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과 통합 염두에 둔 당명 관측…김종인 압도적 위세 ‘셀프 대망론’ 고개 들어
9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장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간판 바꾸고 메뉴 다양화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은 파격적이었다. ○○당으로 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국민’ 단어 선호도가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게 나왔지만, 그럼에도 보수정당에 친근감이 있는 한국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당명의 형식도 버리고 국민의힘으로 결정됐다. 국민의힘은 과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썼던 이름이기도 하다. 2003년 당시 배우 문성근 명계남 씨 등 노사모 출신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를 했던 ‘새정치국민회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만들었던 ‘통일국민당’ 등에서도 ‘국민’은 사용됐다. 프랑스의 유명한 극우 민족주의 정당 ‘국민전선’을 비롯해 최근에는 외국 극우 세력도 국민을 많이 사용한다. 결국 ‘국민’이라는 단어는 뚜렷한 색깔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보수 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당명인 셈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왜 ‘국민’이라는 단어를 당명으로 낙점했을까. 그는 정당이 지향점을 갖는 것은 좋지만,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정당도 지향점을 바꿔야한다는 논리를 편다. 보수정당 큰집 격인 국민의힘이 보수적 색채를 띠는 것은 좋지만, 국민이 불편해한다면 ‘보수’든 ‘우파’든 과감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9월 2일 온라인으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국민과 호흡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과거 우리 당이 ‘시대 변화에 뒤처진 정당’ ‘기득권 옹호 정당’ ‘이념에 치우친 정당’ ‘계파로 나뉘어 싸우는 정당’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약자와 동행하며 국민 통합에 앞장서는 정당으로 체질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절대 진리’가 없다는 점을 앞세운다. 과거 보수정당이 민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 세금을 적게 걷고 재정 지출도 적게 하는 ‘건전 재정’ 등 구호를 앞세웠지만 이제는 국민이 원한다면 큰 정부도 할 수 있고 확장 재정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기본소득을 공론화하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는 등 과거 보수정당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김 위원장은 직접 실행했다. 국민이 원한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것을 ‘시대정신’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시대정신을 읽고 이를 순리로 파악하면서 잘 따른다면 국민의힘이 지지 세력을 크게 넓힐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다.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의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이 37.6%, 국민의힘이 31.9%였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2.8%포인트(p) 내렸고, 국민의힘은 1.8%p 상승했다. 직전 조사에서 10%p 이상 벌어졌던 두 당의 지지도 격차는 다시 5.7%p로 좁혀졌다.
민주당 지지율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역시 전주보다 1.2%p 내린 47.8%로 집계됐다. 3주 만의 하락이었다. 국민의힘이 주목을 끈 게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당명 개정 과정에서 별다른 이론이 없었다. 지금 여당도 그렇지만 우리 당의 당명도 워낙 자주 바뀌어서 당명 변경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지역구민들도 이구동성 같은 입장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는 신호로 봤다. 예전엔 우리가 선택한 메뉴를 보수층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다 좋아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총선까지 전국 선거에서 연거푸 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 손님이 원하는 메뉴판을 안 만들면 식당 문을 닫아야한다. 지금 우리의 변화는 많은 손님들에게 ‘저 식당 한번 가보자’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고 본다.”
#옆집 국민의당과의 관계는?
이번 당명 개정은 바로 옆집과 비슷한 이름의 간판을 걸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다.
당명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사 당명 여부를 판단한다. 정당 명칭이 기존 정당과 비슷해 유권자가 헷갈려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실제 지난 총선을 앞둔 2월 안철수 대표는 국민당이란 당명으로 창당하려 했지만, 선관위는 국민새정당이란 기존 정당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아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통보한 바 있다. 결국 안철수 대표는 당명을 국민의당으로 최종 결정했다.
때문에 국민의당이 “이름이 비슷하다”며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면 국민의힘이라는 명칭은 사용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에서 의외로 선관위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국민의힘 당명에 대해 “언뜻 듣기로는 (국민의당과) 유사당명 같지는 않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국민의당 공보실도 “(국민의힘이) 우리 국민의당처럼 중도정당, 실용정당이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만 밝혔다.
국민의당이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은 가운데 선관위는 9월 2일 새 당명 국민의힘 사용을 최종 승인했다.
국민당과 국민새정당은 글자 수가 다른데도, 국민당을 불허했던 선관위였다. 그러다보니 국민의힘을 승인한 것은 다소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더 나아가 두 당이 결국 통합할 것이란 예측까지 낳고 있다.
그러나 이 예측은 김종인 위원장이 직접 나서 일단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9월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대선과 관련해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당 내부를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형태로 변경함으로써 자연발생적으로 우리 당 내부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자강론’을 폈다.
안철수 대표에 대한 질문이 다시 나오자 김 위원장은 “안철수 씨 개인으로 보면 어떤 생각을 갖고서 정치 활동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끈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답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치권 인사는 없다. 인물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이 안철수 카드를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당과의 관계 설정에 일단 경계선을 긋는 이유는 몸값 높이기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합치더라도 당 대 당 통합이 아닌 국민의힘 주도의 흡수통합이 돼야하고, 안 대표가 들어온다 해도 모셔오는 형식인 ‘온리 원(Only One)’이 아닌 후보군 중 한 명으로 데려오는 ‘원 오브 뎀(One of Them)’ 방식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김수민 미래통합당 홍보본부장이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새로운 당명 ‘국민의힘’ 개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이번 당명 개정 과정을 주도한 김수민 국민의힘 홍보본부장은 9월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위원장과 안 대표가 스타일이 맞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와도 정당 생활을 함께했고, 현재 김 위원장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 본부장의 발언은 ‘결국 합칠 것’이라는 예측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신장개업 일사천리, 부작용은
당명 변경 등 국민의힘 개혁 작업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거의 나오지 않으면서 당내에서는 ‘일사천리’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과속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모든 사안이 김종인 위원장의 위세에 눌려버린다”는 ‘김종인 압도론’이다. 김종인 압도론은 당내 단합을 키우기도 하지만 당 내부에 새로운 신인이 나올 기회를 날려버리면서 ‘오직 김종인 체제’가 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연장선에서 ‘김종인 대망론’ 가설까지 현실화되고 있다는 걱정을 당 상당수 구성원이 토로하고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을 잘 아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 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가능성이야 늘 있는 것 아닌가”라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역시 8월 25일 같은 방송에서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후보군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의 생각은 당 내 누구보다 젊다. 생물학적 나이는 갈수록 마이너한 요소가 될 것 같다”고도 지적했다.
하 의원과 함께 방송에 나왔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대권 후보를) 외부 수혈한다고 시간 끌다가 본인이 대선 주자를 꿰차려는 심산”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 방송에 앞서 자신의 SNS에 “김종인의 모든 정치 행보의 처음과 끝은 대선후보 셀프공천”이라고 적기도 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역시 9월 2일 김종인 위원장 취임 100일을 맞아 SNS에 글을 올려 “독선적 리더십이 시간이 갈수록 고착화하고 있다. ‘국민의힘=김종인’이다. 그러니 인물이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참 나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또다시 암울한 어둠이 내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