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합병·분리, 자산 정리 등 본격화…얽혀있는 계열사 지분 정리 숙제 남아
그동안 KCC그룹에서 장남 정몽진 회장은 KCC를, 차남 정몽익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은 유리-인테리어 사업부를 각각 총괄하고 있었다. 장남과 차남이 공동으로 KCC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공동대표 체제였다. 삼남 정몽열 회장(당시 부회장)은 이미 KCC건설에서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갖고 있었다.
KCC그룹이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모두 2000년대 초반 각각 현재 직함을 달았다. 형제 공동 경영체제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아버지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경영 승계 이슈가 나왔다. 다만 재계에선 ‘KCC는 장남, 유리 및 인테리어 사업은 차남, 건설은 삼남이 맡게 될 것’이라는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의중이 잘 알려져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으로, 2000년대 초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을 지켜봤던 만큼 일찌감치 승계 구도를 구상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구상대로 삼형제가 각각 맡은 사업 계열사의 지분을 꾸준히 늘리는 식으로 경영 분리 발판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명확한 움직임을 보인 건 올해부터다. 지난해 7월 KCC는 KCC(존속법인)에서 유리-인테리어 사업부 인적분할 계획을 전격 발표했고 올해 1월 계획을 이행했다. KCC에는 실리콘, 도료, 소재사업부 등이, 인적분할 이후 탄생한 KCC글라스에는 유리, 홈씨씨인테리어, 상재사업부 등이 편입됐다. 삼형제간의 사업 영역이 더욱 명확히 구분된 셈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KCC그룹은 인적분할과 관련해 경영 분리로 보기엔 이르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사업 전문성과 경영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실제 장남과 차남의 공동대표 체제는 변하지 않았고, 올해 상반기까지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선 계열사 간 합병과 차남과 삼남의 승진, 자산 정리 등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먼저 차남 정몽익 KCC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지난 8월 1일자로 퇴임하고 KCC글라스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삼남 정몽열 KCC건설 부회장도 내부 인사를 통해 회장으로 승진했다. 장남 정몽진 회장은 2000년 KCC 회장에 임명돼 있었다. 이번 인사로 삼형제 모두 ‘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승진 인사와 동시에 KCC건설은 그동안 KCC로부터 임대해 쓰고 있던 서울 서초구 KCC건설 사옥을 1593억 원에 매입했다. 지난 9월 9일엔 KCC글라스가 KCC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통하는 코리아오토글라스를 흡수합병하는 안이 결정됐다. 자동차용 유리를 생산하는 코리아오토글라스는 KCC글라스 사업과 시너지가 있고, 무엇보다 이 회사는 2003년 일본 아사히글라스와 KCC가 합작으로 세워졌는데, 차남 정몽익 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KCC글라스는 이번 합병을 통해 2분기 기준 총자산이 1조 1973억 원에서 1조 6750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매출은 3256억 원에서 5295억 원, 영업이익은 104억 원에서 353억 원, 당기순이익은 131억 원에서 345억 원으로 오른다. 증권가에선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면 KCC글라스가 매출 1조 원대 알짜 회사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별도로 KCC는 지난 9월 17일 이사회를 열고 실리콘 사업부문을 분할해 자회사 ‘KCC실리콘(가칭)’을 새로 설립하기로 했다. KCC가 분할 신설법인의 주식 100%를 보유하는 단순·물적분할 방식이다. 분할 후 KCC는 상장법인으로 남고, 신설 자회사 KCC실리콘은 비상장법인이 된다. 최대주주 소유주식이나 지분율 변동 역시 없다.
2011년 영국 유기실리콘 제품 생산회사 바실돈, 2019년 미국 실리콘 기업 모멘티브퍼포먼스머터리얼스(모멘티브)를 인수한 KCC는 이번 신설 자회사를 통해 실리콘 사업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KCC 관계자는 “실리콘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사업 고도화, 전문화를 통해 경영 효율화를 확립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KCC본사 건물. 사진=박정훈 기자
남은 과제는 형제간 그룹 내 계열사 지분 정리 작업이다. 물적분할과 자산정리가 이뤄졌지만 삼형제가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주식 매수, 아버지 정상영 명예회장으로부터의 증여를 받으면서 회사 지분이 얽혔다. 완벽한 경영 분리를 이뤄내려면 각 회사에서 지분율 상승을 통한 대주주 등극이 필요하다.
이미 올해 초 그룹 내 3세 오너 일가들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방식으로 지분 정리가 시작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4월 29일 장남 정몽진 KCC 회장은 KCC글라스 지분 2.03%(17만 68주)를 차남 정몽익 회장의 아들 한선 군에게 증여했다. 주당 처분 단가는 2만 9400원으로 약 50억 원이다. 이를 통해 정몽진 회장의 KCC글라스 지분율은 종전 18.40%(153만 6708주)에서 16.37%(136만 6640주)로 줄었다. 차남 정몽익 회장 역시 형 정몽진 회장의 딸 정재림 KCC 이사에게 KCC 보통주 2만 9661주(약 42억 원)를 증여했다.
차남 정몽익 회장은 이번 KCC글라스와 코리아오토글라스 합병이 마무리되면 합병회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되면서 형제간 지분 관계가 일부 정리된다. 지분율은 현재 8.8%에서 19.49%가량으로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지금까지 KCC글라스의 최대주주는 형 정몽진 회장(16.37%)이었다.
삼남 정몽열 회장은 KCC건설 지분 29.99%를 갖고있다. 2003년 KCC 등으로부터 지분 매입을 시작으로 아버지로부터 2004년, 2009년, 2016년 지분을 꾸준히 증여 받으면서 지금의 지분율이 만들어졌다. 다만 KCC건설의 최대주주는 KCC(36.03%)다. 정몽열 회장은 아직까지 2대주주인 만큼 향후 KCC 지분율을 넘어서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향후 남은 지분 정리는 차남 정몽익 회장과 삼남 정몽열 회장이 가진 KCC와 KCC글라스, KCC건설 지분이 활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형제간 맞교환 방식이나 현물출자 이후 그 대가로 지분을 받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재계에선 지금까지 형제들이 갈등 없이 상대적으로 ‘깔끔한’ 승계를 하고 있어, 남은 지분 정리도 무난히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변수는 KCC 주가다. 지난해 초만 해도 30만 원대에서 거래되던 KCC 주식은 현재 15만 원선으로 반토막이 났다. 주가 하락의 원인은 유리사업부 분할이다. 2019년 모멘티브 인수로 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알짜 사업부를 인적분할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기에 올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주가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부문부터 자산까지 형제간 영역이 명확해지고 있다. 사실상 교통정리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지분 정리 등 완전한 독자 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