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에 중점 ‘류현진의 길’ 가고 있어…“내셔널리그 신인상 자격 있다” 현지 호평
김광현이 등판할 때마다 중계를 맡고 있는 김선우, 송재우 해설위원(MBC스포츠플러스)을 통해 김광현이 올 시즌 MLB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배경을 살펴봤다.
김광현의 호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평균자책점은 1.69에서 1.08로 떨어졌다. 사진=연합뉴스
#구속의 강약조절, 노련한 경기 운영 돋보여
김선우 해설위원은 28일 피츠버그 선수들을 상대한 김광현의 투구 내용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광현은 실책으로 주자가 나갔을 때와 위기 상황이 펼쳐졌을 때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잘 아는 선수다. 주자가 없을 때는 가볍게 맞춰 잡는 피칭을 한다면 주자가 있을 때는 전력 피칭을 통해 위기를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MLB에서는 루키 신분이지만 그가 KBO리그에서 수년간 에이스로 활약했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김선우 위원은 김광현이 한국에서는 투 피치 투수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광현의 투구를 보면 유리한 카운트에서 결정구를 던지거나, 상황에 따라 공의 궤적과 스피드를 다 다르게 한다. 타자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공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류현진이 한 타자에게 비슷한 공으로 유인한다면 김광현은 팔 스피드를 빠르게, 느리게 하면서 타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어느 순간에는 분명 슬라이더인데 커터성 슬라이더를 던질 때도 있고, 슬러브(슬라이더+커브)성 공으로 변환시키는 등 한 타자한테 다양한 공을 던진다. 그게 지금의 김광현한테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했던 김광현은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을 투 피치 투수로 귀결 짓는 인식에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는 실제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투 피치 투수’라는 선입견을 지우기 위해 체인지업과 커브를 연마했다는 내용도 밝혔다(관련기사 [인터뷰] 세인트루이스 김광현 “날 빅리그로 이끈 건 비난과 지적”).
“나는 슬라이더도 느리거나 빠른 슬라이더, 스트라이크를 잡는 백도어 슬라이더 등 다양하게 구사하는 편이다. 그것만 해도 이미 3가지 슬라이더를 던지는 것이고, 쓰리 피치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다 직구와 커브를 합하면 파이브 피치다. 한국에서는 내가 던지는 구종의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해 조금 속상했고,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한국에서 잘했던 비결은 투 피치 투수의 공이 상대 타자한테는 파이브 피치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도 모두 그런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김선우 위원이 김광현을 더 높이 평가하는 건 자신의 재능에 피땀 흘린 노력을 더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SK 시절의 김광현은 파워 피칭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았다.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는 구종 변화와 노력을 통해 MLB 데뷔 첫 해부터 자신감 있는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투구에는 땀 흘린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고무적인 건 앞으로 김광현의 투구 내용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김선우 위원은 스프링캠프, 마무리로 시즌 데뷔 경기를 치렀을 때, 그리고 선발로 나서는 경기에서 김광현의 피칭이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광현은 상황에 맞춰 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다. 맞춰 잡을 때와 전력으로 던져야 할 때를 컨트롤할 줄 안다. 현재 몸 상태가 투구수 100개를 채울 만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정규시즌에서 김광현이 4~5차례 선발 등판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스피드가 조금 더 오른다면 슬라이더가 더 날카로워질 것이고, 스프링캠프 때 선보인 빠른볼의 위력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제구에 중점을 두며 “류현진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연합뉴스
#류현진과 비슷한 길 가는 김광현
송재우 해설위원은 28일 피츠버그전에 선보인 김광현의 투구 내용이 지난 신시내티전보다는 좋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김광현이 지난 경기보다 제구가 떨어진 편이었다. 피츠버그 타선이 그에 대응을 못했던 것이지 김광현의 공이 매우 뛰어났다고 말하긴 어렵다.”
실제로 김광현은 피츠버그전을 마치고 현지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지난 경기보다 커맨드가 조금 떨어졌다”고 자신의 투구 내용을 돌아보면서 “야구 실책이 나오면 그 이닝은 점수를 안줘야 하는데 처음 실책이 나왔을 때 득점으로 연결되는 바람에 투구 수가 많아지고 후반으로 갈수록 쫓기게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송재우 위원은 김광현이 류현진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류현진이 구속보다는 제구와 다양한 구종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김광현도 SK 때와 다르게 절대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구가 아니라 제구에 중점을 두는 투구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봤을 때 그가 카디널스 데뷔전으로 치른 피츠버그전(7월 25일)이 떠올랐다. 당시 마무리 투수로 시속 150km의 빠른공과 140km대의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그게 잘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이후 다양한 구속과 구종을 선보였다. 김광현은 원래 체인지업과 커브를 많이 던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등판에서 종종 체인지업으로 재미를 본 부분이 있다.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본다.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주무기인 빠른볼과 슬라이더가 대단한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면 그 주무기를 받쳐줄 만한 커브, 체인지업을 던져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김광현의 장점이자 노련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투수가 오랫동안 몸에 밴 스타일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김광현은 MLB 안착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꾀하고 있다. 그런 부분은 구단과 코칭스태프한테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현지 언론에서 보도하는 기사를 찾아보면 김광현을 보는 카디널스 코칭스태프의 시각이 얼마나 따뜻하고 긍정적인지를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인트루이스에 머물며 홀로 위기를 극복해나갔다는 점, 시즌 데뷔를 마무리 투수로 시작했을 때 내색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점, 그리고 선발로 등판하게 됐을 때 그에 맞는 경기 운영을 연구했다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직은 류현진만큼의 제구는 안 되지만 안정된 제구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더 대단해 보인다. 길게 보면 김광현이 류현진의 길을 따라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베테랑 포수와의 궁합도 한몫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포수로 꼽히는 야디어 몰리나와 두 차례 호흡을 맞췄다. 김선우, 송재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선발 투수로 안정된 구위를 선보이는 데는 야디어 몰리나의 존재도 한몫한다고 입을 모았다. 몰리나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부상자명단에 올랐다가 최근 복귀해서 김광현의 도우미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김광현은 몰리나와 배터리를 이룬 2경기에서 자책점 제로를 기록했다.
송재우 위원은 김광현과 몰리나와의 호흡을 류현진의 사례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류현진이 지난 탬파베이전에서 포수로 나선 리즈 맥과이어와 호흡을 맞출 때 선수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은 상당히 불안했다. 맥과이어는 류현진이 스트라이크를 던져도 제대로 포구하지 못했다. 투수한테 도움을 줘야 할 포수가 스트라이크 존에 꽉 찬 공을 기술적으로 받아내지 못하고 공 받는 데만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몰리나는 프레이밍이 뛰어난 선수라 김광현이 좀 더 과감히 승부하는 면도 있다. 28일 피츠버그전에서 김광현은 몰리나의 사인에 단 한 번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 류현진이 맥과이어와 배터리를 이룰 때 매 이닝마다 고개를 저은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김광현은 포수 복도 있는 셈이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향했던 김광현. 올 시즌 어떤 엔딩을 보일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만으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는 게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