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S 거래 활용한 총수 사익편취 첫 재판…‘공소장 정정 요청’ 놓고 검찰-변호인단 대립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공정거래법위반 혐의 재판이 시작된다. 조 회장이 2018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5단독 김준혁 판사 심리로 열린 조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재판에 관한 마지막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이날 법정에는 효성그룹 부사장 등 임원들과 관계자들, 변호인단이 대거 참석했다. 조 회장은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4월 판사 출신 변호인을 대거 선임했다. 현재 변호인단은 2020년 초 퇴임한 한승 전 전주지방법원장, 고승환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와 김앤장 변호사들로 꾸려졌다.
앞선 기일에서는 검찰이 사건의 공소장 정정을 요청해, 조 회장 측 변호인단의 불만이 쏟아졌다. 검찰은 사건의 사실관계에는 변함이 없지만 혐의에 대한 적용 법조를 일부 수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회장 측은 “검찰이 당초 공소장을 제대로 작성했으면 문제가 없는데 공소장 변경의 피해는 피고인이 입게 된다”며 “정경심 사건만 해도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왜 이 사건은 허가해주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사유가 적용 법조항을 정정한다는 측면에서 허가한다는 입장이지만 변호인단의 격렬한 반대에 이 건에 대해서 추후 결정하기로 한 발 물러섰다. 재판부는 “정경심 사건은 공소 사실관계에 오인이 있었기 때문에 공소장 변경이 불가능했다. 이 사건의 경우 범죄 사실관계에는 문제가 없어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2018년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며 시작됐다. 공정위는 조 회장의 사실상 개인회사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가 경영난으로 퇴출위기에 처하자 효성그룹 차원에서 지원방안을 기획한 뒤 효성투자개발을 교사해 자금 조달을 지원한 행위에 대해서 경영진과 법인을 고발했다. 효성투자개발은 효성이 58.75%, 조현준 회장이 41%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임대 회사로, 조 회장과 인척관계인 송 아무개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효성투자개발은 부실회사인 GE가 거액의 전환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이에 수반되는 신용 위험 일체를 부담하는 TRS 계약을 맺었다. TRS는 파생 금융 상품의 일종으로 증권사가 서류상 회사인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입하고, 이에 따른 차익이나 손실은 계약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대신 약정 이자를 받는 거래다. TRS가 일종의 대출처럼 활용돼 기업들은 목돈이 필요한 기업의 지배구조 변경, 인수합병 등을 위해 이를 활용한다.
효성투자개발은 금융회사가 세운 페이퍼컴퍼니인 특수목적법인(SPC)과 TRS 계약을 맺었다. 그런 다음 GE가 25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SPC가 이를 인수하면, 효성투자개발이 GE 대신 지급보증을 서는 구조다.
문제는 효성투자개발이 오직 GE에게만 이익이 되는 TRS 거래를 한 데 있다. 효성투자개발은 GE에게 거액의 신용 보증을 제공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했다. 공정위와 검찰은 효성투자개발이 사실상 GE에 무상 지급보증을 제공했고 이 거래로 가장 큰 이익을 챙긴 건 조 회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조 회장은 GE에 들인 투자금과 경영권을 보존받고, 저리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금리 차익을 얻었다. 또 한계기업이었던 GE는 금융지원을 받아 시장 퇴출을 모면하고, 중소기업 시장인 LED조명 분야에서 사업기반까지 강화했다.
조 회장 측 변호인단은 철통방어에 나서며 검찰과 맞서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공정위와 금융당국은 TRS 거래가 변칙적으로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활용되는 데 우려를 갖고 있다. ‘증권사-기업’ 간 계약인 TRS 거래가 신종 거래인데다, 개별 계약마다 실질적 이익을 얻는 주체가 제각각이라 규제가 쉽지 않다. TRS 악용사례가 속출하자 금융당국은 편법 대출에 나선 증권사를 규제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TRS로 인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과 공정위가 제재를 가하더라도 기업들이 이를 법정으로 끌고가며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TRS 악용 첫 사례로 SPC를 활용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사실상 개인대출을 해 준 한국투자증권을 제재했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SPC가 서류상 회사에 불과하더라도 이를 ‘회사’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며 증권사 손을 들어줬다.
사정당국은 개별 계약마다 거래의 실질이 다른데 판례가 적다보니 사법부가 법문상 명문 그대로에 매몰돼 보수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불만을 갖고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거래의 본질을 살펴야 하는데 법조문에 적힌 그대로 판시할 거면 재판부가 역할에 충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TRS 거래와 관련해 국회에서도 금융거래의 실제 주체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9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상욱 전 의원은 “금융부문 제재는 실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진행돼왔다. 제재는 SPC가 아니라 거래 실질 주체에 따라 이뤄졌던 만큼 시장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 측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장, 담당 수사관의 수사의견서, 공정위의 기소결정 모두를 부인하고 있다. 특히 효성투자개발과 직접 계약을 맺은 SPC가 조 회장과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방어논리로 삼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효성투자개발 TRS 구조를 보면 GE에 대한 신용보증이 총수를 위해 이뤄졌다. TRS를 제공한 증권사도 거래 상대방 뒤에 효성이라는 대기업집단이 있었기 때문에 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며 “TRS 거래가 늘어나기 때문에 악용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효성 건에 대한 재판부의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