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대상 명확치 않고 현 정부 ‘부동산 실정’ 부각 위험…‘사저 논란’ 대통령 직접 등판 역공당할 우려
다시 적폐청산 프레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적폐청산 카드를 꺼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문 대통령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의 경남 양산 사저 부지 의혹 제기에 대해선 “좀스럽다”며 직접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LH 사태가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들자 시선 돌리기 전략을 썼다는 해석부터 청와대 정무기능 오류까지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 이 국면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운명을 결정할 중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3월 16일 오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시흥시 과림동에 규탄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여권 한 관계자는 “부동산 적폐청산 프레임은 문 대통령의 정면 돌파 카드”라고 잘라 말했다. LH발 투기 의혹이 처음 제기됐던 3월 2일 이후 문 대통령 메시지 수위는 그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추(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윤(윤석열 전 검찰총장) 갈등에서 뒷짐 논란에 휘말렸던 문 대통령은 이번엔 적극적인 메시지를 발신했다. 3월 3일부터 첫 사과를 한 3월 16일까지 휴일을 빼곤 11일 연속 관련 언급을 했다. 문 대통령이 사과한 날에도 청와대는 “부동산 적폐청산 다짐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LH 사태 직후다. 실제 문 대통령의 메시지 강도는 점차 높아졌다. 문 대통령의 첫 메시지는 ‘국토부·LH 근무자·가족 토지거래 전수조사’였다. 이후 LH 직원의 투기 의혹으로 들끓었던 3월 10일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 강도를 높였다. 부동산 적폐청산 프레임을 꺼낸 것은 3월 12일로, ‘차명거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같은 날 문 대통령은 이른바 ‘김수현 사단’으로 분류되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 표명을 사실상 수용했다. 변 장관이 LH 사장에서 국토부 장관으로 승전한 지 74일 만이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문재인 정부의 첫 경질성 인사”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 전날인 3월 11일 ‘셀프 면죄’ 논란을 일으킨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도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청산론을 꺼낸 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1만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정부합동조사단이 추가로 투기 의혹 사례를 적발한 것은 7명에 불과했다. 그 7명도 모두 LH 직원이었다. 국토부 직원은 없었다.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도 비서관급 이상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했지만, 투기 의심 사례는 ‘제로(0)’였다. 차명이나 가족거래는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조사를 마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3월 15일에는 ‘촛불 정신’까지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수보)회의에서 “단호한 의지와 결기로 부동산 적폐 청산 및 투명하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질서 확립을 남은 임기 핵심 국정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적폐’라는 단어만 5차례 사용했다. 야권 전략통들은 “문 대통령 지지도가 LH발 투기 의혹에 짓눌리자, 다시 적폐청산 프레임을 꺼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수보회의 직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선 문 대통령 지지도가 5주 만에 30%대로 주저앉았다. YTN 의뢰로 3월 8∼12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 지지도는 2.4%포인트(p) 하락한 37.7%로, 지난 2월 1주(39.3%) 이후 처음으로 심리적 마지노선(40%)이 무너졌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57.4%(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까지 치솟았다. 국정 지지도가 지난 대선 득표율(41%)을 밑돈 것은 문 대통령 곁에 사실상 지지층만 남았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국면전환 승부수로 부동산 적폐청산론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 정부 상징인 적폐청산 프레임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반보수 여론’을 떠받든 강력한 축이었다. 여권은 “또 전 정권 탓이냐”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적 변곡점마다 적폐청산을 외쳤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분석가는 이에 대해 “집토끼(지지층)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토끼 정치 논리는 간단하다. 국민의 이념적 포지션은 ‘진보 35%, 보수 35%, 중도·무당파 30%’ 등으로 구성된다. 극단적 이념 대결로 지지층을 위한 정치를 하면, 최종 득표율은 ‘35%+알파(α)’로 수렴한다. 어떤 선거를 해도 40% 선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 특히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재보선의 경우 40% 안팎만 확보해도 당선권에 진입한다는 의미다. 여권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번 재보선 투표율이 40%대 초반이면, 해볼 만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당선됐던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선 투표율은 48.6%였다. 이후 광역지차단체장 재보선은 없었다. 지난해 4·15 재보선 당시 기초지치단체장(63.0%)과 광역(67.0%)·기초(65.8%)의원 투표율은 60%대 중후반에 달했다.
국민의힘 ‘문재인정부 땅투기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위원들이 3월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와 LH 중심의 신도시, 택지 개발 정책을 전면 재조정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집토끼 정치는 팬덤이 강한 친문계가 손쉽게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정치공학 셈법으로 꼽힌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 한 의원은 “지역 민심이 흉흉한 탓에 서울시장보다는 부산시장 보선이 더 나은 상황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서울도 결국 51 대 49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여권 내부에선 “(LH 사태가) 선거 막판에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기류도 흘러나온다. 향후 1∼2주간 후속 대책을 쏟아내면 여론을 잠재울 수도 있다는 일종의 낙관론인 셈이다.
그러나 여권의 집토끼 정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검찰개혁을 고리로 한 적폐청산을 외쳤던 정권 초반과는 달리 부동산 적폐청산 프레임은 자충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정권의 이니셔티브(주도권)가 약한 임기 말이라는 점 △부동산 실정=여권의 약한 고리라는 점 △적폐청산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등이 꼽힌다. 여권이 부동산 적폐청산을 외칠 때마다 야권은 “생뚱맞다. LH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으로, 실패한 정책이니 백지화하라(유승민)”, “난데없이 국민에게 화살을 돌렸다. 무책임한 지도자의 민낯(윤희숙)” 등의 발언으로 문 대통령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정쟁의 필드 플레이어를 자처할수록 여권의 딜레마는 커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참전한 사저 의혹 공방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이 경남 양산 사저의 형질 변경 문제를 본격화하자,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야당 의원들이 이 형질변경을 ‘LH 수법’이라고 비판한 직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돌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멘트는 문 대통령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초조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직접 참전을 방기한 청와대 정무 기능이 오작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그 사이 미니 대선인 재보선 패배의 그림자는 한층 짙어졌다. LH발 투기 의혹 이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자 구도에서조차 오차범위 내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박 후보는 연일 강경 메시지를 내놓은 문 대통령과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특별검사제(특검)를 승부수로 띄웠지만, 지지도는 요지부동이었다. 비문(비문재인)계 한 의원은 “지지층만을 위한 정치는 안 된다”라며 “선거 승리는 중도층 표심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LH발 정국에서 여권이 검찰 탓으로 책임을 돌리면서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정국 한복판에 소환됐다. 수면 아래에 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부동산 시장 부패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연일 윤 전 총장을 저격했다. 그러자 윤 전 총장은 부패 척결 이미지와 함께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반사체의 위력’을 다시금 발휘하며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강 체제로 치고 나갔다.
다만 문 대통령에게 기회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친문 지지층을 구축한 문 대통령은 87년 체제 이후 반복된 대통령의 ‘레임덕→탈당→퇴임 후 구속’의 굴레에 갇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래권력과의 충돌도 없다.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문심(문 대통령 의중) 경쟁을 벌이는 것도 레임덕 방패막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포스트 이낙연을 노리는 송영길·우원식·홍영표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한 원로 정치인은 “재보선 결과와 이후 개각을 둘러싼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가 문재인 정부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