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공무원 수사 의뢰, LH 임직원도 투기 의혹…사기업은 투기 파악·처벌 현실적 한계
#부동산 투기 현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살펴보니
2019년 2월 21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용인시에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SK하이닉스는 특수목적회사(SPC)를 구성해 용인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와 50개 이상의 협력업체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참여한다는 내용이었다.
SK하이닉스는 부지 조성 완료 후 12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공장) 4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또 협력업체 상생에 1조 22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2만 5000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SK하이닉스는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발표 후 부동산 업계에서도 용인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용인시는 2019년 3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를 대대적으로 지도·단속한다”며 “투기세력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조성 완료 후 12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 4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전경. 사진=일요신문DB
그러나 용인시의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공무원들의 투기 사실이 하나둘 확인되고 있다. 지난 3월 9~14일 용인시는 소속 공무원 4361명과 용인도시공사 직원 456명 등 총 4817명의 공직자를 대상으로 투기 관련 1차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용인시 공무원 6명의 클러스터 인근 토지 거래가 확인됐고, 용인시는 이 중 관련 부서에 근무했거나 취득 경위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3명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용인시는 이어 직원을 포함해 배우자, 형제·자매 등 약 2800명을 대상으로 2차 전수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도면 유출? SK 관련 소문? 정보의 출처는 어디서
용인시는 2014년 3월 1일부터 2019년 3월 29일 사이 인근 토지를 매입한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2019년 2월 공식 발표됐지만 이전부터 관련 소문이 무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 사회에서는 용인시 공무원 외에도 외부 투기세력들이 2019년 이전부터 용인시 원삼면 인근에 관심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용인시 원삼주민통합대책위원회 측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도면이 유출됐다고 했다. 2016년부터 인근 부동산이 갖고 있던 예상도면과 사업부지 확정 후 용인시가 공개한 도면이 일치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인근 지역 한 관계자는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이전부터 도면이 돌고 있었다는 소문은 있었다”며 “산업부나 SK하이닉스 또는 용역을 맡았던 곳으로부터 유출됐다는 추측은 있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고 전했다.
도면 유출이 아니더라도 SK그룹이 용인시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차원에서 수도권 지역 공장부지 확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SK그룹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2017년 SK건설이 용인 산업단지 구성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정부에 건의했지만 결과적으로 탈락했다”며 “이때부터 SK가 해당 지역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동산 투기가 시작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규명 어렵고, 사실로 밝혀져도 처벌 쉽지 않아
용인시 공무원 외에 LH와 SK하이닉스 임직원들도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원삼주민통합대책위원회는 200여 건의 투기 의심 거래 중 30건이 LH 임직원의 거래고, 적지 않은 SK하이닉스 직원들도 투기에 나섰다고 의심 중이다. 원삼주민통합대책위원회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이 해당 토지를 매입했다는 소문은 이전부터 있었다”며 “SK하이닉스도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직원 실명이 공개되는 공기업·공무원과 달리 사기업인 SK하이닉스의 직원 현황은 외부에서 파악할 수 없다. 경기도 시흥시에 걸린 규탄 현수막. 사진=임준선 기자
직원 실명이 공개되는 공기업·공무원과 달리 사기업인 SK하이닉스의 직원 부동산 투기 현황은 외부에서 파악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부동산등기부를 통한 SK하이닉스 직원의 투기 내용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정부에서는 민간인 대상으로도 부동산 투기 조사에 나설 것을 간접적으로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3월 8일 “정부합동조사단은 민간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어 불법행위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가수사본부에 설치된 특별수사단을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로 확대·개편해 개발지역의 공직자를 포함한 모든 불법·탈법적 투기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은 만큼 SK하이닉스의 자체적인 조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일반 직원들에게 토지 거래내역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며 “(투기와 관련해)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지만 향후 용인시나 수사기관이 SK하이닉스와 관련해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용인시도 현재로서는 SK하이닉스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용인시 관계자는 “공무원 가족 중 SK하이닉스 직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한 부분은 가족 토지 거래 내역에 대한 동의를 받아 관련 서류를 제출하게 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에 별도로 요청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처럼 SK하이닉스 임직원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투기를 했다는 의혹은 있지만 이를 규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투기가 사실로 드러나도 사기업 직원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투기 처벌 대상에 민간인을 포함시키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거래된 토지에는 해당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관계자는 “공공주택위반법 등은 공직자나 공공기관 종사자에 한정된 것이라서 사기업 직원에게 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농지법 위반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적용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