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조항 없는 기본법에 품목·유형별 소관 부처 달라…참여 사업자 확대에만 집중해 소비자 알권리는 뒷전
2006년 농산물이력추적제를 시작으로 도입된 식품이력추적관리제도가 1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방역 관계자들이 계란 5만 3000개를 전량 폐기처분하고 있는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이력추적제는 식품의 제조·가공단계부터 판매단계까지 각 단계별로 정보를 기록·관리해 식품 안전성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회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제도다. 위해 식품이 시중에 유통됐을 경우 사업자들이 기록한 식품 정보를 통해 유통과정을 역추적 조사하고 사고 원인을 분석해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강제 조항 없는 식품안전기본법에 법안 신설 제안
우리 정부는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력추적제가 확산되자 같은 해 농산물 이력추적관리제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이력추적제를 도입했다. 이후 도입 품목이 확대되며 품목별로 소관 부처가 각각 운영하게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품일반‧가공식품‧축산물가공품‧건강기능식품‧수입가공식품)와 농림축산식품부(농산물‧축산물‧수입쇠고기), 해양수산부(수산물)는 품목별로 8개 근거법률에 따라 각각 운영해오고 있다. 수입식품 가운데 수입가공식품과 수입쇠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물품은 관세청이 관세법에 따라 관리한다.
그러나 식품의 품목별‧유형별로 각각 다른 소관 부처와 관련 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의무등록과 자율등록이 산재돼 있어 이력추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품목과 모든 단계에 걸쳐 입출고 사항의 기록 및 보관이 의무화된 EU와 미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 이력추적제는 의무 시행되는 품목이 단계별로 일부에 한정돼 있다. 식품안전과 관련한 상위법인 ‘식품안전기본법’은 추적조사를 위한 사업자의 기록 및 보관을 명시하고 있지만, 강제 조항이 없는 탓에 선언적 조항에 그친다.
단계별, 품목별로 제도가 별도 운영되며 사건이 발생할 경우 효과적인 대처가 어렵다. 실제 2018년 8월 학교급식 케이크에 의해 학교 50여 곳에서 2200여 명의 대규모 식중독 의심환자가 나온 사건이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케이크 크림 제조 때 사용된 액상란(계란 흰자)이 오염돼 식중독이 발생됐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완제품의 오염 원인을 밝히기 위해 원료를 포함한 식품사슬 전 단계에 이력추적을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식품이력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식품안전정보원은 ‘식품이력추적의 입법적 개선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모든 식품의 이력추적을 동일 법률 동일 기관에서 다룰 수 있도록 관련 법안 신설을 제안했다.
식품안전정보원은 보고서에서 “식품안전기본법에서 국가기관의 이력추적 시행 의무를 명시하고 품목별 소관부처가 상이한 9개 개별법에서 각각 구체화하고 있으나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식품안전기본법은 처벌규정이 없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포괄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할 때, 별도의 법률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3월 ‘농축수산물 생산단계 안전관리체계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력추적제의 통합을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올해 각 소관 부처에서는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식품안전정보원을 산하에 둔 식품의약품안전처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식약처는 일반 식품에 대한 식품이력추적제도를 총괄하지만, 등록·관리 등 운영과 제도에 대한 교육 및 홍보는 식품안전정보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이력추적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식품안전정보원이 식약처에 제언하면 그를 검토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이나 고시를 개정하는 작업을 거쳐 개선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식품안전정보원이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내놓은 제언에 대해서는 “관련 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했고, 식품정보원에서 식약처에 별도로 제언이 온 것은 없다”고 답했다.
정부의 이력추적제 사업은 여전히 대상 품목 및 참여 사업자 확대에 머물러있어, 소비자가 식품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 활성화 등은 요원한 상황이다. 사진은 식품안전정보원에서 운영하는 식품이력관리시스템. 사진=식품이력관리시스템 홈페이지 캡처.
#십 년째 쓰인 예산은 어디에…
소비자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중국의 경우 2020년부터 식품과 식용 농산물, 의약품 등 일부 중요제품에 이력 추적 QR코드 부착을 의무화했다. 더불어 중국 베이징시는 지난 11월부터 수입 냉동식품에 대해 이력추적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 부착도 의무화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각 부처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매년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본래 목적인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업이 여전히 식품이력추적관리 품목을 확대하고 참여 사업자를 늘리는데 머물러 있어, 소비자에 대한 제도 홍보나 소비자가 식품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 활성화 등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8년 국정감사에 당시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총 18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구축된 농산물이력추적관리시스템 ‘팜투테이블’의 방문자는 하루 평균(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 24명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최근에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구매자는 식품안전정보원이 운영하는 식품이력관리시스템 홈페이지와 해양수산부의 수산물이력제 홈페이지, 농림축산식품부의 축산물이력제 홈페이지를 통해 식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식품의 품목과 유형, 유통단계에 따라 정보가 등록된 홈페이지와 어플 등이 별도로 운영되는 만큼 구매자가 식품 이력정보를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QR코드를 통해 바로 이력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식품 유형과 품목도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담당하는 수산물과 농‧축산물에 제한된다.
예산은 여전히 생산자와 유통업자에 대한 교육‧홍보, 지원 등 제도 정착에만 집중돼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경우 매년 2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해양수산부는 2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해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 사업 설명자료를 보면 농림축산부는 축산물이력제와 수입축산물이력제 관리 사업을 별도로 나눠 시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과 2019년 축산물 이력제에 각각 222억 원, 196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고 올해에는 이력관리 품목을 닭‧오리‧계란에 확대적용하며 273억 원을 편성했다. 또 수입축산물 이력제에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8억 8500만 원, 7억 2200만 원이 집행됐고 올해는 7억 6800만 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사업추진 경과와 2019년 이후 향후 추진계획에는 “이력추적제 교육·홍보 강화”와 그에 따른 적용 확대 작업장의 “이력추적제 정착 유도” 등만 명시됐다.
해양수산부는 수산물이력제 운영에 2018년 25억 7900만 원, 2019년 22억 2000만 원을 집행했다. 올해에는 22억 2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해양수산부의 수산물이력제 사업은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이 위탁수행업체를 선정하면 위탁수행업체가 컨설팅과 교육·홍보 및 물품지원 등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해양수산부의 사업도 여전히 생산자 및 유통업자 지원에 그치는 셈이다.
이와 관련 과거 ‘농산물 이력관리시스템’을 개발해 정부로부터 제1호 임시허가를 부여받았던 중소벤처기업 그린스케일의 설완석 사장은 “현행 제도로는 식품위해 사고 발생시 원인규명은 물론,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이 어렵다”며 “과거 정부가 임시허가를 부여한 신기술 서비스를 적용해 정부의 전산등록 의무화를 도우려했지만 정부의 이력추적시스템이 부실하게 운영돼 연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관련 법을 개정하고 부처별로 나뉜 제도를 일원화해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