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구단주·사업가에 축구협회 부회장도 맡아…저장된 연락처 2600개 “축구 저변확대 힘쓸 것”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만나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사진=임준선 기자
#김병지는 오늘도 달린다
김병지 부회장은 맡은 일이 워낙 많기에 하루에도 서너 가지 일정이 잡혀 있다. 그는 “시간을 경영해야 한다”면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쉴 틈 없이 움직이며 만나는 사람도 많다. 끊임없이 벨이 울리는 그의 휴대전화에는 저장된 전화번호만 2600개가 넘는다. 그는 “선수 생활에 욕심이 있어 40대 중반이 되도록 현역으로 뛰었다. 그랬더니 은퇴 이후 시간이 부족하다. 바쁘게 지낼 수밖에 없다. 영표, 지성이는 적당한 시기에 축구화를 벗고 젊은 나이에 은퇴 이후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지금 돌아보니 ‘나도 더 일찍 은퇴할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웃었다.
바쁜 와중에 축구협회 부회장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았다. 몸이 10개라도 쉴 틈이 없지만 그는 “무거운 직책을 맡았다”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 중 협회 부회장 일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 앞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회장으로 생활체육, 저변확대, 여자축구, 마케팅 분야를 담당한다. 구체적인 부연을 요청하자 그는 최근 출연했던 TV 프로그램을 이야기했다. 지난 설 연휴, 김 부회장은 황선홍·최진철 전 감독, 이천수 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등과 함께 아마추어 여자축구 프로그램인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에서 1일 감독으로 활약했다.
“그 프로그램에 내가 협회에서 맡은 모든 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마추어, 여성들에게 축구의 재미를 알게 해준다면 그것만큼 좋은 생활축구와 여자축구 발전, 저변확대와 마케팅 방안이 있겠나. 이런 것들이 방송 출연 외에도 그동안 내가 해왔던 활동과 깊이 관련이 있다. 부회장 임기 2년간 열심히 해보겠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도 김 부회장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경기를 치르는 방식 등에 대해 방송국에 조언을 많이 했다. 황선홍 최진철 이천수라는 라인업도 내가 짰다”면서 “정규 편성이 되면 4명의 감독이 유지되는 것이 관건인데, 황선홍·최진철 감독은 새 직장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웃음). 그렇게 된다면 새 감독을 선발하는 것도 내 몫이다. 언젠가 박지성을 부를 날도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기획 과정부터 참여한 김 부회장은 출연자로서도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는 “나도 그렇고 동료들도 아주 재밌게 녹화했다. 참가한 연예인분들, 선수 가족들은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보시는 분들도 내가 출연했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더 ‘재밌다’는 반응을 많이 보여주셨다. 시청률도 드라마를 제외하면 설 연휴 기간 최상위권(닐슨코리아 기준 10.2%)이더라. 이 정도면 정규 편성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카리스마’로 대변되던 황선홍 감독의 부드러운 모습이 이목을 끈 것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황선홍 선배에게 ‘신비주의’도 좋지만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자주 드린다”고 전했다.
김병지 부회장은 최근 K리그에 발을 들인 후배 이영표 대표이사, 박지성 어드바이저에 대해 “홈경기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K리그도 그의 관심사 중 하나다. 그는 “특히 이번 시즌 K리그는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영표는 강원 FC 대표이사로, 박지성은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로 K리그에서 함께하게 됐다. 다른 일도 잘해야겠지만 팬들을 위해 각 팀 홈경기에는 자주 ‘출석’ 했으면 좋겠다. 양팀이 맞대결을 펼칠 때는 나도 방문해 흥을 돋우겠다. K리그 홍보대사를 맡았던 적이 있는데 한 번 맡으면 평생 가는 타이틀이더라(웃음). 조금이라도 홍보가 된다면 기꺼이 한 몸 바치겠다.”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동해안 더비도 그의 관심사였다. 김 부회장은 “포항 출신 홍명보 선배가 울산 감독을 맡았다.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하셨는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병지 부회장은 울산과 포항 양팀을 모두 거친 경력이 있다. 1997년 울산 소속으로 포항에 골을 넣으며 양팀의 라이벌 의식을 촉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 포항으로 이적했고 공교롭게 울산이 부진하자 ‘김병지의 저주’라는 말을 탄생했다. 두 가지 유니폼을 모두 입어 본 김 부회장은 어떤 팀을 더 응원할까.
그는 “은퇴 이후 양팀의 초청을 모두 받은 적이 있다. 갈 때마다 초청한 팀을 응원한다”면서도 “평소에는 울산에 조금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울산은 내가 프로에 데뷔한 친정팀이다. 은퇴식을 열어주기도 했고”라고 말했다.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리그의 아쉬운 부분도 꼬집었다. 현재 12개 팀으로 운영 중인 1부리그의 팀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때 16개 팀으로 운영되다 2부리그가 도입되며 12개 팀으로 줄였다. 시대에 역행하는 판단이었다고 본다. 일부에선 ‘우리나라 실정에 12개 팀이 넘어가면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하부리그 인프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지금 2부리그에 있는 부산, 경남, 대전, 서울 이랜드, 전남 같은 팀들은 1부리그에 있어도 손색이 없는 능력을 갖춘 팀 아닌가. 하루 빨리 1부리그 팀을 늘리고 판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행정이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서 판은 충분히 커질 수 있다. 축구는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구단주’ 김병지의 최종 목표
김병지 부회장은 누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선수 시절 직장인 팀에서 활약하다 상무에 입대, 프로 입단을 이뤄내며 월드컵까지 출전한 신화를 만들었다. 골키퍼 최초 골, 최다출장(706), 최다 무교체 출장(153경기) 등 숱한 기록도 만들어 냈다. 은퇴 이후에는 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인기 유튜버로 활약 중이다. 그러나 김병지 부회장은 이내 협회 업무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만큼 그는 부회장 임무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그는 임기 2년 내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당연히 맡은 일 모든 분야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2년 안에 꼭 이뤄내고 싶은 것은 ‘축구 박람회’를 여는 것이다. 아내가 작가 활동을 하고 있어서 아트페어 같은 현장을 찾은 경험이 많았다. 축구계에도 이런 장이 펼쳐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축구 관련 산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구단부터 마케팅, 용품 제작업체 등 모두 모여 홍보, 정보공유, 인력 충원의 장을 열어보려 한다. 정몽규 회장님께 말씀을 드렸고 얼마 전 정몽준 명예회장님을 만나 말씀을 드렸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주시더라. 잘 준비해 보겠다.”
저변확대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는 “우리나라는 이미 인프라 구축은 어느 정도 돼 있다고 본다. 이를 행정적으로 어떻게 이끄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생활 축구로 눈을 돌려보면 4 대 4, 5 대 5 등 소규모 축구를 즐기는 인구가 정말 많다. 풋살장을 운영해보면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예약이 꽉 찬다. 이들을 끌어안는다면 축구계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재 분리된 축구협회와 풋살연맹이 결국은 합쳐져야 한다고 본다. 풋살 쪽 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축구협회가 잘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최종 목표를 물었다. 김 부회장의 대답은 성공한 유튜버, 사업가나 행정가가 아닌 ‘구단주’다.
그는 “지금은 K7 리그에도 편입하지 못한 아마추어 구단 ‘꽁병지 FC’를 운영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K3리그 정도에서 활약하는 구단으로 키워나가고 싶다. 직장인 팀에서 뛰다 국가대표까지 경험한 기적 같은 내 선수 시절 스토리보다 더 가능성이 낮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꿈조차 꾸지 않으면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없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처럼 구단주라는 꿈을 위해 나아갈 것”이라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