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에 패소 시 재무 손실과 해외진출 난항은 물론 보톡스 사업도 기로에…대웅 “승소할 것”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보톡스 균주 도용 의혹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판결을 앞두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전경. 사진=일요신문DB
ITC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에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한 소송에 대해 오는 11월 19일(현지시간) 최종 판결을 내린다. 판세는 메디톡스 측에 기운 상태로 전해진다. ITC는 지난 7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등 영업 비밀을 도용했다고 판단하고, 나보타의 10년 수입 금지를 권고하는 예비 판결을 내렸다. 대웅제약 이의신청에 따라 재검토를 결정했지만 예비 판결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ITC가 예비 판결을 최종 단계에서 뒤집은 사례는 거의 없다.
지난 10월 26일에는 ITC 불공정수입조사국(OUII)도 기존 예비판결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냈다. OUII는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툴리눔 균주를 찾는 게 매우 어려웠다는 점은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균주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며 “메디톡스의 균주를 도용했다는 최종 판결이 나면 해당 제품 수입 금지 명령은 무기한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OUII는 소송 안건에 대한 의견을 내는 ITC 산하 조직으로, ITC 재판부는 최종 판결 시 OUII 의견을 참고한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원료인 보툴리눔 균주 출처를 두고 2012년부터 갈등을 벌여왔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 ‘나보타’의 균주가 자사 ‘메디톡신’ 균주와 동일하다며 대웅제약이 자사의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문서 등을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대웅제약은 국내 토양에서 균주를 발견했다며 메디톡스 주장은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방해하기 위해서라고 맞섰다.
공방은 2017년부터 법정으로 번졌다. 메디톡스는 2017년 미국 법원에 대웅제약을 기술 도용 혐의로 제소하고, 국내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2019년 1월엔 파트너사 엘러간과 함께 대웅제약과 그 파트너사 에볼루스를 ITC에 제소했다. 이번 최종판결은 지지부진한 법정 공방의 첫 공식 결과다.
ITC 최종 판결에서 패소할 경우 대웅제약이 입을 타격은 상당하다. 이미 양사는 수년간 연간 수백억 원의 소송비용을 부담해왔다. 여기에 패소 시 나보타 수출 중단과 과징금, 배상금을 고려하면 대웅제약은 상당한 재무적 손실을 입는다. 패소 시 미국 연방법원에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소송 장기화에 따른 법률 비용 부담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가 불확실성도 이어질 전망이다.
배상의 경우 메디톡스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내 나보타의 유통 판권을 사들인 에볼루스도 대웅제약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에볼루스 주주들은 ITC 예비판결에서 대웅제약과 에볼루스가 패소하자 최근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 에볼루스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된 계약서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고의적 위법행위나 중대한 과실, 태만 행위를 하면 에볼루스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에볼루스 주주들의 피해소송 등 법적 책임을 대웅제약이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패소 시 미국 시장을 포기하기보단 항소할 가능성이 높고, 이익률 높은 나보타의 미국 수출이 중단된다는 점에서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며 “에볼루스 소송 제기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타격이 굉장히 클 수 있다”고 전했다.
이미지와 신뢰도 훼손으로 대웅제약이 보톡스 시장에서 자리 잡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ITC 소송 결과가 국내에서 진행 중인 양사 민사재판에도 영향을 주고, 유럽과 중국 등 다른 시장에 진출하는 데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기술을 도용했다는 ITC 결과가 확정되면 기업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품을 쓰는 건 의사 입장에서든 환자를 위해서든 탐탁지 않다”며 “ITC 판결 내용이 국내 재판에서 인용될 경우 나보타는 사장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이어 “대웅제약 파트너사 에볼루스가 위기에 놓였듯 다른 국가 파트너사들도 문제된 업체의 기술 및 판권을 수입했다가 손해를 볼 수 있어 거래를 꺼릴 것”이라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유통이 잘될 거란 추측은 바람 수준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나보타 외에도 우루사와 알비스, 임팩타민, 넥시움 등 여러 주력 제품을 보유했고, 영업력과 마케팅, 조직력도 잘 갖춘 상위제약사 중 하나다. ITC 패소가 존폐 위기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나보타를 개발 판매 수출하고자 수년간 투자한 시간과 돈이 물거품이 되는 건 타격이 분명하다”고 했다.
대웅제약은 다른 신약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DWRX2003(성분명 니클로사마이드)’가 국내와 호주에서 최근 임상1상 시험을 승인받았고, 당뇨병 신약 ‘DWP16001(이나보글리플로진)’도 품목허가 신속심사대상으로 지정됐다. 다만 아직 파이프라인에 불과해 이익에 기여할 수준은 아니다. 당장은 기존 제품 매출에 의존해 막대한 소송비용과 나보타 수출 중단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모든 파이프라인은 불확실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대웅제약도 파이프라인으로 나보타 충격을 상쇄할 순 없다. 연구개발은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든다”며 “기존 제품들에 의존해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메디톡스가 제소한 대웅제약 영업비밀 침해 혐의 소송에 대해 오는 11월 19일(현지시간)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최종 결론을 앞두고 양사의 향방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사진=연합뉴스
소송 리스크를 제외하면 대웅제약 상황이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시장에서 나보타는 점유율이 낮았고 톡신 자체의 판가가 낮아 많아봐야 100억 원도 못 팔았다.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며 “해외의 경우 미국에서만 수출을 못할 뿐 다른 시장은 열려 있다”고 봤다. 이어 “대웅제약은 다른 제품군들이 많아 영업을 지속할 수 있고 이는 나보타 수출 중단에 따른 손해를 메워줄 수 있다”며 “보톡스 제품 의존도가 높은 메디톡스가 더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디톡스 상황도 악화일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메디톡스가 무허가 원액을 사용해 메디톡신을 만들었다며 지난 6월 품목 허가 취소를 내렸고, 지난 19일에는 메디톡신과 코어톡스 제품을 국가출하승인 없이 중국에 판매했다며 제품 회수와 폐기 명령을 내렸다. 메디톡스는 모두 행정명령 취소 및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시장에서는 메디톡스 제품군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 의료업계 전언이다. 기나긴 분쟁은 양사를 모두 발목 잡았다는 평가다.
대웅제약은 승소에 자신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ITC 소송 절차를 보면 행정법원에서 자료를 취하하고 행정판사가 그 자료를 근거로 본인 의견을 제출하는 예비 판결을 내리고, ITC에서 이를 인용할지 재검토할지 따진다”며 “재검토 결정은 예비 판결이 문제가 있으니 다시 들여다본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에볼루스의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는 “에볼루스가 미국 내 제품 판권도 보유하고 있지만 유럽도 보유하면서 소송에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협력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소송을 걸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보톡스 균주 논란이 잦은 배경은 경쟁 심화라는 데 업계 대부분 이견이 없다. 세계적인 피부미용 수요가 늘면서 보톡스 시장은 커지지만, 보톡스 원료인 보툴리눔 균은 독성이 강해 상업화 가능한 균주를 가진 업체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4개국에 각각 1곳씩 4곳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이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경쟁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균주 출처 논란이 국내 보톡스업체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성형외과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보톡스 균이 잘 사는 환경인지부터 조금씩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균 출처가 불분명한 회사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겠으나 경쟁하다보니 서로 문제를 부각시키며 논란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업체끼리 첨예하게 대립하다보면 그 속에서 명확한 균주 출처를 보유한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는 방향으로 판가름 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어 “한국 시장에선 약을 허술하게 만들고 판매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국가 이미지나 국내 제약사 신뢰도가 타격을 입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