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팀 이랜드 명문 구단의 기틀 잡을 것…제자 이강인 이승우 데리고 뛰는 그날 왔으면”
정정용 감독은 프로팀 지도자로서 첫 시즌, ‘만년 꼴찌’ 서울 이랜드 FC를 다른팀으로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2008년부터 장기간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로 활약하던 정정용 감독은 2019년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둔 이후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가 선택한 팀은 서울 이랜드였다. 정 감독은 부임 첫해부터 우려의 눈길을 씻어냈다. 시즌 내내 중상위권에서 경쟁을 이어갔고 5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년차인 2021시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정정용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휴식기를 마친 서울 이랜드는 전남 목포에서 동계 전지훈련에 돌입했다. 정 감독은 “지난해까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1차 동계훈련은 해외에서 진행됐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됐다. 우리는 목포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팀들도 대부분 남부지방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월에는 제주로 넘어가서 조직 훈련을 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이랜드를 택한 이유
지난 시즌의 여운이 남아있는 시점이다. 그는 최하위를 전전하던 서울 이랜드를 단 1년 만에 상위권 경쟁이 가능한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받아든 성적은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눈앞에서 놓친 5위였다.
“우리의 운명이 거기까지였나 보다(웃음). 2020년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 특별한 해였다. 긴장, 설렘 등이 공존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플레이오프 진출)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선수들과 팀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서울 이랜드는 지난 시즌 막판 3위까지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3위 경남 FC, 4위 대전 하나시티즌과 최종 승점이 모두 동률이었다. 시즌 최종전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3위에 오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남전 무승부를 기록하며 5위에 머물렀다.
정정용 감독은 “마지막 경기 전까지는 우리가 3위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농담으로 입을 열며 “결국은 내가 부족했던 것이다. 마지막 경기는 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이 연기된 상황이었다. 그 연기된 기간 동안 관리가 부족했던 것 같다. 3위에 올라 있었기에 안일하기도 했다. 올해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무대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최하위를 도맡았던 서울 이랜드였기에 5위 성적만으로도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 감독은 이 같은 변화의 비결로 ‘신뢰’를 꼽았다.
“선수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려 노력했다. 각 개인에게 선수로서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려고 했다. 단순히 말로만 주입하는 것이 아닌 피지컬 데이터나 영상 분석을 토대로 기능적인 부분을 짚어주려고 했다.”
서울 이랜드는 정정용 감독이 선수시절 활약했던 친정팀이기도 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국내 어린 선수들과만 함께했던 과거와 달리 프로 무대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래도 좀 더 세심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특히나 K리그2 무대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면서 “다행스러운 것은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개성 있는 선수들을 많이 경험해봤다는 것이다. 지도자 연수 등으로 해외 생활을 해본 경험도 외국인 선수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과 한 동네에서 지내고 있기도 하다. 그는 “선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국내 선수들은 훈련 외 시간에 감독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것도 불편해 할 수 있다(웃음).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더라. 거리감 없이 잘 지낸다. 서로 ‘아미고(Amigo, 친구를 의미하는 스페인·포르투갈어)’라고 할 정도다”라며 웃었다.
팀을 환골탈태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불과 1년 전 서울 이랜드와 정정용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불안함이 담겨 있었다. 지속되는 저조한 성적에 팀이 ‘패배 의식에 젖어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U-20 월드컵에서 성과를 낸 지도자가 맡기에는 너무 환경이 척박한 팀’이라는 평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정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연령별 대표팀을 맡던 시절에도 인정을 받은 후에 프로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 팀에 온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도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시더라. 하지만 나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지도자다. 서울 이랜드에서의 도전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성과를 낸다면 지도자로서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팀을 향후 명문 구단으로서 기틀을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또한 내가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던 ‘친정팀’이기도 하다.”
