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업체에 환자 연결, 리베이트비 결국 환자 부담…환자 앞에서 대놓고 “비용 어떻게 할 거냐” 통화도
일요신문이 최근 의사와 장애인 의수족 제작업체 간 리베이트 정황을 담은 녹취록을 확보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그래픽=백소연 기자
#돈은 환자 주머니에서
18년 만에 의수를 교체하기로 마음먹은 장애인 K 씨는 한 의수족 제작 업체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처방전이 필요했다. 신체 일부가 절단된 장애인이 의수족을 맞추기 위해서는 재활의학과나 정형외과 등 관련 의사에게 처방을 반드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액의 건강보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도 사전엔 의사 처방전이, 사후엔 의사의 검수확인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K 씨가 찾아간 정형외과 원장인 담당의사는 갑자기 K 씨가 상담 중인 의수족 업체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의사는 K 씨가 옆에 있는 상태에서 의수족 업체 대표에게 다짜고짜 “비용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업체 대표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의사는 “처방전을 주기 전에 먼저 업체의 병원 내방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업체 대표가 “환자의 의수족을 맞추는데 처방전만 있으면 되지, 업체의 병원 방문은 불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자 의사는 ”그럼 환자를 본 병원과 연계된 다른 업체에 연결해도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의사가 환자를 앞에 두고 대놓고 업체에 리베이트를 요구한 셈이다. 의사는 업체와의 미팅이 끝난 뒤 처방전을 내주겠다며 K 씨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다시 통화한 의사와 업체 측은 구체적인 리베이트 금액을 상의했다. 리베이트로 오가는 돈이 환자가 내는 의수족 제작비에서 나가게 된다. 리베이트는 결국 환자 부담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녹취록을 건넨 제보자는 “이런 리베이트가 일부 사례만은 아닐 것”이라며 실제로 특정 업체가 병원에 수년 동안 리베이트를 상납한 또 다른 사례를 제시했다.
녹취록을 전한 제보자는 지방에서 의수족을 제작하는 A 업체가 수년 동안 지역 병원들에 리베이트를 상납하고 환자를 소개받았다고 주장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A 업체는 해당 지역의 대형 병원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등에 의수족 가격의 30%를 정기적으로 상납해왔다. 제보자는 이에 대한 증거자료인 리베이트 장부를 제시했다. 이 장부에는 환자 이름과 신상, 의수족 보장구명, 보장구의 가격, 리베이트 금액, 병원 담당과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리베이트는 통상 보장구 가격의 30%로 일률적이었다.
일요신문이 A 업체에 이를 확인하자 “리베이트 관련 장부라는 것은 조작된 문서로 내부 문서가 아니며 명백한 허위 사실이다”라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절단 환자 들어오면 귀띔
리베이트 관련 사례가 극히 일부 업체와 소수의 병원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관련 업계 전문가들에게 취재한 결과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부분에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신체 결손 장애인의 결손 정도에 따라 의수족 지원비를 정액으로 지원한다. 예를 들어 다리의 경우 종아리까지는 181만 원, 대퇴부까지는 227만 원 등의 지원금액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현실적으로 건강보험의 지원금보다 훨씬 비싼 제품을 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 지원금 외에 환자가 따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의수족 제작을 하는 업체 관계자는 “환자의 절단면이나 상태에 따라 재료와 제작기술에 차이가 많이 나 의수족은 기성품으로 맞추기 어렵고 환자마다 맞춤 제작이 필요하다”며 “의수족이 환자 신체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생활의 질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잘못 만들면 고통스러운 데다가 미용과 편의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질 좋은 의수족을 맞추고자 하는 환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처방전과 검수확인서를 무기삼아 리베이트를 받는 업체에 환자를 안내하는 일도 빈번하다. 결국 피해는 환자의 몫이 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제보자 제공
한국의지‧보조기협회는 “첨단기술과 AI(인공지능)가 발달하면서 의수족 가격은 재료나 기술에 따라 몇 백만 원에서 몇 억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부품이나 재료가 국산인 것도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 고가의 재료를 수입하기도 한다. 피부처럼 온도를 느끼거나 물에 들어가 수영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겨우 모양만 잡아주는 정도의 기본적인 사양도 있다. 다리의 경우 뒤로 가거나 뛰거나 디테일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것부터 겨우 천천히 걷는 정도만 보조해 주는 것까지 가격이 제각각이다”고 전했다.
