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함께 사라진 50대 임원 유력 용의자…송금·반출 쉽지 않아 제주에 감췄을 가능성
경찰은 이번 사건의 혐의를 절도가 아닌 횡령으로 보고 있다. 유력한 용의자가 업무상 보관 관련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용의자 A 씨는 말레이시아 국적의 홍콩 랜딩인터내셔널 소속 50대 여성 임원으로 랜딩카지노가 문을 열었던 초기부터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연말에 휴가를 낸 뒤 일주일가량 연락이 끊어진 상태다. 경찰은 A 씨가 해외로 출국했을 것으로 보고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도 검토하고 있다.
랜딩카지노는 2018년 3월 문을 열었고 5581㎡ 규모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8726㎡)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2018년 문을 열자마자 3848억 1000만 원의 매출로 전국 16개 외국인전용 카지노 가운데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지만 여기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사라진 것은 145억 6000만 원 상당의 현금이다. 5만 원권의 경우 10kg 사과박스 하나에 대략 12억 원을 채울 수 있다. 사라진 현금이 모두 5만 원권이라고 가정할 경우 무려 사과박스 12개를 가득 채우고도 조금 남는다. 5만 원권으로 12억 원이 담긴 사과박스 하나의 무게는 23kg가량이니 145억여 원이면 280kg이 넘는다. 50대 여성이 홀로 옮기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다.
게다가 카지노 금고 안에 있는 현금이다. 다만 A 씨의 평소 업무 특성상 금고 접근이 용이했다. 카지노에서 주로 사용하는 금고는 일반 가정용 금고보다 훨씬 보안 수준이 높다. 비밀번호와 열쇠만으로 열 수 있는 금고가 아니다. 카지노에서도 극히 일부 관계자만 금고 여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A 씨가 바로 그 방법을 아는 극소수 인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절도가 아닌 횡령으로 구분된 것이다.
금고문을 연다고 해도 그 많은 돈을 그냥 들고 나올 수 없다. 카지노 특성상 거의 모든 곳에 CCTV가 있다. 금고 주위부터 건물 내·외부까지 수백 개의 CCTV가 있고 이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직원도 상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이렇게 큰돈을 빼돌리는 건 사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이들이 영화 ‘오션스일레븐’을 얘기하는데 거기서 훔친 금액은 1억 5000만 달러, 우리 돈 1640억 원 정도다. 이를 11명의 일당이 훔친 것이니 1인당 149억여 원이다. 이번 사건이 단독범의 소행이라면 1인당 훔친 금액은 영화와 비슷하다. 결국 A 씨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을 벌인 것인데 아무래도 단독 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경찰은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A 씨가 현금을 가져가는 길목에는 CCTV가 많았지만 카지노 측이 며칠 동안 그 사실을 몰랐고 그 사이 CCTV에 녹화된 영상도 자연 삭제됐다.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현재 경찰은 삭제된 영상의 복원 작업에 돌입했다. 경찰은 A 씨가 한 번에 145억여 원을 가져간 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빼돌렸을 가능성까지 감안해 지난 몇 달 치 삭제 영상을 모두 복원하기 위해 시도 중이다.
영화 ‘오션스일레븐’처럼 카지노에서 금고에 보관돼 있던 현금이 대거 사라지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무려 145억 6000만 원으로 무게가 280kg이나 된다. 사진=영화 ‘오션스일레븐’ 스틸컷
A 씨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관심사지만 사라진 145억여 원의 행방도 미스터리다. A 씨와 함께 이미 해외로 빠져나갔을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렵다. 사과박스 12개에 담긴 현금다발을 항공편이나 배편 수화물로 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금을 환전해서 외국으로 송금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제택배 역시 세관을 통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현금 145억여 원이 아직 제주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A 씨가 오랜 기간 카지노의 금고 등 자금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한 임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로 자금을 보내는 별도의 방법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또한 공범이 있다면 공범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현재 제주경찰청은 A 씨가 공범의 도움을 받아 한 번에 현금을 모두 빼갔을 가능성부터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조금씩 현금을 빼돌렸을 가능성까지 폭넓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미스터리는 왜 카지노가 이렇게 많은 돈을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었느냐다. 외국인 카지노에서 큰돈이 오고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1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게다가 랜딩카지노 소유의 돈도 아니라고 한다. 람정코리아 측은 사라진 현금이 본사 랜딩인터내셔널이 랜딩카지노에 맡겨 보관하던 것이라는 입장이다.
랜딩카지노는 2018년 3월 문을 열었고 5581㎡ 규모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8726㎡)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2018년 문을 열자마자 3848억 1000만 원의 매출로 전국 16개 외국인전용 카지노 가운데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9년 매출이 624억 5300만 원으로 급감했다. 2018년 8월 랜딩인터내셔널 양즈후이 회장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서 경영이 흔들린 탓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람정코리아 측은 이번에 사라진 현금이 카지노 자금과는 무관해 카지노 운영이나 경영에는 문제가 없다며 조만간 입장문을 내고 해명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