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리그컵 우승이 마지막…폭풍 영입과 전술 변화로 무기력 탈피 공격력 폭발
손흥민의 토트넘이 공격력을 폭발시키며 시즌 초반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사진=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우승컵이 절실한 토트넘
대한민국 출신 이영표가 소속돼 활약하던 2000년대 중반 토트넘은 중위권에서 상위권 진출을 노리던 팀이었다. 2010년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가레스 베일(웨일스) 등의 활약으로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순위인 4위에 올랐고 이후 4위권 내를 간헐적으로 넘나들었다. 2019년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진출했다. 2010년대 들어 구단 위상을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토트넘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가장 확실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우승컵이었다. 토트넘의 마지막 우승은 2007-2008시즌 EFL컵(리그컵) 우승이었다. 디미티르 베르바토프(불가리아), 로비 킨(아일랜드) 투톱이 활약하던 12년 전이다. 현재 주축 멤버인 해리 케인(잉글랜드), 손흥민, 토비 알더베이럴트(벨기에), 위고 요리스(프랑스) 등이 성공적인 구단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지만 우승컵만은 따내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 소속 구단이 나서는 대회 중 리그컵은 다소 위상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그컵 이외 대회로 눈을 돌리면 토트넘의 우승 경험은 더욱 오래됐다. 토트넘은 FA컵에서 역대 8번의 우승을 차지했지만 최근의 경험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잉글랜드 1부리그가 현재의 ‘프리미어리그’라는 이름으로 개편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리그 우승의 경우 1961년이 마지막이다.
토트넘에 우승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리그에선 2016년과 2017년 3위와 2위에 올랐다. 특히 2015-2016시즌의 경우 맨체스터 시티와 유나이티드, 리버풀, 첼시 등 강호들이 동반 부진하며 레스터 시티가 이례적인 우승을 차지한 순간이었기에 아쉬움을 남겼다. 이듬해엔 우승팀 첼시와 승점 7점 차로 준우승에 그치며 다시 한번 좌절했다.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2017년과 2018년 FA컵 준결승에서도 토트넘은 번번이 미끄러졌다.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토트넘은 우승 트로피를 눈앞에 두고 좌절했다. 사진=연합뉴스
#무기력⟶공격 폭발, 토트넘의 반전
전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아래에서 리그 강팀으로 거듭난 토트넘은 이제 우승을 노린다. 2018-2019 시즌 초반 팀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구단 수뇌부는 포체티노와 결별하고 ‘명장’ 조세 무리뉴를 사령탑에 앉혔다. 감독 커리어에서 크고 작은 우승 횟수만 20회가 넘는 인물, 구단이 우승 욕심을 낸 것이다.
무리뉴 감독이 준비 과정부터 온전히 함께하는 이번 시즌, 심상치 않은 초반 일정을 보내고 있어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시작은 좋지 못했다. 리그 개막전 에버튼과 경기에선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으로 0-1 패배를 당했다. 손흥민이 이렇다 할 슈팅 기회조차 잡지 못할 정도였다. 약체 로코모티브 플로브디프(불가리아)와의 유로파리그 예선 일정에서조차 1군 전력을 가동한 끝에 2-1 신승을 거뒀다. 우승이 절실한 시즌, 토트넘에 부정적 평가만이 뒤따랐다.
이후 9월 20일 사우스햄튼전 5-2 대승을 시작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플로브디프전 포함 7경기에서 6승 1무로 무패행진을 거두고 있다. 리그 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6-1 대승을 거뒀다. 이 기간 25골을 넣고 10골을 내줬다. 매 경기 골을 내줘 무실점 경기는 없었지만 무자비한 공격력으로 승점을 따내고 있다.
리그 내 경쟁자들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도 토트넘에 호재다. 전 시즌 우승팀 리버풀은 승격팀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4-3 신승을 거두더니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2-7 대패를 당했다. 지난 시즌 2위와 3위에 나란히 올랐던 맨시티, 맨유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각각 1승 1무 1패, 1승 2패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첫 경기에서 패배했지만 팀 분위기를 수습한 토트넘은 6위를 기록 중이다.
#토트넘 반등 요인은
리그 개막전에서 무기력했던 토트넘은 2라운드 사우스햄튼전을 기점으로 공격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공격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다소 변화를 시도하며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토트넘의 진화 요인은 ‘손흥민의 전진, 케인의 후진’이었다. 지난 시즌 한때 과도한 수비 부담을 짊어지며 논란이 일었던 손흥민은 좀 더 골을 노리는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반면 케인은 중앙 공격수임에도 최전방에 머무르지 않고 미드필드 지역까지 내려오며 수비를 유인하고 탁월한 패스 감각을 자랑하고 있다. 그 결과 리그 득점과 도움 순위 최상단에 손흥민(6골), 케인(6도움)의 이름이 올랐다.
경기장 위에서 전술뿐만 아니라 선수단에도 변화가 있었다. 리그가 개막한 이후 가레스 베일, 세르히오 레길론(스페인), 카를로스 비니시우스(브라질) 등이 연이어 이적 합류했다. 토트넘 구단이 개막전 패배에 불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베일과 레길론이 토트넘으로 향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레길론은 맨유, 첼시, 에버튼 등 노리는 구단이 많았음에도 토트넘이 경쟁에서 승리했다.
이들은 앞서 개막 이전 팀에 합류한 이적 동기생 맷 도허티(아일랜드),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덴마크) 등과 함께 토트넘에 긍정적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흔들리는 경기력을 보였던 손흥민의 ‘절친’ 세르지 오리에(코트디부아르)는 경쟁자들이 영입되자 각성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토트넘에서 ‘월드 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한 베일의 존재 또한 기존 선수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 토트넘은 이적시장에서 소극적이었던 지난 몇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의 영입 실적만큼은 유럽 내에서도 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흥민은 커리어에서 이렇다 할 우승 경력이 없다.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이번 시즌 결과가 주목된다. 사진=토트넘 핫스퍼 페이스북
#손흥민도 우승이 고프다
손흥민도 토트넘과 함께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번 시즌 리그와 유로파리그를 통틀어 6경기에 나서 7골 3도움으로 날카로운 감각을 뽐내고 있다. 리그 3라운드(9월 27일)에선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전반전만 소화하고 교체돼 나와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경기에 나서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당초 최소 2주 이상 결장이 예상됐지만 믿기 어려운 회복력을 보였다. 손흥민 자신도 “내 다리에 뭔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할 정도였다.
신입생들의 존재도 손흥민에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주로 팀의 왼쪽 공격수로 나서는 손흥민은 그간 왼쪽 측면 수비수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손발을 맞춰 온 벤 데이비스(웨일스)의 공격력이 비교적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전 유럽에서도 전도유망한 공격형 측면 수비수로 손꼽히는 레길론의 존재는 손흥민의 짐을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손흥민의 왼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오른쪽에 베일이 폼을 되찾는다면 더욱 배가된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2020-2021시즌은 토트넘만큼이나 손흥민에게도 중요한 시즌이다. 손흥민은 2010년 유럽 성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함부르크, 레버쿠젠, 토트넘을 거치며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23세 이하 선수들이 나서는 대회였다. ‘메이저 대회’로 평가받기는 힘든 대회다.
손흥민은 오는 2021년 한국 나이 30세에 접어든다. 점점 더 어린 선수를 원하고 있는 유럽 이적시장의 변화 속에서 손흥민의 이적 가능성을 더 이상 섣불리 점치기 어렵다. 개인의 커리어를 위해 손흥민도 이번 시즌 어느 때보다 우승이 고픈 상황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