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주머니 채워줬더니 토사구팽? 금호 공익법인 소속이라 대규모 실직 우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이 추진 중인 가운데, 비정상적인 지배구조 탓에 합병 과정에서 배제된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사와 지상조업협력사 직원들의 신음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 7월 당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박삼구 전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총수일가 주머니 채우는데 활용하고 고용보장은 뒷짐
“적어도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라면 인수 과정에서 일말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겠지만, 금호그룹 소속인 저희는 외면 받고 있다. 회사 그 누구도 대책과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무급휴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금호그룹에서 지원하지 않아 고용유지지원금 또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합병하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지라도 알고 싶다.”
KA 소속 한 직원은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사와 지상조업협력사 직원들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KA, KO 등 아시아나항공 재하청업체 계열사 소속 직원들이 지난 9월부터 급여를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합병 시 예상되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사들은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 10%를 이유로 아예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을 포기하고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사와 지상조업협력사 소속 직원들이 이처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원인의 배경에는 기형적 지배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KA, KO 등 지상조업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하청업체 아시아나에어포트의 재하청업체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아시나아나항공이나 아시아나에어포트의 자회사나 손자회사가 아닌 금호아시아나그룹 공익법인의 자회사·손자회사다. 앞서 금호그룹 재건 당시 박삼구 전 회장이 KA를 비롯한 여러 계열사를 설립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에서 맡던 지상조업 업무를 가져와 이들 계열사에게 일감을 쪼개 나눠줬다. 이렇게 2010년께부터 설립된 이른바 ‘케이 계열사’는 현재 10여 개에 이른다.
현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KA(여객지원)와 △KR(정비지원) △KO(기내청소‧수화물 및 기타 화물처리) △KF(경비용역 및 건물시설관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공익법인 죽호학원은 KI(건물시설관리)와 KG(근로자 파견업 및 기타 도급업) 지분 100%를 보유해 자회사로 두고 있다. 또 KO와 KA, KF는 다른 항공운수보조서비스 및 공항용역 계열사 AO, AH, AQ와 과거 금호인베스트였던 STM 등을 100% 자회사로 보유 중이다. KA와 KF, KI 등 세 곳은 금호고속 지분 총 3.6%를 보유해 박 전 회장의 지배력 확보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일감을 몰아 받은 ‘K(케이) 계열사’들의 수익 일부는 두 공익재단에 기부금과 배당금으로 흘러 들어갔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공개한 공시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재단의 기부금수익은 7억 8000만 원, 배당수익은 22억 4000만 원 규모다. 기부금 수익 대부분은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사 계열사들로부터 나왔다. 재단이 밝힌 기부자 명단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재단에 6400만 원을 기부했고 △KF가 1억 5000만 원 △AH 1억 7000만 원 △KO 1억 4000만 원 △KA 4000만 원 △KR 2000만 원 △STM 4000만 원 등 계열사들의 수익이 기부금 명목으로 재단에 귀속됐다.
과거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 경영권을 되찾아오는 과정에서도 이들 계열사가 활용됐다. 경제개혁연대는 2016년 1월 “박 전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 지분을 고가에 매입했고, 이 과정에서 공익재단의 자금이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은 물론, 이들이 자회사로 보유 중인 지상조업사 및 지상조업협력사들이 금호기업에 출자금을 조달해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정부가 주도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인수합병에서도 아시아나항공 재하청업체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 5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금호아시아나 KO지부 관계자들이 금호아시아나항공 하청 노동자 정리해고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지만 이번에도…”
앞서 HDC현대산업개발(현산)과의 인수 협상 때에는 금호그룹이 이들 용역업체에 대한 계약을 3년 연장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협상 대상에서는 제외돼 인수 예정자인 HDC현산의 직접고용이나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로의 전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재단의 수익을 위한 용역계약 연장만 요구된 셈이다. 이에 당시 아시아나항공 원·하청 노동자들은 고용승계과 고용구조 정상화를 요구했다.
김정남 아시아나KO 지부장(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은 “아시아나KO 등 지상조업 계열사에서 수익이 나면 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인 박 전 회장 주머니로 들어간다”며 “매년 배당금으로 15억 원 정도를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이 악화되자 가장 먼저 ‘케이 계열사’ 직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실시됐다. 노조에 따르면 KO의 경우 지난해 기준 500여 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올해만 이미 두 차례 희망퇴직이 실시돼 220여 명이 퇴사했다. 또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8명도 해고됐다. 회사에 남아있는 인원들 또한 대부분 무기한 무급휴직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이들 계열사는 배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계열사 직원들은 회사가 여러 개로 쪼개져 있는 탓에 함께 목소리를 내기도 각사의 현황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경호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국장은 “정리해고 관련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지만 인수합병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각사마다 상황이 달라 퇴직자 등의 파악도 어렵다”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사 노조 측은 지난 11월 24일 첫 회의를 열고 대응 방침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밝힌 양대 국적항공사의 통합과 항공산업 구조개편 작업의 목적은 기간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다. 합병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 우려가 제기되자 KDB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 한진그룹이 나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자회사가 아닌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사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김정남 지부장은 “지금은 아니라 해도 합병 이후 중복되는 노선을 시작으로 업무와 인력을 정리할 것이 빤하다. 원청(아시아나항공)의 상황도 그런데, 하청의 하청인 우리 입장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제 고용안정보다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인수합병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산은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배구조상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자회사인 지상조업사들을 인수 대상에 포함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계열사를 배제하면 대규모 해고사태에 따른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산은은 아직 지상조업사와 관련해 별다른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지상조업사 협력업체는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아시아나문화재단의 자회사로 있기 때문에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인수합병 과정에서는 관련해 따로 답변을 드릴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