쇄하고 야외 흡연실만 남겨뒀다. 전광판과 장내 아나운서, 응원단을 통해 수시로 안전 예방 수칙을 공지했다. 관중 전원이 입장 발열 체크를 무사히 통과한 뒤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양팀 감독은 관중 입장을 반겼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관중이 있으면 아무래도 선수들 집중력이 높아진다. 더 활기차고 수준 높게 경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원정팀인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도 “비록 10% 정도라 해도 야구장 관중 입장은 반가운 일이다. 프로 스포츠 경기엔 관중이 있어야 선수들도 힘이 나고 집중력도 더 생긴다. 코로나19 사태가 하루 빨리 잠잠해져서 더 많은 팬이 들어오길 기대한다”고 바랐다.
관중 입장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됐다. 올 시즌 잠실구장 1호 입장객은 회사원 김솔아 씨(27)였다. 1년에 스무 번 정도 야구장을 찾는 골수 두산팬이다. 포수 박세혁을 가장 좋아한다. “그동안 주로 카페에 앉아 휴대전화로 야구 생중계를 봤다”는 김 씨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최종전 이후 첫 방문이다. 설레서 1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입장을 기다렸다”고 털어놓았다. 또 “현장에선 작은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신나게 응원할 수 있다. 또 실내인 카페에선 오히려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실외인 데다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야구장 관중석이 훨씬 안전할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물론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려면 아직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기준을 만든 ‘뉴 노멀’은 야구장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일단 모든 야구장에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이 도입됐다. 사전에 QR코드를 발급받고 스캔을 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 입구에서는 발열 체크와 문진표 작성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평소보다 입장과 줄 서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오더라도 나란히 앉아 경기를 볼 수 없다. 어깨동무를 동반하는 단체 응원이나 비말 감염의 위험성을 높이는 육성 응원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선수와 팬은 이제 한 공간에서 교감할 수 있는 것만으로 반갑다. 이날 오후 4시 50분, 두산과 LG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서자 ‘일당백’ 관중이 보내는 환호가 쏟아졌다. 현장에 있던 많은 관계자들이 “예상보다 소리가 더 크다. 야구장 밖에서 들었다면 관중이 10%만 들어왔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 이전에 ‘기억’의 스포츠다. 좋은 기록을 남긴 선수보다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가 더 오래 기억된다. 그런 의미에서 팬은 모든 가치의 맨 위에 있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모처럼 야구장이 팬들의 박수와 응원으로 뒤덮이자 선수도, 구단도 신이 났다. 개막 후 83일 만에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치고 달린 선수들은 관중석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모처럼 ‘랜선 응원’의 허전함에서 벗어난 응원단도 신나게 흥을 돋웠다. 두산과 LG 관계자들은 “팬과 함께하니 이제야 진짜 시즌이 시작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야구장의 주인인 팬들과 함께라 모두 행복했던 잔칫날. 다만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고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외친 일부 팬은 옥에 티로 남았다. 응원단장이 여러 차례 “응원은 우리가 할 테니 팬들은 육성 응원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해도, 흥에 겨운 그 팬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각 구단과 팬이 전반적으로 방역 수칙을 잘 지켜 무사히 관중 입장 첫날이 지났다. 하지만 일부 팬의 일탈이 집중 조명돼 어렵게 되찾은 야구장의 활기를 다시 잃어버릴까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축제 분위기에 찬물 끼얹은 롯데의 실수
결국 사건은 야구팬의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부산 사직구장에서 터졌다. 홈 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안이한 대처 탓이다. 다른 팀들은 “모자란 것보다 지나친 게 낫다”는 자세로 철저한 대비를 하고 관중을 맞았다. 그래서 롯데의 대처가 더 눈에 띄었다.
롯데는 7월 28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처음 유관중 경기를 치렀다. 잠실구장이 한 지붕 라이벌 두산-LG전으로 관중 맞이를 시작했다면, 사직구장은 경남지역을 연고로 한 두 팀의 ‘낙동강 더비’로 팬들과 만났다. 전날부터 부산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자칫 우천 취소될 위기를 맞았지만, 게임 시작 2시간여를 남기고 비가 그친 덕에 정상적인 개최가 가능해졌다. 경기 한 시간 전인 오후 5시 30분부터 관중 입장이 시작됐다.
