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둘러싸고 최태원 회장에 편법대출 ‘논란’…소송에선 금감원 제재 반발 한국투자 임원 손 들어줘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한국투자증권의 편법 개인대출 의혹에 대해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일요신문DB
서울행정법원 제6부(이성용 판사)는 지난 7월 17일 한국투자 전 아무개 상무보가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감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전 상무보는 한국투자의 발행어음 담당으로, 한국투자의 최태원 회장에 대한 총수익률스와프(TRS) 계약건으로 2019년 4월 감봉처분을 받았다. 회사가 아닌 금융사 임직원이 직접 금융감독원(금감원) 제재에 대해 소를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데다 전 상무보 측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이목이 집중됐다. 2019년 부장판사를 마치고 법무법인 지평에 합류한 전관 변호사가 전 상무 측을 대리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전 상무보에 대한 감봉처분 취소 소송이 금융당국과 SK그룹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번 소송이 최태원 회장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건과 맞물려 있고, 금감원의 대응에 따라 TRS 관행에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중심엔 SK실트론(실트론)이 있다. 실트론은 SK그룹의 차기 상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시장에서 기업공개(IPO·상장) 대어로 꼽힌다. SK는 LG에서 실트론을 인수하며 지분의 일부를 최태원 회장 개인이 직접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최 회장이 실트론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실트론은 SK가 지분의 51%, 나머지는 키스아이비제십육차 19.4%, 워머신제육차 11.5%, 워머신제칠차 8.1% 등 특수목적법인(SPC)이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은 실제 돈을 투입하지 않고 한국투자증권을 대리로 해 지분을 인수했다.
최태원 회장은 한국투자에 지분 관련 자문을 구했고, 묘안으로 TRS를 활용하는 계약이 이뤄졌다. TRS 계약을 통해 최 회장은 자금 없이 실트론 지분을 확보하고, 한국투자는 리스크 없이 최 회장으로부터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투자는 SPC를 세우고 이 회사에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1673억 원을 대출해줬다. 한국투자는 1673억 원에 수익률 3.4%를 더한 기대수익을 보장받고, 주가 변동에 대한 이익이나 손실은 최 회장이 지는 구조다.
단기금융업 1호 증권사인 한국투자의 이 같은 TRS 계약에 대해 증권업계 안팎에서 편법적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투자가 SK그룹의 상장 주관사 자리나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 무리수를 뒀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시장법상 단기금융업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기업금융에 50% 이상 할애해야 하고, 개인대출은 금지된다. 한국투자는 기업대출 명목으로 키스아이비제십육차에 대출을 해줬지만 사실상 이는 최 회장 개인대출처럼 사용됐다.
그러나 이성용 판사는 한국투자가 대출해준 키스아이비제십육차가 서류상 회사라 할지라도 최 회장과 동일하게 볼 수 없는 별도의 ‘회사’라고 판단했다. 실질적으로 최 회장 개인을 위한 대출이라고 하더라도 상법상 회사를 정의하는 법문 그대로 적용해 한국투자가 대출해 준 키스아이비제십육차가 법인격이 없다고 볼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것.
행정소송에 패소하며 금감원은 체면을 구겼다. 당초 TRS 악용 첫 사례였던 한국투자 건을 두고 금감원은 중징계인 일부 영업정지, 대표이사 영업정지 등을 예고했다. 하지만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의 논의를 거치며 2019년 한국투자에는 벌금 5000만 원, 임직원 감봉 등으로 제재수위가 대폭 낮아졌다. 중징계를 예고했던 금감원으로선 낮아진 제재마저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한국투자에 대해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태원 회장과 맺은 TRS 계약과 관련해 한국투자증권이 적극적 공세에 나선 데는 김남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일요신문DB
증권업계는 한국투자가 금감원과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소송에 나선 건 큰손인 최태원 회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줄줄이 상장을 앞둔 SK그룹 계열사의 상장 주관사 선정 등 이해관계도 한국투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투자는 SK바이오팜을 비롯해 2021년 상장 예정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상장 주관사를 맡았다.
최태원 회장은 한국투자와 거래로 더 많은 이점을 챙겼다. 우선 총수 개인의 직접 소유가 아닌 서류상 회사를 활용한 우회 지분 소유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갔다. 실트론은 LG그룹 아래 있던 2017년 내부거래가 18% 미만이었지만, SK그룹에 편입된 뒤 2019년 기준 매출의 26.34%로 크게 증가했다.
성장성이 점쳐지는 실트론의 수익을 SK가 아닌 최태원 회장 개인이 누릴 수 있도록 한 점도 사업기회 유용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개혁연대는 실트론의 양호한 실적이 예상되고,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이를 최 회장 개인이 인수토록 한 점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당시 SK그룹은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책임경영을 하기 위해 최 회장이 직접 지분을 인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행정소송 승소로 우선 한국투자와 최 회장은 한숨을 돌렸다. 공정위는 2017년 말 최 회장의 실트론 지분 인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융당국의 제재가 최종적으로 무력화될 경우 최 회장에 대한 공정위 조사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동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같은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금융당국에서 적용한 법과 공정위에서 살펴보는 법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꼭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보다 발행어음 사업자는 늘었는데 너도나도 SPC를 통해 재벌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면 당초 발행어음 도입 취지에 완전히 배치되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유착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전직 한국투자 상무보가 제기한 감봉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하고 6일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투자는 감봉제재 취소 소송에 대해 “임원 개인이 진행한 만큼 회사 입장에서 할 말이 없다”며 “변호인 선임이나 비용 문제도 일체 회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