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수단 가치 하락, 타 구단주들 시선 걱정”…네이밍은? 마스코트는? 팬들 벌써 ‘신세계 구단’ 관심 폭발
지난 20시즌을 달려온 SK 와이번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사진=SK 와이번스 페이스북
매각 대금은 약 1353억 원이다. 인수 가격에는 주식 1000억 원과 야구 훈련장을 포함한 토지·건물 평가액 352억 8000만 원이 포함됐다. 연고지나 선수단 구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신세계그룹은 “연고지를 인천으로 유지하고 선수단과 프런트 역시 100% 고용 승계해 SK 와이번스가 쌓아온 인천 야구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 인수 절차를 마치면, KBO리그 40년 역사에서 기업간 야구단을 양수·양도한 역대 여섯 번째 사례가 된다.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이후 20년 만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창단 준비를 위한 실무팀을 구성했다. MOU 체결과 함께 야구단 인수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야구단 인수는 정용진 부회장의 적극적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박정훈 기자
신세계그룹의 야구단 인수는 예견됐던 일이다. 이전부터 “신세계가 야구단 운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늘 재정난에 시달리는 서울 히어로즈 야구단 인수 후보 기업으로도 수차례 거론됐다. 과거 여자프로농구단을 운영한 적이 있만 현재 신세계그룹에는 스포츠팀을 운영하는 계열사가 하나도 없다. 그룹의 첫 번째 스포츠사업 종목으로 국내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인 ‘야구’를 선택한 것이다. 야구광으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협상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SK텔레콤의 구단 매각 소식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관심은 ‘SK가 왜 야구단을 파느냐’에 쏠렸다. 과거 사라진 야구단은 대부분 모기업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 매각되거나 해체됐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해태 타이거즈가 모두 그랬다. MBC 청룡만 방송의 공공성 유지 차원에서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야구단을 LG그룹에 넘겼다.
SK그룹은 그렇지 않다. 재계 3위에 올라 있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심지어 SK 와이번스는 2000년 3월 쌍방울을 인수해 재창단한 뒤 한국시리즈에 여덟 번 진출하고 그중 네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21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SK그룹의 결정은 더 놀라웠다.
워낙 일이 극비리에 진행돼 야구단 관계자들조차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공식 발표 하루 전인 1월 25일, 매각 소식을 처음 들은 프런트 전원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며 패닉에 빠졌다. SK 관계자는 “구단 매각과 관련한 내용은 SK텔레콤이 일원화해 전달하기로 했다. 구단에서도 실제로 아는 내용이 많지 않아 드릴 말씀이 별로 없다”고 말을 아꼈다.
조짐도 전혀 없었다. SK그룹은 최근까지 야구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민경삼 대표이사, 류선규 단장, 김원형 감독을 모두 지난해 말 새로 선임했다. 지난 시즌 9위의 부진을 떨치고 새로 도약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많은 구단이 탐낸 두산 출신 자유계약선수(FA) 최주환도 발 빠르게 영입했다. 적지 않은 금액을 팀 전력 강화에 투자했다. 프런트도,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선수도 모두 “팀 내 어느 누구도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해 물어볼 사람도 없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그동안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프로야구단을 운영한 이유는 그룹 홍보와 이미지 제고, 소비자 밀착 마케팅을 통한 시너지 효과, 수익의 사회환원 등을 위해서였다. 현재 KBO리그에선 야구단이 독자적으로 수익을 낼 방법이 많지 않다. 매년 수백 억원을 투자하고도 큰 폭의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어떻게든 야구단을 끌고 가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룹 오너 일가가 큰 애착을 보이는 팀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이제는 야구단을 팔거나 해체하는 데 따른 이미지 타격이 훨씬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전히 재정 상태가 탄탄한 SK그룹이 야구단 운영에서 손을 뗐다는 소식은 야구계 전체에 불안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수도권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야구단이 산업으로서, 마케팅 수단으로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다른 기업 오너들이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한 야구 해설위원은 “SK 구단이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간 사례는 20년 만에 나왔지만 앞으로는 더 빨리, 더 자주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사업을 정리할 때 야구단을 후순위로 놓았다면, SK의 매각을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점쳤다.
