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로 머리 길러, 40분간 움직임 없이 꼿꼿…재판부 “범죄조직 맞다” 중형
지난 10월 22일 결심공판에서 공개된 ‘박사방’ 피해자의 탄원서 내용 가운데 일부다. 11월 26일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이현우)가 이에 대한 답을 주는 날이었다. 이날 재판부는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11월 26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은 방청객들로 일찍부터 북적거렸다. 예정된 재판 시간은 오전 10시였으나 8시 20분부터 이미 20여 명의 시민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방청객 대부분은 여성들이었으나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성도 일부 있었다. 이들은 칼바람이 외투를 파고드는 추위에도 한 시간 반가량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피고인들, 조직적 범죄 부인했지만…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 대해 40년의 징역이 선고됐다. 사진=연합뉴스
오전 9시 50분 417호 대법정 안은 미리 줄을 서 있던 방청객과 뒤늦게 도착한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이윽고 양측 변호사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법원 관계자가 방청객과 기자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기 위해 검사석 뒤쪽에 위치한 문으로 드나드는 동안 문틈 사이로 녹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들의 모습이 얼핏 드러났다.
피고인은 총 6명으로 ‘박사’ 조주빈(24) 외에도 ‘태평양’ 이 아무개(16), 조주빈과 함께 살인을 공모한 전직 공익근무요원 강 아무개(24), 박사방을 함께 운영한 전 거제시청 공무원 천 아무개(29), 조주빈에게 가상화폐 등을 지급한 박사방 유료회원 장 아무개(40)와 임 아무개 씨(33)였다. 혐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과 범죄단체조직, 협박죄 등이다.
오전 10시. 재판부가 착석한 후 피고인 6명이 법정 왼편, 검사석 뒤쪽에 위치한 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조주빈은 체포 당시 짧았던 머리를 목까지 기른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가르마 전체를 왼쪽으로 넘겼는데 길어진 앞머리와 옆머리가 왼쪽 얼굴 일부를 가린 모습이었다. 조주빈이 법정 오른편에 마련된 피고인석에서 재판부와 가장 가깝게 앉았고 그 옆으로 이 씨, 강 씨, 천 씨, 장 씨, 임 씨 등이 차례로 자리를 채워 앉았다. 양쪽에는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피고인을 지키고 서 있었다.
판사는 피고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이들을 일으켜 세운 뒤 “공소 사실이 많아 확인에 다소 시간이 소요된다. 그때까지는 자리에 앉아있으라”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착석한 조주빈은 선고가 진행되는 40여 분간 시종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고 강 씨는 초조한 듯 두 손을 기도하는 자세로 마주잡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임 씨 등 나머지 피고인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이거나 무릎에 시선을 뒀다.
다만 조주빈은 재판이 끝난 뒤 자신을 보기 위해 앞으로 나온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콧잔등을 구기며 ‘찡긋’ 웃었다. 악수를 하면서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선고의 쟁점은 법원이 박사방 관련 피고인들을 범죄단체로 인정하느냐 여부였다. 이들이 실제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조주빈을 중심으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온 조직적 집단으로 볼 수 있다면 중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 등의 혐의만 인정된다면 최대 15년 내외의 형량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피고인들은 조직적 범죄에 대한 부분을 꾸준히 부인해왔다. 재판에서 조주빈 일당은 범죄집단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역할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주빈이 주도적으로 혼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며 자신들은 조주빈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주빈도 박사방은 범죄집단이 아니라고 주장해온 바 있다.
#유료회원들도 징역 7~8년형
박사방 조직도. 사진=서울중앙지검 제공
이에 대한 재판부의 대답은 ‘이들을 범죄집단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였다. 이현우 부장판사는 “박사방 조직은 텔레그램 내 개설된 박사방의 주요 구성원을 주축으로 한 다수로 구성된 사실이 명확하다”며 “조 씨와 공범들이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구성원들이 범행을 목적으로 구성되고 가담한 조직이다. 또 구성원들이 성착취 영상물 제작, 텔레그램 박사방 그룹 관리, 홍보, 가상화폐 수익 환전과 전달, 성착취물 유포와 반포, 광고 등의 행위를 수행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구성원들 대부분은 참여가 제한된 다른 방에도 참여했다. 박사방의 명칭은 변경되었으나 성착취물 유포와 참여자들의 조 씨를 향한 추종 등은 본질적인 면에서 변하지 않았다”며 “이런 부분을 총체적으로 판단하면 박사방 조직은 피고인들 주장과 달리 형법에서 말하는 범죄 목적의 집단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천 씨는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촬영한 혐의에 대해 “일부 영상은 합의 하에 촬영한 것이다. 이를 처벌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보호에 반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고 압수수색을 통해 나타난 증거물의 효력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이날 재판부는 천 씨의 위헌 제청을 기각한다고 못 박았다.
재판장이 공소사실과 인정되는 사실을 읽어 나갈 때마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잠시 허리를 뒤로 제쳐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가 하면 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때로는 기자단과 방청석 쪽을 짧게 응시하기도 했다.
방청석 네 번째 줄에는 조주빈의 아버지가 와 있었다. 조주빈에 대한 선고는 가장 마지막에 진행됐는데 그의 아버지는 판사가 다른 피고인에 대한 선고를 내릴 때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조주빈에게 40년의 징역이 선고되자 작게 “아이고”라고 탄식했다. 선고가 끝난 뒤에는 방청객 가장 앞줄로 나와 조주빈과 짧게 악수를 한 뒤 취재진을 피해 흡연실로 이동했다.
이 부장판사는 조주빈 외 피고인 5인에 대해 ”피고인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유인·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으며 특히 많은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줬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를 속였을 뿐 협박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해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증언하게 했다. 범행의 중대성과 치밀함, 피해자의 수와 정도, 사회적 해악, 피고인의 태도를 고려하면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이날 조주빈에 대해 징역 40년,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1억 604만 원 추징 등을 명령했다. 공범 천 씨와 강 씨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박사방 유료회원인 임 씨와 장 씨에게는 징역 8년과 7년, ‘태평양’ 이 씨는 미성년자 최대형인 장기 10년과 단기 5년을 선고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