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간에 개 초대하는 ‘다소 황당한’ 기획…쌍방향적이고 때론 고통스런 ‘반려’의 의미 짚어봐
특히 함부로 외출할 수조차 없는 코로나19 시대엔 동물과 인간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도 더 증폭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최근 개와 함께 색다른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미술관 전시가 이목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 이름마저 생소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을 공개한 것. 바야흐로 개와 함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 개와 함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두를 위한 열린 미술관’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열린 미술관을 강조한다. 미술관이 특정 층이나 세대만 즐기는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언제나 누구든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미술관의 개방성과 문화접근성 향상을 위한 시도인데 한편으론 모두에게 미술관의 공공성 범위와 공적 공간에 대한 정의를 묻는 전시이기도 하다. 미술관이 지향하는 ‘모두’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광장인 미술관에 인간 외 다른 존재인 개를 초청하는 다소 황당한 기획을 통해 또 다른 실천을 제안해보고자 한다”며 “개를 관람객으로 초대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반려의 의미를 짚어보고 과연 ‘모두’는 누구이고, ‘열린’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를 실험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가족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족일 수 없는 여러 존재와 사회에 팽배한 채 당연시되기 시작한 거부와 반목 같은 문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애완이라는 단어 대신 반려라는 단어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반려라는 행위는 언제나 쌍방향적이어서 때로 고통스러울 수 있고 다양한 형태를 띠며 행위에 책임이 요구된다“며 반려동물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나아가 사회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개와 나, 함께 관람하고 같이 체험하고
국내·외 작가 18팀의 작품과 퍼포먼스 25점과 3편의 영화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의 콘셉트가 개와 함께 가는 미술관인 만큼 전시는 단순한 볼거리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개와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체험거리들이 다채롭게 나열되어 있다. 독특한 애견카페나 애견펜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수도 있다. 전시를 관람하는 개와 나의 모습이 다른 관람객에게는 또 다른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전시는 일반전시를 비롯해 퍼포먼스와 스크리닝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작품의 주제어는 ‘인류세-광장’, ‘고통스러운 반려’, ‘소중한 타자성’, ‘더불어 되기’, ‘자연문화’, ‘움벨트(Umwelt, 자기중심적 세계)’ 등이다.
먼저 전시 부분에서는 설치, 조각, 애니메이션 등 13팀의 작품 20점을 볼 수 있다. 적록색맹인 개의 시각을 고려해 도구를 제작한 김용관의 ‘알아둬, 나는 크고 위험하지 않아’를 비롯해 미술관 마당에 개를 위한 미래의 숲을 설치한 조각스카웃의 ‘개의 꿈’, 개를 위한 공간인 김경재의 ‘가까운 미래, 남의 거실 이용방법’, 식물과 자연을 전시실로 가져온 유승종의 ‘모두를 위한 숲’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개다. 개가 작품의 주제가 아니라 관람객이 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스크리닝 프로그램으로는 ‘개, 달팽이 그리고 블루’라는 제목으로 영화 3편을 선보인다. 영화 전체가 단 하나의 색으로 구성된 데릭 저먼의 ‘블루(1993)’, 달팽이와 비올라 연주자가 비올라 활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순간을 관찰한 안리 살라의 ‘필요충분조건(2018)’, 애견 록시의 눈을 통해 눈먼 인간 세계의 고통과 작별하는 법을 말하는 장뤼크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2014)’이 상영된다.
또 수의사, 조경가, 건축가, 법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수의사에게 동물행동과 감정, 습성에 대한 자문을 구했고, 건축가에게는 개를 위한 건축과 조경에 대해 물었다. 개의 공공장소 출입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법학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전시 장소는 국립현대미술관이며 서울 7전시실과 미디어랩, 전시마당, 미술관마당, MMCA필름앤비디오 등에서 10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