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정밀화학 두산솔루스 지분 2900억 원 투자…인수 철회 롯데케미칼 대규모 인수합병 주목
서울 종로구 두산솔루스 서울 사무소. 사진=최준필 기자
롯데정밀화학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스카이레이크가 인수하는 두산솔루스에 2900억 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자기자본 19.42%에 달하는 규모다. 롯데정밀화학은 “투자수익 창출을 위해 유한책임사원(LP)으로 참여한다”며 “그룹 내 특수소재 사업을 담당하는 화학 계열사로, 중장기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해 기관투자자로 참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스카이레이크는 두산솔루스 지분 53%를 6986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지난 9월 초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스카이레이크는 앞으로 추가로 자금을 더 투입할 계획이다. 구주를 7000억 원가량에 매입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4500억 원가량을 만든다. 두산솔루스가 최근 헝가리 산업단지 내 전지박 공장 가동에 들어갔는데, 스카이레이크는 회사 인수와 동시에 유럽 지역 생산설비를 증축하고 룩셈부르크 동박 법인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산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시도하지 못했던 방안이다.
이를 위해 스카이레이크가 조달해야 하는 자금은 약 1조 2000억 원가량이다. 이중 1500억 원가량은 스카이레이크의 블라인드펀드에서 조달한다. 나머지는 프로젝트 펀드 등 총 4개의 펀드를 활용할 예정인데, 이는 LP와의 공동투자 방식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정밀화학에 앞서 이미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한국교직원공제회 등 국내 굵직한 LP들도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두산솔루스가 세계 자동차 생산 전진기지로 꼽히는 헝가리에 유일하게 동박 공장을 갖고 있고,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점, 스카이레이크가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어 경영과 재매각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롯데정밀화학의 대규모 투자를 기점으로 다른 LP들이 결정을 내리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투자은행(IB)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앞서 롯데그룹은 두산솔루스가 매물로 나왔을 당시부터 관심을 보였다. 올해 초부터 대규모 인수합병(M&A) 의지를 보여 왔던 롯데케미칼이 중심이 돼 인수 검토에 나서면서 예비입찰 전까지 시장은 롯데를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적정 가격을 두고 이견이 있었던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 롯데정밀화학의 지분 투자를 계기로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소재 사업 확대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롯데는 LG·SK 등 경쟁 그룹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사업 개편 속도가 더뎠지만, 올해 들어 확대 의지를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의 지분 투자를 계기로 롯데그룹이 소재 사업 확대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사진=일요신문DB
지난 5월 롯데케미칼의 일본 쇼와덴코 지분(4.69%)에 대한 1700억 원 투자가 대표적이다. 쇼와덴코는 지난해 롯데가 8조 원을 베팅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배터리 소재 업체 일본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한 곳이다. 업계에선 롯데가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쇼와덴코에 대한 간접투자를 통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대한 의지를 더욱 굳혔다고 분석한다. 롯데케미칼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으나 사업 확대를 위해 추가로 쇼와덴코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롯데알미늄도 올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안산공장 증설과 헝가리 터터바녀 산업단지에 알루미늄박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기존에는 연간 3000톤을 생산해 왔는데, 이번 투자로 생산능력이 4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알루미늄박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양극재 핵심 소재다. 음극재의 핵심인 동박 사업을 두산솔루스 지분 투자로 확보한 만큼 시너지 효과도 노린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그룹의 소재 사업 확대가 점차 진행되는 가운데, 구체적인 행보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롯데정밀화학의 두산솔루스 지분 투자 목적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두산솔루스를 인수한 스카이레이크가 사모펀드고, 사모펀드의 목적은 경영보다는 재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에 있기 때문에 롯데정밀화학이 미리 인수 발판을 만들어 놨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번 지분 투자와 관련해 향후 두산솔루스에 대한 우선매수권 등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롯데케미칼이 장기적으로 롯데정밀화학을 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두산솔루스를 품어 정밀화학의 몸집을 불리는 건 전략적인 선택이 아닌 만큼, 롯데의 공식 입장대로 단순 투자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와 별도로 롯데케미칼이 대규모 M&A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일찌감치 1조 5000억 원대의 실탄을 준비해두고 시장엔 “좋은 매물을 찾고 있다”고 공언해왔다. 충분히 두산솔루스를 인수할 여력이 있었음에도 철회한 만큼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꾸준히 소재 사업 확대 시그널을 보내고 있고, 점차 확대 작업의 폭을 늘리고 있다”며 “대규모 인수합병 단행에 의문을 품는 시각은 없다. 어떤 매물을 품느냐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