정정용 감독은 연령별 지도자로서 성공을 거둔 이후 프로 무대로 커리어를 이어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U-20 월드컵의 추억
정정용 감독을 이야기할 때 2019 U-20 월드컵을 빼놓을 수 없다. 이강인, 오세훈 등을 앞세운 정 감독은 남자 축구 최초로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에서 결승전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강인은 대회 MVP(골든볼) 트로피를 품에 안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 감독에게 U-20 월드컵은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결승 진출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지만 우승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앞서 정 감독과 선수들은 아시아 예선에서도 준우승을 거둔 바 있다. 그는 “굉장히 기쁘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남을 수밖에 없는 대회”라며 “‘우리가 준우승에서 멈췄기에 이후로 도전하는 지도자와 선수들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 준우승이면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령별 대표 감독으로서의 경험은 그가 프로 무대 지도자로서의 활동에 자양분이 됐다. 이적 시장에서도 그의 ‘수완’이 발휘됐다. 연령별 대표 감독 시절 인연이 있거나 당시 관찰했던 선수들이 속속 서울 이랜드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같이 해본 친구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영입에서 우선순위에 들어가기 쉽다. 그 친구들도 나를 편하게 생각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발을 위해 전국을 돌며 중고교 대회까지 지켜봤던 정 감독이다. 이에 “아마 1994년생, 1995년생 아래로 우리나라에 있는 선수들 대부분을 직접 관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자랑이 아니고 그때는 그게 내가 해야 했던 일이다(웃음). 당시의 데이터를 일부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서울 이랜드와 계약한 선수 중 직접 지도했던 이상민, 황태현 이 외에 김정환 또한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정환이 같은 경우 대표팀 일원이었던 엄원상을 체크하러 갔다가 알게 된 선수다. 당시 대표팀이 대회에 나가서 성과를 내려면 원상이가 경기에서 뛰면서 감각을 올려야 하는데 정환이에 밀려서 경기를 못 나오고 있었다. 좋은 선수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우리 팀으로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때론 대표팀에서 함께했던 다른 제자들과 프로팀에서 호흡을 맞추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는 “최근 이강인이 새해 인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상상은 해본다. 우리 구단이 1부리그에 승격하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도 진출하면서 위상이 올라간다면 이강인뿐 아니라 이승우 등 제자들이 다들 한 번씩 와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라며 웃었다.
정 감독은 “가끔은 이강인이나 이승우 등 과거 제자들과 한 팀에서 호흡하는 상상을 해본다”며 웃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2021시즌, ‘무조건 승격’
정 감독은 동계 전지훈련으로 2021시즌에 이미 돌입했다. 그는 새 시즌에 대해 “이미 수차례 밝혀 왔기에 이미 엎어진 물이다(웃음). 무조건 승격을 이룰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올 시즌 목표를 주지시키고 있다”라며 “말로만 해서 되지 않는다. 정신적, 멘털적, 기술적, 전술적 네 가지 부분을 모두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승격을 강하게 외치는 배경에는 U-20 월드컵에서의 경험이 자리하기도 했다. “월드컵 때 나는 최초 목표를 4강이라고 말했고 선수들은 우승을 외쳤다. 결국 준우승을 이뤘다”면서 “지난 시즌 목표를 플레이오프 진출로 잡았었다. 그런데 결과는 그 언저리(5위)였다. 원하는 것을 쥐기 위해선 감독의 목표나 포부가 커야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1부리그에서 같은 도시 서울을 연고로 하는 FC 서울의 존재도 정 감독에겐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이다. 그는 “1부에서 FC 서울과 맞붙는 ‘서울 더비’를 팬들에게 선사하고 싶다”면서 “지도자 연수 등으로 해외에 나가보면 한 도시의 팀들이 맞붙을 때 각 팀 머플러를 두르고 팬들이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서울에서도 그런 장면을 보실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매 시즌 뜨거운 승격 경쟁이 펼쳐지는 K리그2 무대는 이번 시즌 역시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정 감독은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1부에서 내려온 김천 상무는 워낙 강팀이고 명문 부산 아이파크도 내려왔다. 지난해 함께 경쟁했던 경남은 이적 시장에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전도 여전하다. 어려운 외부 요건들이 있지만 이겨내야 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진행되는 것이 리그의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보시는 팬들도 그런 장면이 재미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오직 승격”만을 외치는 정 감독은 인터뷰 말미 또 하나의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했다.
“2021시즌에는 팬들과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부디 어려운 상황이 극복되길 바란다.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땀 흘리면서 좋은 결과 만들도록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