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수처장 추천위원 ‘비토권’ 행사 가능성…법 개정 불사? 특검 패키지딜? 이 대표 선택 주목
10월 14일 정부과천청사에 마련된 공수처 입주청사를 방문한 이낙연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국회사진취재단
공수처는 지난해 말 20대 국회에서 공수처설치법이 의결 처리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사무실까지 정부과천청사 건물에 마련됐지만, 시행 100일이 넘도록 돛도 올리지 못했다. 조직을 이끌 공수처장이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2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한 명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한다. 후보 추천위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인, 야당 교섭단체 추천 2인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앞서 민주당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 교수와 박경준 법무법인 인 대표변호사를 추천위원으로 선정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야당 몫 2명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추천을 미뤄왔다. 이에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제출함과 동시에, 후보 추천위원 제출 마지노선을 10월 26일로 정하며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정한 기한 마지막 날 야당 몫 추천위원 두 명으로 임정혁 이헌 변호사를 내정, 다음 날 이들에 대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추천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의힘은 후보 추천위원 내정에 대해 “국회를 더 이상 정쟁의 장으로 내몰 수 없어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추천서 국회 제출 후 “(이헌 임정혁 변호사는)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공정성·독립성·중립성을 유지하고 국민 모두에게 신뢰받은 처장을 추천해야 한다는 확고한 기준을 가진 적임자라 판단했다”며 “두 분 모두 법조계에서 공명정대하다는 평가받고 있는 만큼 정권의 입맛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중립적인 공수처장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서 후보 추천위원을 추천함에 따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이들을 정식 위촉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가 이번주 내 공식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의 추천위원을 두고 ‘공수처 저지 2라운드’가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임정혁 이헌 변호사의 전력 때문이다. 두 변호사 모두 ‘강성 보수’로 꼽힌다. 임정혁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대검찰청 공안2·3과장 등을 지낸 공안통으로, 시민단체와 선거사범 수사를 주로 맡아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종북 세력과 전쟁’을 선포하며 대검 공안부장이었던 임 변호사에게 총책임을 맡기기도 했다.
이헌 변호사 역시 이명박 정부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맞선 우파 변호사 조직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의 사무총장을 맡은 대표적 보수 인사다. 시변은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다룬 MBC ‘PD수첩’과 광우병 촛불집회 주최 측에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 등을 주도한 바 있다.
특히 이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였던 2015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추천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는데, 조사 방해 의혹이 제기돼 사퇴했다. 또한 지난해 10월 ‘뉴데일리’에 기고한 칼럼에서 공수처법에 대해 “악법 중의 악법인 검찰개악”이라며 “헌법상 권력 분립의 원리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공수처장 후보는 추천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이 있어야만 선임할 수 있다. 따라서 야당이 추천한 임정혁 이헌 변호사가 계속 ‘비토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후보 추천을 원천봉쇄하면 공수처 출범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0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에 2명의 추천위원을 배정한 것은 공정한 인물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혹시라도 공수처 출범을 가로막는 방편으로 악용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당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자신의 SNS를 통해 “공수처를 위헌기관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위헌기관장을 제대로 추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며 “국민의힘은 공수처 출범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공수처를 위헌 기관으로 간주하는 인사의 추천 내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이 끊임없이 요구해 더 이상 정쟁만 벌일 수 없어 우리 당 입장에서 공수처장을 추천하는데 공정성·독립성을 갖춘 적임자라고 판단해 내정한 것”이라며 “왜 우리 당의 판단을 다른 당에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현 공수처설치법 하에서는 국민의힘의 공수처장 추천 지연을 막을 방도가 딱히 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지금의 공수처법은 지난 20대 국회의 다당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정의당이나 국민의당 등 제3정당이 총선에서 선전해 교섭단체가 3당 이상 될 거라는 계산으로 야당 몫을 2자리로 정한 것”이라며 “하지만 21대 국회는 양당제에 가깝다. 국민의힘이 야당 몫 2자리를 모두 행사했다. 이들이 후보 추천을 계속 반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했다.
이에 민주당 안팎에서는 추천위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과 동시에 공수처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당 일부에서 나오는 ‘11월 내 공수처 설치 완료’ 달성을 위해 플랜B를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추천위 의결 정족수를 현행 6명에서 5명(3분의 2 이상)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백혜련 박범계 의원도 야당의 비토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외에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도 검·경 수사 이첩권한 등 이른바 ‘독소조항’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낸 개정안을 모두 소위원회에 올려 개정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 출범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 출범을 단독으로 강행할 경우 장외투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10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퇴장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럼에도 민주당이 법 개정까지 하며 공수처를 출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패스트트랙 충돌까지 벌이며 현행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법이 잘못됐다고 정식 출범도 전에 개정한다면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이라며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 법 개정을 통한 공수처 출범까지는 부담이 될 거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결국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이은 공수처 출범이 이낙연 대표의 리더십에 다시 한 번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진동 평론가는 “법 개정이 아니라면 이번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라임·옵티머스 특검 등 정치현안을 두고 민주당이 ‘패키지딜’을 할 수 있다. 이낙연 대표가 야당과 협치를 통한 타협을 이끌어 내 공수처를 출범시킨다면 리더십이 공고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공수처 출범에 대해 다시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진행하며 마지막에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개혁이란 국민의 여망이 담긴 공수처의 출범 지연도 이제 끝내 달라”고 당부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