첨단기술 적용 여부에 따라 가격이 많게는 1억~2억 원을 호가한다는 의수족. 이는 의수족 제작 업체에게 환자 한 명 한 명이 큰돈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활의학 쪽에서 검증된 병원이라면 신체 결손 환자도 많을 수밖에 없고 환자도 병원이나 담당의사가 추천하는 업체로 갈 확률이 높다. 업계 관계자들은 “상당수의 의수족 제작 업체들이 정기적으로 병원이나 의사 개인에게 리베이트를 주고 환자를 건네받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위에서 언급한 A 업체처럼 의수족 가격의 일부를 리베이트로 줘도 남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사는 환자의 절단 치료과정에서 연결된 업체에게 절단 환자가 들어왔다고 미리 정보를 준다. 때로는 물리치료사가 환자의 절단 부위 상태를 설명해준다며 친절하게 직접 업체까지 데려다 주는 일도 있다. 환자를 두고 돈거래를 하는 것이다”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병원이 환자를 연결된 업체로 안내할 때 처방전을 발행하는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의 의사들이 가담한다. 병원 전체가 암묵적으로 이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병원은 전혀 모르지만 의사 개인이 업체와 일대일로 거래하기도 한다. 순전히 의사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라 환자들은 알고도 피해를 입는다. 위의 사례처럼 설사 환자가 미리 알아봐 둔 제작 업체가 있다 하더라도 의사들은 처방전과 검수확인서를 무기삼아 리베이트를 받는 업체에 환자를 안내하는 일도 있다.
국내 300여 개의 의수족 업체가 등록되어 있는 한국의지‧보조기협회에 제작 업체와 의사 간 리베이트 관행에 대해 묻자 “그런 사례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런 업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 리베이트 증거가 있다면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업체가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줬다는 것은 의수족 가격에 거품이 들어갔다는 뜻이거나 리베이트로 들어간 비용을 빼기 위해 재료비를 낮췄을 것이기 때문에 사기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런 리베이트 관행과 그로 인한 장애인의 피해에 대해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장애인의 의수족과 보조기 등 보장구와 관련된 사항은 보건복지부 중앙보조기구센터에 모든 안건을 넘긴다”고만 전했다. 보건복지부 중앙보조기구센터는 다시 “해당센터는 장애인 보조기구에 대해서만 관장하므로 장애인 의수족 관련 제도 및 비용과 그 개선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임하고 있다”며 바통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넘겼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사와 업체 간 리베이트에 대해서까지는 알지 못하며 부정수급 등이 발생할 경우 조치할 수 있지만, 서류상 의료 수가대로 처리되는 부분 외에 다른 것은 알기 어렵다. 또 리베이트 건은 건강보험공단 권한 밖의 일”이라고만 전했다. 장애인 의수족의 의료수가를 최종 결정하고 집행하는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적발돼도 솜방망이 처벌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런 병원과 업체 간 리베이트 관행을 알고는 있을까. 사실 모르는 경우가 많고 위 사례의 K 씨처럼 만약 이런 관행을 알게 된다면 비용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K 씨는 “너무 기가 찼다. 더 이상 병원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법 제23조5(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취득 금지)에는 의료인이 의료기기 수입‧판매업자로부터 의료기기 채택‧사용유도‧거래유지 등을 목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장애인으로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L 씨는 “막상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면 미리 인터넷으로 알아봐준 업체가 있더라도 의사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병원에서 연결해주는 업체에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말초혈관질환이나 암 등 지병에 의한 절단도 있지만 아직도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절단 사고가 많다. 노동 현장에서 일했던 절단 환자들은 대개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절단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고 나면 더욱 그렇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힘들고 근근이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의수족을 제작하는 데 많은 돈을 들이기 어렵다. 그래도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선 의수족의 기능을 무시할 수 없고 빚을 내서 하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쪽에선 리베이트가 관행처럼 벌어지는 일”이라며 “서류상으로는 알 길이 없다. 병원은 처방전과 검수확인서를 써 주면 끝나고, 의수족 업체는 건강보험에서 지원받는 금액만큼만 의료수가를 작성해서 건강보험공단에 넘기면 된다. 나머지는 이중장부 등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병원이나 업체에 따라 리베이트가 얼마나 오가는지 직접 일처리를 하는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국 환자가 낸 금액 가운데 상당액이 병원 리베이트로 들어가는 것”이라 지적했다.
의료법 제23조5(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취득 금지)에는 의료인 및 의료기관 종사자는 의료기기 수입‧판매업자로부터 의료기기 채택‧사용유도‧거래유지 등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받거나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받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불법 리베이트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으로 의료인‧의료기관 개설자‧약사 등이 의약품 채택과 처방유도를 목적으로 제공되는 경제적 이익을 받을 시 1년 이내 면허 자격정지와 행정처분 및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리베이트 쌍벌제에 의해 리베이트 제공자와 수수자 모두를 처벌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6년간 불법 리베이트 수수 의사 행정처분 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6년 동안 2578명의 의사가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리베이트 수수로 행정처분을 받은 2578명의 의사 가운데 의사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의사는 단 46명이다. 924명은 그나마 몇 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1608명에 대해서는 단순 경고 처분만 이뤄졌다. 대부분이 제약회사와 의사 사이의 리베이트 건으로, 장애인 의수족 관련 리베이트 건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