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 부모, 부대에 통화는 물론 메신저 연락 가능…“아들 애로사항 전달 등 학부모 같아”
한 육군 장병이 부대개방행사로 부대를 방문해 전투복 상의를 착용한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복무 중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 원내대표는 “휴가 중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전화·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휴가 연장)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임기를 마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9월 15일 대정부질문에서 김 원내대표 발언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을 했다. 정 장관은 추 장관 아들 서 씨 휴가 미복귀 의혹 관련 질문에 “승인권자 허락을 받고 (휴가 연장을) 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정 장관 발언에 서 씨보다 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전화로 휴가 연장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례가 언급됐다. 그러자 정 장관은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지휘관이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 장관은 “2016년부터 4년간 한국군 지원단(카투사)에 (전화로) 휴가를 연장한 사례는 35건이며, 2회 휴가를 연장한 사례는 5번 정도 된다”면서 “육군 전체로 보면 사례가 3137명이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9월 10일 설명자료를 통해 “휴가는 허가권자의 승인 아래 실시하며 구두 승인으로도 휴가 조치는 가능하나 후속하는 행정 조치인 휴가명령을 발령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휴가 중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전화 등으로 연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군복무 중 전화로 휴가를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21세기 군은 선진병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장병 부모와 부대 지휘관 사이 연락 통로가 개설된 게 대표적이다. 장병 부모는 아들 지휘관과 통화는 물론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군 간부 카톡 친구 목록. 부대 소속 장병 부모들의 연락처가 가득하다.
2020년 7월 군은 장병들의 일과 후 영내 개인 휴대전화 활용을 전면 시행했다. 2019년 4월부터 시범 운영된 장병 영내 휴대전화 활용을 확정한 조치였다. 장병들이 영내 스마트폰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부대-장병 부모뿐 아니라 장병과 장병 부모 사이의 연락망도 활발히 형성됐다. 기존 장병들의 애로사항이 ‘장병-실무자-지휘관’ 이른바 지휘계통을 통해 전달됐다면,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장병들이 부모를 통해 지휘관에게 애로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요즘 후배들로부터 부대를 운영하기가 예전보다 빡빡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면서 “지휘관들이 기존 지휘계통뿐 아니라 장병 가족들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부대 내 사고가 터질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까닭”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장병 부모들은 직계가족이 상을 당한 소식 등의 이유로 청원휴가를 요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범주다. 장병이 가족 여행이나 개인사로 청원휴가를 요청하거나 부대 내 상급자로부터 꾸짖음을 당한 일까지 세세하게 부모에게 전달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2018년 전역한 한 초급장교는 “휘하 장병을 꾸짖는 경우 지휘관으로부터 ‘혹시 OO이를 혼냈느냐’는 질문이 온다”고 했다. 그는 “솔직하게 대답을 한 뒤 그 내부 사정을 설명하면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서 훈계하라’는 지적이 돌아오기도 했다”면서 “사실상 중간 관리자로서 부대를 지휘하는 데 있어 지휘관 외에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 늘어난 셈”이라고 토로했다.
선진 병영 문화 정착 일환으로 국방부가 201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으로 시행한 부대개방행사 역시 장병 부모들이 민원을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부대개방행사는 부대마다 연 1~2회 실시한다. 장병들이 장병 가족들을 직접 부대로 초청해 부대의 개괄적인 임무와 장병 생활 여건을 돌아보게 하는 행사다. 한 군 고위 간부에 따르면 부대개방행사에 참석해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는 의례적인 말부터 “이런 이런 부분은 개선해달라”는 직접적인 요구까지 하는 장병 가족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복수 전·현직 군 간부는 장병 부모들과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군대가 학교처럼 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한다. 앞서의 군 고위 간부는 “병사들에게 ‘너희들 학교 왔어’라는 훈계를 자주 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학교 같은 느낌”이라면서 “부대 운영 전반에 걸친 요소들이 장병 부모들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육군 간부도 “학교에 가면 학부모를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하듯 최근 부대 운영도 공개 운영을 하는 것 같다”면서 “장병 부모가 학부모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지휘관뿐 아니라 중간 관리자들 역시 장병 부모들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됐다”면서 “이제 장병 부모 여론을 신경쓰지 않고 융통성 없이 원칙적으로 부대를 운영하다가는 진급길이 막힐 수도 있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