롯데가 열어 놓은 좌석은 전체의 10%인 2450석. 입장 시간 기준으로 예매된 티켓은 981장이었다. 7월 26일 일요일 경기들처럼 매진 사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평일인 화요일 야간경기에 궂은 날씨까지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좌석 배치에서 발생했다. 롯데는 야구장 전 좌석 가운데 외야석 전체와 3루 내야석을 텅 빈 채 놔뒀다. 홈팀 응원석인 1루 내야석에 대부분 팬을 몰아넣었다. 야구장 관중석 전체를 열어 팬들 사이에 넉넉한 간격을 확보하고, 무조건 두 자리 이상 띄어 앉도록 자리를 조정한 타 구단들과 대조적이었다. 실제로 사직구장 인터넷 티켓 예매창을 열면, 예매 가능 좌석들이 모두 단 한 칸씩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밀집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 관계자는 “야구장 좌석은 성인 남성도 체격이 크면 편하게 앉기 어려울 만큼 가깝게 붙어 있다. 모든 구단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 끝에 이제 겨우 전체 좌석의 10%만 조심스럽게 개방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관중 50%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롯데가 KBO의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참고하지 않은 건 아니다. 최근 각 구단에 배포된 3차 매뉴얼에는 공식적으로 ‘관람석에서 서로 한 칸 이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롯데는 이 ‘한 칸 이상’이라는 표현을 너무 곧이곧대로 해석했다. 진짜 단 한 칸의 공백을 확보할 만큼만 공간을 열어두고, 도리어 팬들이 비슷한 구역에 모여들도록 했다. 부푼 마음으로 사직구장을 찾은 한 야구팬이 “이 정도로 서로 가깝다면, 거리를 두고 띄어 앉는 의미가 없다. 사실상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을 정도다.
롯데 구단은 이날 “평소대로 안전 요원 100명을 투입했다. 관중들의 안전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전요원이 관중석 주변에 상시 대기한다 해도 좁은 공간에 밀집한 야구팬들의 접촉과 감염 위험을 막을 길은 없다. 비말 확산을 막고자 준비했던 ‘수건 응원’ 이벤트도 무의미해졌다.
TV 중계를 통해 이 모습이 전국에 알려지자 삽시간에 비난이 쏟아졌다. 상황을 파악하고 깜짝 놀란 KBO도 곧바로 롯데 구단에 연락해 정식으로 항의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롯데는 경기가 채 끝나기 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미흡한 준비에 대해 사과와 개선의 뜻을 전했다. 롯데 관계자는 “팬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1루 내야석 위주로 좌석을 오픈한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리두기 방침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 다음 경기(7월 29일)부터 보다 엄격한 관람 지침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일단 외야석을 제외한 3루 내야석과 양쪽 내야 상단 구역을 모두 오픈해 자리를 재배치했다. 이어 이미 판매가 시작된 경기 예매분을 일괄 취소하고, 바뀐 좌석 배치도에 따라 다시 예매를 진행했다.
#문체부와 KBO의 엄중경고, 더 강화된 방역 지침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지 못했다. 롯데는 다음날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고, 그 다음날엔 방역당국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KBO로부터 줄줄이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7월 30일 코로나19 상황 브리핑에서 “이틀 전 롯데의 홈인 사직구장에서 거리두기를 제대로 안 지키고 좁은 공간에 다수가 모이게 되는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며 “야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의 관중 입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인데 초기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아쉽다. 문화체육관광부가 KBO와 함께 경고하기로 했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차원에서도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체부에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지만, 추후 이런 일이 발생하면 관중 비율 확대는 물론이고 10% 입장 허용 문제까지도 다시 논의해야 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KBO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유료 관중 첫 홈 경기에서 팬들 입장을 관중석 일부 구역에만 한정해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방침 협조에 미흡했던 롯데 구단을 엄중경고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또 “문체부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방역 수칙 이행을 요청해왔다”며 “7월 31일부터 모든 구장이 전·후·좌·우 1m 이상 거리를 두고 좌석을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관중석에서 치맥(치킨+맥주)을 비롯한 음식물을 먹지 않고, 암표 구입이나 육성 응원처럼 감염 위험을 높이는 행동을 자제하는 것은 KBO도, 구단도 아닌 야구팬들이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