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눈치보나” vs “차량 전소로 오래 걸려”…배터리 제작 함께한 LG화학-현대차 책임 공방 예고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12에 있는 현대차그룹 본사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코나EV 12번째 화재…국토부 조사만 1년째
지난 10월 4일 대구에서 코나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충전 완료된 차량이 충전단자에 연결된 상태에서 불이 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화재로 전소된 차량을 수거한 후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현대차는 화재 다음날 이례적으로 코나 전기차 고객들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문자에는 “최근 코나 일렉트릭 모델 일부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해 고객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현대차는 금번 화재 관련 조치방안에 대해 최종 유효성 검증 후 10월 중 고객 안내문을 통해 자세한 조치 내용을 알려드리겠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3월 출시 이후 코나 전기차는 총 12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2018년 5월과 8월 현대차 울산1공장에서 2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7월 강원 강릉, 8월 경기 부천·세종 등 3곳에서 차량이 불에 탔다. 또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도 화재 사고가 접수됐다. 올해는 대구, 전북 정읍, 제주 등에서 다섯 번의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코나 전기차는 올 상반기 기준 국내·외에서 총 10만 6638대 판매됐다. 국내와 해외 각각 2만 8919대, 7만 7719대를 차지했다.
총 12번의 화재가 발생했지만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첫 화재 발생일 기준 2년 5개월 동안 정확한 화재 원인도 모른 채 피해 고객만 늘어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과수와 국토교통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현대차, LG화학 등이 코나 전기차 화재 사건을 조사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8년 BMW 화재 사고 원인을 규명한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2018년 8월 국토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BMW가 제출한 자료의 검증, 현장 조사, 엔진 시험 등을 통해 화재 원인을 조사했다. 국토부는 4개월 만인 당해 12월에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초 10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밝혔지만 6개월이나 빨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차이에 일각에서는 현대차, LG화학 등 민간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조사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실 한 보좌관은 “지난해 9월 국토부가 조사에 착수했음에도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은 점이 의문”이라며 “아무래도 현대차가 국토부 조사에 참여하면서 원인을 명확히 내리는 데 차질을 빚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LG화학, 현대차 등이 서로 책임 공방을 하기 전에 완성차를 파는 현대차에서 책임을 지고 소비자 권익부터 보호해야 하고 국토부는 하루빨리 조사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현대차, LG화학 간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차량이 전소해서 조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며 “조사를 진행 중이라 정확하게 확인해드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8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기자동차 관련 박람회 EV 트렌드 코리아에서 ‘코나 일렉트릭’ 신차발표회를 진행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현대차·LG화학, 누구의 잘 못인가
화재 발생 원인 중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부품은 바로 배터리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접수된 사고 차량이 모두 주차상태에서 불이 났고 발화 지점이 배터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과수와 자동차안전연구원에게 각각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셀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문제로 화재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BMS는 고전압 배터리의 상태(전압·저항·내부온도 등)를 관리·기록하며 이상 여부를 감지하는 장치다.
국과수의 법안전감정서는 2곳(강릉·세종)의 화재에 대해서 배터리팩어셈블리 내부의 전기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화된 것으로 추정했다. 배터리셀 내부에서 절연파괴에 의한 열폭주가 발생해 발화됐을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코나EV 제작결함조사 중간보고’는 3곳(강릉·세종·부천)의 조사결과가 담겼다. BMS 이상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했다. B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과전류로 인한 스파크가 발생해 화재로 이어졌다고 본 것이다. 다만 왜 이 같은 기능 이상이 생겼는지는 명확히 소명하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코나 전기차 화재가 ESS(에너지저장시스템) 화재와도 닮았다고 지적한다. 올해 초 제2차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조사위)는 ESS 시설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결함을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이후 발생한 화재 5건 중 LG화학 3건, 삼성SDI 2건이 조사 대상이다. 앞서 작년 6월 제1차 조사위 역시 제작 주체가 다른 EMS·PMS·BMS를 유기적으로 연계·운영하지 못한 것을 ESS 화재 원인으로 꼽았다. 1차 조사는 2017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발생한 23건의 ESS 화재를 대상으로 했다. 특히 코나 전기차와 ESS 시설에 사용된 LG화학 배터리는 둘 다 중국 난징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LG화학 관계자는 “코나 전기차 화재는 정부에서 조사 중인 관계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ESS와 코나 배터리가 난징 공장에서 생산된 건 맞으나 생산라인과 제품 전혀 달라서 관련성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계 당국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으며 원인이 밝혀진다면 그에 따라서 조속히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지난 8일 코나 전기차에 대해 자발적 리콜에 나선다고 밝혔다. 고전압 배터리의 배터리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자동차안전연구원이 결함 조사 과정에서 검토한 다양한 원인 중에서 유력하게 추정한 화재 원인을 시정하기 위해 제작사에서 자발적으로 리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국토부와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이번 리콜과 별개로 화재 재현 시험 등 현재 진행 중인 결함 조사를 통해 제작사가 제시한 결함 원인과 리콜 계획의 적정성을 검증하고 필요 시 보완 조치할 계획이다.
한편 화재 발생 책임소재를 두고 현대차와 LG화학 간 공방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코나 전기차는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했지만, 현대차도 제작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이 배터리셀을 만들어서 LG화학과 현대모비스의 합작사인 에이치엘그린파워에 공급하면 에이치엘그린파워에서 배터리팩을 생산한다. 이후 현대모비스에서 에이치엘그린파워의 배터리팩과 현대케피코에서 생산한 BMS로 배터리시스템어셈블리를 만들어 현대차에 공급하는 식이다. 이 중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따라 책임소재가 정해진다는 뜻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가 유력한 화재 원인으로 보이고 셀을 공급한 LG화학과 BMS를 맡은 현대차가 책임소재를 가려야 할 것”이라며 “특히 정부가 ESS 화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코나 전기차 화재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근본적인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BMS를 업데이트하고 충전용량을 늘린 후 70~80%만 충전해서 쓰라는 말도 안 되는 해결 방안을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현대·기아차는 내년 출시하는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를 SK이노베이션으로 교체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대·기아차의 E-GMP 1차 물량을 수주했다. 내년 출시되는 아이오닉, 제네시스 등의 전기차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다. 그간 LG화학이 현대차, SK이노베이션이 기아차에 배터리를 공급해온 전략이 수정된 것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