SK텔레콤은 야구단을 판 공식적인 이유로 “앞으로 (프로보다는) 아마추어 스포츠 저변 확대와 한국 스포츠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더 기여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구단 매각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한국 스포츠 후원은 지속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육성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아마추어 스포츠를 장기 후원하고 국내 스포츠의 균형 발전과 글로벌 육성을 꾀하겠다는 더 큰 꿈을 갖겠다”며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등 첨단 ICT(정보통신기술)와 결합한 미래형 스포츠 발굴과 투자 등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현재 빙상과 펜싱 종목을 장기 지원하고 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8년 12월부터 대한핸드볼협회를 이끌면서 지난 12년간 한국 핸드볼에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제27대 대한핸드볼협회장 선거에서 4년 연임이 확정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그동안 SK 와이번스를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신세계그룹이 강력한 열정과 비전으로 인천 야구와 한국 프로야구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인사와 기대를 덧붙였다.
#신세계 야구단은 어떻게 출범하나
거대 유통기업인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스타벅스 등 대중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SK 와이번스 야구단 인수를 추진한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세계그룹은 “온·오프라인 통합과 온라인 시장 확장을 위해 수년 전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타진해왔다. 특히 기존 고객과 야구팬들의 교차점과 공유 경험이 커서 상호간 시너지가 클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프로야구가 800만 관중 시대를 맞이하면서 확대되는 팬과 신세계그룹의 고객을 접목하면 다양한 ‘고객 경험의 확장’도 가능할 것으로 봤다”고 역설했다.
신세계그룹이 올해부터 KBO리그에 참여하려면, SK 와이번스가 KBO에 회원자격 양도를 신청하는 게 먼저다. KBO 규약 제9조 1항에는 “구단이 회원 자격을 제삼자에게 양도하고자 하는 경우 또는 구단의 지배주주가 변경되는 경우, 구단은 그 전년도 11월 30일까지 총재에게 구단 양도 승인을 신청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시급하다고 인정되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총재는 신청기한을 조정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KBO 고위 관계자는 “새 회원사가 (리그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시간과 절차상 문제가 없다면 총재도 승인을 미룰 이유가 없다. 신세계그룹도 당장 올 시즌부터 KBO리그에서 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엔 KBO 이사회 총회에서 재적 회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KBO 이사회는 신세계그룹이 제출한 재정 상황 증빙서류, 구단 운영 계획서, 정관 및 KBO 규약 준수서약서 등을 검토한 뒤 결정을 내린다. 승인이 완료되고 신세계그룹이 KBO 가입금을 납부하면 곧바로 KBO 회원 자격을 얻는다. 신세계그룹은 이 절차를 마무리한 뒤 2월 23일 SK텔레콤과 정식 계약을 마칠 계획이다. “양사는 KBO, 인천광역시 등과의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최대한 빠르게 구단 출범과 관련된 실무 협의를 마무리하고, 4월 개막하는 정규시즌 개막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전했다.
일단 1월 두 차례 진행된 신세계와 SK 와이번스의 미팅에선 실무와 관련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갔다. 신세계 측은 그룹의 철학과 문화를 브리핑했고, SK 구단은 전반적인 팀 운영과 재무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2월 1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는데, 이 기간 동안은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으로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3월 8일 부산에서 시작하는 다른 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SK 유니폼을 입고 뛸 가능성이 크다. 신세계의 구단 네이밍과 엠블럼, 캐릭터가 3월 중 정식 출범식과 함께 공개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벌써 많은 야구팬이 정용진 부회장 SNS로 몰려 ‘이마트 트레이더스’ ‘이마트 피콕스’ ‘이마트 일렉트로닉스’ ‘이마트 노브랜즈’ 등 유머러스한 작명 아이디어를 쏟아낸 상황이다. 정 부회장을 향해 “홈구장에 스타벅스부터 입점시켜달라”는 목소리가 높고, “(신세계가 운영하는) 스타필드처럼 맛집을 대거 입점시켜 달라”는 기대도 나왔다. “유니폼은 이마트를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제작되나”와 같은 질문 역시 쏟아졌다. 올해 말 FA 시장에서 ‘새로운 투자자’가 어떤 선수에게 얼마나 돈을 쓸지도 벌써 관심거리다. 잠잠했던 스토브리그에 재미난 화젯거리가 생겨난 모양새다.
그러나 신세계 측은 새 팀명으로 ‘이마트’가 아닌 ‘SSG’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상징이었던 와이번스(비룡) 역시 다른 마스코트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야구단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새 구단으로 정식 출범하는 3월까지 변수가 많다”고 했다. 물론 3월 20일 개막하는 시범경기부터는 무조건 새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시범경기도 엄연히 KBO가 주관하는 ‘공식 경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야구팬이 가장 궁금해 하는 ‘옛 SK 와이번스’의 새로운 모습이 이때 진짜 베일을 벗는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