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파일 삭제·부계정 이용 단속 피해…개인정보 거래·마약 판매도 버젓이
#다시 나타난 음란물 공유방
현재 운영되고 있는 음란물 공유방. 이들은 불법촬영물과 영상 등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텔레그램 캡처
n번방 사태 이후 잠잠했던 음란물 공유방이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이 다시 생성된 날은 11월 29일. 박사방 주범 조주빈이 11월 26일 징역 40년을 선고 받은 지 사흘 만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n번방의 주범들이 검거된 이후에도 텔레그램에서는 최소 세 개의 방에서 음란물 공유가 활발히 이뤄졌다.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방은 두 개인데, 이 중 한 개는 삭제와 생성을 반복하며 경찰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음란물이 올라오는 방은 닉네임 ‘거미’가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거미방’이라고 불리는 이 방은 다시 만들어진 지 3일 만에 400개의 사진과 237개의 영상파일이 업로드됐다. 입장한 인원은 680여 명으로 앞서 삭제된 또 다른 음란물 공유방 운영자도 이 방에 함께 있었다. 12월 2일 현재도 입장 인원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방 공지에 따르면 ‘n번방, 박사방 자료는 공유 금지. 선 넘는 미디어, 파일은 알아서 지우라’고 돼 있으나 해당 방에서의 자정 작용은 전혀 되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의 다리를 찍은 불법촬영물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가 하면 술 혹은 약물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의 뺨을 때리며 상태를 확인하는 내용의 영상도 여러 개 있었다.
특정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에 해당하는 중‧고등학생의 불법촬영물 자료를 구해달라는 요청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누군가 중‧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교복 입은 여학생의 불법촬영물을 올리자 방 참가자 중 한 명이 “지하철 몰카 영상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또 다른 참가자는 “거미한테 부탁해봐”라고 답했다.
12월 1일 기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나타나자 대화내용과 모든 자료를 지웠다. 사진=텔레그램 캡처
방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경찰 혹은 기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들은 “프로필 사진이 없거나 닉네임이 기본인 사람들은 경찰이나 기자”라고 말하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고 행동했다. 종종 기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방에서 내보내는 정도였다. 오히려 “야동을 올리는 것으로는 잡아가지 않는다”며 “잡힌 조주빈이 머리가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대화 내용과 공유된 파일을 지웠다. 경찰의 수사와 기자의 취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대화 내용에 따르면 대다수의 이용자들은 3~8개의 텔레그램 계정을 만들어 이를 부계정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사망을 피하고 있었다. 한편 12월 1일 밤 거미방 운영자는 “기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어 방을 밀겠다”며 이전 대화내용과 파일을 모두 지웠다. 그러나 이후로도 음란물은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개인정보 거래와 마약판매방도…
마약 구매 인증이 올라오는 방. 사진=텔레그램 캡처
이런 방은 대개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다. 텔레그램 운영 구조 상 특정 단어로도 방 검색이 가능하지만 검색이 허용되지 않은 비공개 방의 경우 해당 방의 주소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방의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거나 해당 방에 있는 누군가가 초대를 해야만 입장이 가능한 구조인데 현재 텔레그램에서는 ‘뉴 텔레포트’ 방이 다양한 방 주소를 모아 공유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여기에 올라오는 방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링크가 올라오는 곳. 다시 말해 가장 많은 홍보가 이뤄지고 있는 방은 이른바 ‘디비방’이다. 디비는 개인정보를 의미하는 DB·데이터베이스의 은어로 디비방에서는 개인정보가 거래되고 있었다. 주로 주식디비, 토토디비, 증권디비, 카지노디비 등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한 판매자의 경우 여성의 개인정보만을 따로 팔기도 했다. 한 판매자에게 디비의 품질과 출처에 관해 묻자 “한 번 사용한 디비는 다시 판매하지 않는다. 웹사이트에 당사자가 직접 입력한 정보를 우리만의 추출법으로 해킹해 판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마약 판매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은 마약을 뜻하는 각종 은어들을 사용하는가 하면 ‘우주여행 가이드’라는 홍보문구를 사용하며 마약 투약을 마치 우주에 있는 느낌으로 부적절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일부 판매자는 마약 구매 인증 사진을 따로 모아두는 일종의 후기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각종 음원과 소설 등 저작권이 명확한 자료를 불법으로 공유하는 방도 성행하고 있었다. 음원을 공유하는 ‘멜론방’의 경우 매달 최신 음원 100개가 주기적으로 올라왔고 소설 공유방에서는 참가자의 요청을 받은 소설을 텍스트 파일로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듯 텔레그램 내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으나 텔레그램 본사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앞서 텔레그램은 지난 3월 불법행위에 대해 “이용약관을 위반한 채팅창은 신고되면 발견 즉시 삭제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원론적인 수준에만 머무를 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국내 수사기관이 n번방 사태 등에 대해 텔레그램 본사에 협조 요청을 한 바 있으나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