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아이가 전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부터 딸은 부지런히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리곤 자신의 휴대폰에 여행일정을 빼곡히 정리했다. OO성당에서 사진 찍기, 남부시장 OO식당에서 콩나물국밥과 OO제과에서 OO파이 먹기, 한옥마을에 가서 한복 입고 사진 찍고 전주비빔밥 먹기 등.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시간별 여행일정을 정리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이해는 된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유명지를 가고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욕망은 너무나 당연하기에. 하지만 왜 모든 아이들이 다 똑같은 곳을 가고 똑같은 맛집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다들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지.
영화 ‘신과함께’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브뤼셀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아 간 적이 있다. 개막식과 영화제에서 마련한 관객과의 대화와 각종 인터뷰를 마치고 황금 같은 2박 3일간의 자유시간을 얻었다. 브뤼셀은 난생처음인지라 벨기에의 명소를 넘어 유럽의 명소 중의 명소인 ‘오줌싸개 소년’을 보러갔다.
한참을 물어물어 찾아간 ‘오줌싸개 소년’은 실망 그 자체였다. 몇 시간을 헤매며 찾아간 오줌싸개 동상은 너무나 좁은 골목에 자리했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마다 감흥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왔다는 사실 빼고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차라리 현지인들이 추천한 시장에 가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요즘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어느 역에서 환승하는 것을 체크하는 것을 넘어서 지하철 몇 번 칸 몇 번 문에 서있어야 가장 빠른 거리로 환승하는 것까지 체크한다.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몇 번 버스가 몇 분에 도착하고 어디에서 환승해야 하는지를 다 알고서 버스에 오른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최단시간의 코스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안내하는 대로만 운전을 한다.
시간은 금이고 1분 1초도 현대인에겐 다 소중하기에 이해는 되지만 이런 현대인의 일상이 조금은 아쉽다. 2020년 8월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겐 효율만 존재할 뿐이지 파격과 변화 그리고 새로움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이번 여름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떠나는 딸아이에게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고 여행을 가봐. 숙소도 식당도 그리고 어디를 가야할지도 정하지 말고 그저 그냥 한번 무작정 여행을 떠나봐”라고 말할 참이다.
“그래서 네가 예상하지 못한, 네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봐. 숙소를 찾다 찾다 우연히 들어간 민박집에서 너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삶을 한번 느껴봐. 유명 맛집은 아니지만 허름하고 오래된 노포에서 맛보는 음식의 새로움을 한번 경험해봐.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간 유명하지 않은 해안가에서 노을을 한번 바라보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봐.” 이렇게 말이다.
꼭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기가 예상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상황에 직면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가 있다. 삶이라는 게 항상 예상하고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계획 안에 가두어 두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 같다.
“계획하지 마. 어차피 네가 계획한 대로 안 될 확률이 훨씬 높아. 그러니 그냥 아무 계획도 없이 네가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해봐. 그러면 네 삶이 훨씬 풍성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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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