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접수→사건배당→사전조사→조사관 파견…“전화만 수십 차례, 당사자 설득 가장 어려워”
박하연 조사관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최연소 조사관인 그는 해군 장교로 헌병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 1월 첫 위원회 조사관(별정직 공무원) 채용 때 응시해 일을 시작했다. 박 조사관은 “위원회가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 군인을 조사에서 배제하는 방향을 가졌지만 군 헌병 경험이 조사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진정인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들으면 뭉클하다”고 전했다. 위원회 조사관은 파견직 경찰 공무원, 파견직 검찰 공무원, 별정직으로 나뉜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최연소 조사관인 박하연 조사관. 그는 해군 장교로 헌병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 1월 첫 위원회 조사관(별정직 공무원) 채용 때 응시해 일을 시작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진정인의 진정이 접수되면 위원회에서 각 조사과에 사건을 무작위로 배정한다. 위원회에 조사과는 3개다. 각 조사과장은 다시 조사관에게 사건을 부여한다. 조사관은 본 조사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사전 조사를 한다. 진정 내용이 사실인지, 사건 관련 증거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지,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위원회 조사 활동 범위에 포함되는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인지 등을 따져 사건을 개시할지, 아니면 각하할지를 결정한다. 현재는 사전 조사를 하는 담당 부서를 따로 둬 조사 효율을 높였다.
사건 개시 결정이 나서 본 조사에 들어가면 국방부에 협조 요청을 해 가능한 만큼 당시 기록을 수집한다. 그런 뒤 당시 망인과 함께 근무했던 부대원들이나 망인의 가족 등을 만나는 대인 조사에 들어간다. 50~60년이 지나 기록 자체가 없는 사건을 제외하곤 국방부가 적극 협조에 나서고 있어 자료 수집엔 큰 어려움은 없다. 조사에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박 조사관은 “강제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당시를 기억하거나 증언할 수 있는 부대원을 만나기 위해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렵다. 전화 연결이 돼 위원회를 소개하는 중에 전화를 끊는 경우도 많다.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 수차례 혹은 수십 차례 전화하기도 한다”며 “강제 수사권이 없어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반대로 강제로 오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상대의 마음을 열기만 하면 강제로 수사할 때보다 질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조사관은 “때때로 현역 군인을 조사하는 경우엔, 내가 여자인 걸 알고선 군대 안 다녀온 사람한테는 조사 안 받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군 경험이 도움이 됐다”며 “조사를 하면서 사람과 유대를 형성하고 마음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관이 조사를 끝낸 뒤 대략 30쪽 분량의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면 이를 두고 각 과의 과장, 상임위원 등이 모여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낼지를 두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사진=최준필 기자
한 사건에 조사관이 두 명이 배정되지만 주로 한 명이 담당하고 다른 한 명은 출장을 가거나 자료 조사에 동참하는 등 보조를 맡는다. 한 사건을 끝내는 데에 평균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조사관이 한 번에 두세 개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한다. 평균 1년에 6개의 사건을 해결한다.
조사관이 조사를 끝낸 뒤 대략 30쪽 분량의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면 이를 두고 각 과의 과장, 상임위원 등이 모여 결론 도출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그런 뒤 의결권을 가진 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5명이 모여 최종 결정을 내린다. 위원회의 결정은 권고 형식으로 국방부, 검찰, 경찰 등 정부 기관에게 전달된다. 국방부의 경우 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사망 사건을 재심의한다. 국방부가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은 현재까지 1건에 불과하다.
박 조사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1961년 운전병이었던 한 병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한 병장은 서류상으론 전역 처리된 상태였다. 그 탓에 한 병장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순직 처리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한 병장은 전역 상태가 아닌 전역하기 위해 부대에 들어간 뒤 사망했다. 결과적으로 한 병장은 전역한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 전역한 사람에겐 내지 않는 재적명령서가 발행된 사실이 조사 끝에 밝혀졌다.
박 조사관은 “1961년 당시에 미숙한 행정 처리 때문에 서류상 전역 시점이 실제와 다르기도 했다. 그래서 재적명령을 통해 일괄적으로 전역 시점을 수정하기도 했는데, 당시 한 병장이 사망한 뒤 한 병장의 재적명령이 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런 일은 조금만 부대에서 신경 쓰고, 누군가가 확인을 해줬더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 안타깝고 기억에 남는다. 오랜 기간 유가족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리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