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통·폐합 주도 박진회 행장 퇴진…비용절감 효과 미미 수익도 그대로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행장 업무도 오는 31일까지만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11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오찬에 참석한 박진회 행장. 사진=임준선 기자
최근 씨티은행의 부진한 실적이 박진회 행장 퇴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씨티은행의 순이익은 2018년 3079억 원에서 2019년 2942억 원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 순이익도 900억 원으로 2019년 상반기 1844억 원에 비해 절반 이상 급감했다.
씨티은행은 올해 실적이 전년 대비 부진한 이유로 2019년 2분기 본점 건물 매각 이익 769억 원이 일회성 요인으로 반영됐다는 점을 언급하지만 매각 이익을 제외하고 계산해도 실적이 감소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같은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의 순이익이 2019년 상반기 1503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1820억 원으로 상승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받는 등 행장 직무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중간에 퇴임하는 경우는 드물다. 후배들을 위해 행장 연임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럴지라도 보통 행장직 임기는 마친다”며 “미국 씨티그룹 본사에서 메시지를 줬을 수 있다. 최근 박 행장의 부진한 실적과 출구전략에 대한 한계가 언급되는데 일정 부분 맞는 말 같다”고 전했다.
박진회 행장이 행장 업무를 내려놓는 이유가 실적과 상관없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 특성상 씨티은행은 행장의 유고 등을 대비해 차기 행장 후보군을 항상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차기 행장으로 유 행장 대행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이며 실적 부진으로 인해 박 행장의 행장 업무를 중단시킨다는 건 무리한 추측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도 “실적과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박진회 행장은 그간 모바일뱅킹과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영업 강화에 힘써왔다. 박 행장은 2017년 비대면 채널 강화를 위해 전국 133개 씨티은행 지점 중 101개 지점을 통·폐합해 25개 지점만 남기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씨티은행지부(씨티은행 노조·위원장 진창근)가 거세게 반대하자 한 발 물러나 90개 지점만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씨티은행이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점을 폐쇄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금융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리포트를 통해 “외국계 은행의 연이은 국내 지점 폐쇄 및 영업 철수 현상은 결론적으로 수익성 악화와 자본 확충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며 “2016년 이후 외환건전성 제도 개편으로 인해 선물환 거래에 대한 부담과 외환건전성 부담금도 외국계 은행에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점 통·폐합에도 불구하고 씨티은행의 비용 절감 효과는 크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씨티은행의 판매관리비는 2017년 8084억 원에서 2018년 7033억 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2019년의 판매관리비는 7818억 원으로 다시 늘었고, 올해 상반기 판매관리비도 4191억 원으로 2019년 상반기 3962억 원보다 높아 2018년을 제외하면 매년 큰 차이가 없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2018년 비용 감소는 주로 한미조세협약 타결에 따른 비용 환입효과에 기인한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주요 증가 사유는 통상적인 경비 증가 이외에 본점 건물 이전 관련 일회성 비용 발생이 주요인”이라고 전했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2018년 한미조세협약으로 인해 해외용역비용 993억 원의 환급이 있었다. 다르게 얘기하면 2018년에도 환급 덕에 비용을 절감한 것이지 지점 통·폐합에 의한 비용 절감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씨티은행이 지점 통·폐합 명목으로 내세웠던 비대면 영업도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밀려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익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용이 늘어나다보니 2018년 이후 순이익도 줄어들었다.
씨티은행 내부에서는 한국 시장 특성상 지점 축소 등 비용 감소에 집중하기보다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서울 종로구 씨티은행 본점. 사진=임준선 기자
씨티은행 내부에서는 한국 시장 특성상 지점 축소 등 비용절감에 집중하기보다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비용을 줄여서 경영 성과를 개선하려는 것 같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상적인 투자를 통해 실적을 개선해야 하는데 단기적인 실적만 추구하는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비용 절감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씨티은행 노조 측은 지점에 대한 투자가 특히 필요하고, 박 행장의 뒤를 이을 차기 행장에게도 이 같은 내용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점이 있어야 영업 네트워크가 강화돼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현재 남은 지점 중 자산관리 센터를 제외한 대부분 지점은 정상적인 영업점 구조가 아니라 방문 손님의 일처리만 도와주고 있다”며 “이러한 지점들을 정상화시켜 지점의 금융 상품 영업·판매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지점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씨티은행 측은 지점 통·폐합이 영업 전략의 변화라고 주장하며 비대면 영업 강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 행장의 영업 방향에 따라 향후 노사갈등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노조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시스템 개선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