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떠난 유럽 무대 황희찬·이승우·권창훈·이강인 등 맹활약
황희찬은 라이프치히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했다. 사진=RB 라이프치히 페이스북
#한국인 유럽 도전사 터닝 포인트 될 시즌
새롭게 막을 올린 2020-2021시즌은 새로운 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활약하던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 등 30대 베테랑 선수들이 모두 유럽 무대를 떠났다. 그러면서 1990년대 또는 2000년대 태어난 젊은 선수들이 맹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전성기를 열어갈 젊은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개막 초반부터 신바람을 내고 있다. 유럽 무대에서 때론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이들은 개막과 동시에 지난 시즌과 다른 모습을 보이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더 큰 무대에서 활약 예고하는 황희찬
1996년생 공격수 황희찬은 지난 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 왔다. 중소 리그로 분류되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다소 주목을 덜 받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2016년 오스트리아 진출 이후 4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컵대회 우승을 경험한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독일 분데스리가 RB 라이프치히 유니폼을 입었다.
라이프치히는 최근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유럽 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 신흥 강호다. 지난 4년간 팀의 공격을 이끌어온 티모 베르너를 내보내고 그 공백을 메울 선수로 황희찬을 선택했다.
황희찬은 라이프치히 데뷔전부터 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는 새 팀에서 연습경기조차 갖지 않고 첫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장밋빛 미래를 예고했다. ‘전술 천재’로 불리는 나겔스만 감독의 화려한 전술 변화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비록 상대가 2부리그 소속 뉘른베르크였지만 적응 기간 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데뷔전에서 기록한 공격 포인트라는 수확도 황희찬에게 자신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승우는 이적 이후 약 13개월 만에 첫 골과 두 번째 골을 한 경기에서 기록했다. 사진=신트트라위던 페이스북
#‘무득점’ 터널 벗어난 이승우
벨기에 신트트라위던 소속 이승우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많은 기대를 받던 선수다.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했다. 팀 내에서도 손꼽히는 활약을 펼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구단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를 받으며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성장세도 꺾였다. 수시로 연령별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실전 감각을 유지했지만 어린 선수의 성장에는 부족해 보였다. 결국 바르셀로나 성인팀 데뷔는 불발됐다.
이후 이탈리아 세리에A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첫 모습을 드러낸 성인 무대에서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고 팀은 2부리그로 강등됐다. 2부리그 소속으로 이승우는 리그 23경기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도약을 노렸다.
베로나에서 3년차를 앞둔 시점, 벨기에로 향했다. 등번호 10번을 달고 에이스 대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감독은 그를 외면했다. 벨기에 데뷔 시즌에는 단 4경기를 뛰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시즌 이승우는 반전을 만들고 있다. 개막전부터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고 3라운드부터 3경기 연속 선발로 경기에 나섰다. 지난 13일 드디어 결실을 봤다. 측면 공격수로 나선 로열 앤트워프와의 5라운드 경기에서 전반에만 두 골을 몰아쳤다. 2019년 8월 신트트라위던 입단 이후 약 13개월 만의 첫 골이었다. 선발로 입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골까지 터뜨리며 향후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정우영은 지난 시즌에 비해 피지컬적으로 더욱 보완된 모습으로 팀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사진=SC 프라이부르크 페이스북
#입지 넓혀가는 프라이부르크 듀오 권창훈-정우영
권창훈과 정우영은 SC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났다. 시즌 전부터 주축 자원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감독의 중용을 받지 못했다. 권창훈은 리그 23경기에 대부분 교체로 나서며 665분만 소화했다. 정우영은 전반기 1군 경기 출전에 어려움을 겪다 이전 소속팀으로 임대를 다녀왔다. 프라이부르크 듀오에게 지난 시즌은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새 시즌에는 달라질 조짐이 보인다. 권창훈은 부상으로 시작한 지난 시즌과 달리 건강에 문제가 없는 상태다. 정우영은 임대로 자신감을 되찾았고 피지컬적으로 보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둘은 프라이부르크 시즌 첫 경기, DFB 포칼(독일축구협회컵) 1라운드에 나란히 선발로 나섰다. 프리시즌부터 함께 팀 공격을 주도했던 이들은 이날도 활발한 모습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권창훈은 전반 선제골로 팀 승리에 공헌했다. 정우영은 권창훈이 교체로 나간 이후로도 부지런히 경기장을 누비며 왕성한 체력을 보였다.
중용 가능성을 보인 이들의 이번 시즌은 1년 전과 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프라이부르크는 기대 이상의 상승세를 보이며 선발 명단에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팀 공격을 이끌던 루카 발트슈미트는 벤피카로 떠났다. 팀은 그의 공백을 어리고 저렴한 몸값의 선수들로 채웠다. 권창훈과 정우영이 지난 시즌에 비해 경쟁력을 선보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강인은 선발로 나선 리그 개막전에서 전반에만 도움 2개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강인, 새 번호 달고 새로운 마음으로
발렌시아 2001년생 유망주 이강인도 새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많은 기대 속에 시작했던 지난 시즌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도 했던 그는 결국 팀에 남았다.
팀의 리빌딩 기조에 맞춰 주요 선수들이 대거 이적한 가운데 이강인은 프리시즌 경기에서 더욱 중용되는 모습을 보였다. 등번호 또한 기존 16번에서 20번으로 달라졌고 한 경기에 그쳤지만 8월 31일 열린 프리시즌 경기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서기도 했다.
리그 개막전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지난 시즌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운 측면에 배치됐던 것과 달리, 4-4-2 포메이션에서 투톱 중 한 자리를 차지하며 공격 진영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발렌시아의 공격작업 상당수가 이강인의 발을 거쳐 갔다. 세트피스에서 킥도 담당했다.
그 결과 이강인은 전반에만 2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예리한 코너킥으로 동료의 헤딩골을 도왔다. 이후에는 공격 진영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도움을 추가했다. 팀이 끌려가는 상황에서 나온 소중한 골이었다. 마치 준우승과 MVP를 차지했던 2019 U-20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외에도 분데스리가2 이재성(홀슈타인 킬)과 백승호(다름슈타트), 러시아에서 새 출발을 시작한 황인범(루빈 카잔) 등도 멀티골(이재성)을 기록하거나, 페널티킥을 유도(황인범)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슈퍼스타 손흥민은 여전히 확고한 팀내 입지를 자랑했다. 황의조 역시 소속팀 주축 공격 자원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의 좋은 활약은 국가대표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1990년대 또는 2000년대 태어난 이들은 향후 대표팀의 주요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정우영을 제외하면 모두 A대표팀 선발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 파울루 벤투 감독의 신뢰를 받고 있다.
새롭게 시작한 시즌, 기성용 이청용 등 선배들이 유럽 무대를 떠난 이후 후배들은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시즌 초반 일정을 순조롭게 보내는 가운데 시즌 말미에는 이들이 어떤 결과를 낼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