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사찰 의혹 등 윤 총장 혐의 공수처 직접 수사 가능성…배우자·장모 관련 사건 이첩 요구할 수도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이종현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의 장기화는 문재인 정부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제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12월 10일 발표한 12월 2주차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긍정평가가 37.1%로 나타났다. 40%대 밑으로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1주차 결과보다도 0.3%포인트(p) 하락한 수치다. 반면 부정평가는 58.2%로, 전주 대비 0.8%p 올랐다. 현 정부 출범 후 최고치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눈여겨볼 대목은 진보층에서 긍정평가가 전주보다 6.0%p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여권에선 지지부진한 검찰개혁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감이 표출됐다고 해석했다. 추미애 장관이 주도하는 윤석열 총장 징계 건과는 별개로 검찰개혁 핵심인 공수처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야당 비토권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줬는데도 윤석열 총장에게 끌려 다니는 것에 대해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다”면서 “추미애는 추미애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민주당은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의원 287명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개정안 핵심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기존 ‘7명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재적 위원(7명)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완화한 것이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비토권을 행사해도 공수처장 후보 2인을 선출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 등 공수처 출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개정안 공포를 거쳐 시행되는 대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를 가동할 계획이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가 2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이르면 12월 말이나 내년 1월초 공수처장 임명과 함께 조직 구성을 끝내고 공수처가 공식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정가의 시선은 공수처 ‘1호 수사대상’이 누가될 것인지에 모아진다. 여권과 사정당국 안팎에선 윤석열 검찰총장이 될 것이란 말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윤 총장은 추미애 장관이 청구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윤석열 총장의 징계 여부와 수위를 심의할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2월 10일 열렸다. 이날 징계위는 9시간 30여 분 동안의 심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해, 오는 15일 오전 10시 30분 속개할 예정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윤 총장은 징계위 결과에 대해 불복 소송을 낸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결국 ‘추·윤 갈등’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공수처가 출범하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직 검찰총장으로서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될 경우 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도 윤석열 총장 징계에 따른 법적 공방과 정치적 반발 등을 감안하면 공수처 카드가 더 부담이 적을 수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은 임기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법무부 징계에도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며 “공수처가 출범하고 수사대상으로 압박이 들어오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굳이 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더라도 공수처 선에서 윤 총장 거취가 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월 2일 청와대 본관에서 이동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청와대 제공
여권 내부에서도 공공연하게 “윤석열 총장이 공수처 수사 대상 1호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과 그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이전부터 제기됐고, 일부는 수사 중이다. 또 추미애 장관이 징계를 청구하면서 여러 불법 의혹을 지적했다”며 “윤 총장이 1호 수사대상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공수처가 출범한다면 윤 총장에 대해 들여다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윤호중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공수처 1호 수사대상으로 윤석열 총장이 거론되고 있다는 지적에 “공수처가 출범해 결정할 일”이라며 “미리 어떻게 얘기하느냐”고 말을 아꼈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공수처를 통해 윤 총장을 끌어내리고, 검찰이 수사해온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2월 9일 비상의원총회에서 “울산시장 선거 개입사건,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등을 검찰이 수사하니 (이를) 막고 피하고자 추 장관을 동원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잘라내려고 한다. 그것도 안심이 안 돼 공수처를 만들어 자기 사람을 심어 범죄를 은폐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공수처가 청와대와 대통령의 친위 수사기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처음부터 제기돼왔다”며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인물이 누구인가. 윤석열 총장을 가장 먼저 수사대상에 올릴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윤 총장이 아니더라도, 지금 정권에서 가장 민감해 하는 월성원전 수사 등을 공수처가 가져와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공수처가 출범하고 윤 총장이 법무부 징계위에서 중징계를 받게 되면, 법무부가 수사 의뢰한 재판부 불법사찰 의혹 등 윤 총장의 범죄 혐의에 대해 공수처가 직접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윤 총장이 징계위에서 중징계를 피한다고 해도 공수처법에 따라 윤 총장은 ‘고위 공직자’로서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가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윤 총장 및 배우자·장모 관련 사건 이첩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검찰이 뭉쳐 정권과 법무부에 집단 반발하고 윤석열 총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축소되는데, 공수처까지 출범하면 검찰의 힘은 더욱 빠지게 된다. 각자도생에 정신이 없을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총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을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