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외 출생자 신고 ‘모’가 해야 한다’는 법률적 한계가 비극 불러
분명 피해자의 시신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피해자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서류상으로 아무 기록도 없는 사람이다. 바로 ‘출생 미등록 아동’이다. 1월 15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양(8)은 친모가 호흡을 막아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모가 8세 아이를 살해한 끔찍한 사건인데 더욱 충격적인 부분이 A 양이 출생신고가 안 된, 그래서 미처 아무런 법적 보호와 행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아이였다는 점이다.
8세 딸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어머니 B 씨가 1월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월 15일 오후 3시 27분 무렵 119에 “구급차를 보내 달라. 아이가 죽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7분여 만에 구급차가 신고 장소인 인천 미추홀구의 한 주택가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고 오히려 뭔가 타는 냄새가 났다. 결국 경찰과 함께 잠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더니 A 양의 친모 B 씨(44)가 화장실 바닥에 이불과 옷가지를 모아놓고 불을 지르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미 연기를 흡입한 B 씨의 몸에는 수차례 자해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선 숨진 아이가 발견됐는데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바로 A 양이었다. B 씨는 현장에서 자신이 A양을 죽였다고 진술했고 병원 치료를 받은 뒤 바로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B 씨는 1월 8일 A 양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한 뒤 일주일가량 시신을 집안에 방치하다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B 씨와 별거 중이던 A 양의 친부 C 씨는 이날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귀가한 C 씨는 밤 10시 30분 무렵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내내 딸에 대한 죄책감을 호소한 C 씨는 경찰서를 나선 뒤 2시간여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 씨와 C 씨는 사실혼 관계로 2013년 A 양을 출산했다. B 씨는 전남편과 10여 년 전에 헤어졌지만 법적으로 이혼을 하진 않아 C 씨와 사실혼 관계로 지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이유로 A 양의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6월부터 B 씨와 C 씨는 별거에 들어갔다. C 씨의 유족에 따르면 별거의 결정적인 이유는 A 양의 출생신고였다고 한다. 2013년생이면 2020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A 양에겐 취학 통지서가 발송되지 않았다. 딸을 무척 아꼈다는 C 씨는 학교 문제 등으로 출생 신고를 하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B 씨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C 씨가 미혼부로 직접 출생신고를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C 씨 유가족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C 씨가 경찰서와 동사무소, 교육청 등에 문의했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혼모는 바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데 반해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신고의무자) 1항은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2항은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친모를 특정할 수 없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가정법원을 통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B 씨는 A 양을 살해한 것일까. 경찰 조사 과정에서 B 씨는 “생활고를 비관해서 죽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신고와 관련해선 “올해는 학교를 보내려 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경찰은 C 씨가 꾸준히 B 씨에게 돈을 보내준 정황을 파악하고 추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C 씨 유족을 통해 고인의 휴대전화 등을 확인한 조선일보는 C 씨가 평소 B 씨에게 생활비와 양육비를 보냈으며 휴대전화 요금과 전기요금 등 공과금은 물론이고 월세까지 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현행 법률이 출생 미등록 아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출산이 이뤄지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공공기관에 즉시 통보하는 보편적 출생신고제가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사진=보편적 출생신고 캠페인 홈페이지
B 씨는 A 양을 살인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와는 별개로 A 양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처벌받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출생신고하지 않은 데 대한 벌칙은 고작 과태료 5만 원이다(가족관계등록법 제122조).
이처럼 출생신고를 반드시 ‘혼인 중이라면 부나 모’, ‘혼인 외 출산은 모’로 규정해 놓고 있으며 이를 위반해도 과태료 5만 원만 내면 되는 현행 법률이 출생 미등록 아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친모나 친부가 출생신고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출생 미등록 아동이 방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출산이 이뤄지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공공기관에 즉시 통보하는 보편적 출생신고제가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보편적 출생신고제 도입을 주장하는 연대모임인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보편적 출생신고제도는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이 한국 정부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라며 “병원과 같은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하지 않고, 부모가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신고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