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혈장치료제 임상 3상·대량 생산 ‘높은 산’…코로나 백신 CMO는 파트너사 상장폐지 위기 변수
2020년 10월 경기도 성남시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현장간담회’에 전시된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임상시약. 사진=연합뉴스
#올해 1분기 녹십자 실적 전망은 부정적
녹십자는 2020년 매출 1조 5041억 원, 영업이익 503억 원을 기록하며 2019년(매출 1조 3697억 원, 영업이익 403억 원)에 비해 개선된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녹십자는 지난해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으로 증권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그 근거로 우선 독감 백신 수출이 지난해에 비해 늦어졌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해 녹십자가 독감 백신 수출을 1분기에 시작했지만 올해는 수출 시기가 2분기로 미뤄졌다. 녹십자 관계자는 “올해 독감 백신의 선적 시기가 지난해에 비해 늦어졌다”며 “선적이 변동되는 경우는 자주 있고, 독감 백신에 특별히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녹십자가 담당했던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와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의 국내 유통도 2020년을 끝으로 종료됐다. 녹십자는 2013년 한국MSD와 조스타박스를, 2017년에는 가다실 공동판매 계약을 맺었다. 녹십자는 이들 백신을 통해 적지 않은 수익을 거뒀지만 올해부터는 한국MSD와 새롭게 계약을 맺은 HK이노엔(옛 CJ헬스케어)이 조스타박스와 가다실의 국내 판매를 담당한다.
하나금융투자는 녹십자의 올해 1분기 매출을 2810억 원으로 예측했다. 2020년 1분기 매출 3078억 원에 비해 약 9% 감소한 수치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020년 1분기에는 가장 마진율이 좋은 독감 백신 매출이 133억 원 발생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독감 백신 매출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2020년 기준 연간 각각 492억 원과 908억 원의 매출을 올린 조스타박스와 가다실과 같은 백신의 유통이 올해부터 종료돼 전체적인 매출 볼륨이 약 14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녹십자의 코로나19 치료제 GC5131A의 운명은?
녹십자의 실적 전망은 부정적이지만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만큼 관련 성과에 따라 얼마든지 반전이 이뤄질 수 있다. 녹십자는 2020년 3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시작해 같은 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코로나19 혈장치료제 ‘GC5131A’의 임상 2상을 신청했다. GC5131A는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장(혈액의 액체성분) 속에 포함된 다양한 항체를 추출해 만든 치료제. 이미 동일 원리를 적용한 제품이 사용되고 있어 임상 1상은 면제됐다.
하지만 혈장치료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GC5131A의 앞날도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최근 ‘코로나19 혈장치료제 연합’은 10개 국가 600여 명의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혈장치료제 임상 3상 시험에서 실패했다. 코로나19 혈장치료제 연합은 혈장치료제 개발을 위한 글로벌 협력체로 녹십자, 호주 CSL베링, 일본 다케다 등이 참여했다. 혈장치료제는 완치자의 혈액을 이용하는 치료제이기에 연합이 개발한 치료제의 성분과 GC3151A의 성분도 같을 수밖에 없다.
빌 메자노트 CSL 부사장은 호주 언론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임상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우리가 이 작업을 주도했다는 것은 자랑스럽다”며 “이번 연구는 코로나19에 대한 이해도 상승에 아마도 공헌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혈장치료제는 완치자의 혈장을 받아야 하는 특성상 대량 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그간 연구개발에 투입한 비용을 고려하면 GC5131A가 성공적으로 임상을 마치더라도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지난 3월 25일 정례브리핑에서 “혈장치료제는 대량 생산이나 대량 확보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에 확보된 혈장치료제가 400명 분이 채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녹십자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가능할까
녹십자는 코로나19 백신의 유통 사업도 추진 중이다. 녹십자는 지난 3월 미국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4000만 도즈를 국내에 유통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오는 2분기부터 모더나의 백신을 국내에 수입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4월 1일 서울 송파구 예방접종센터에서 만 75세 이상 고령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앞서 예진을 받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최근 미국이 모더나 백신의 3차 접종을 고려하면서 수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백신 수요가 늘어나면 백신의 수입 일정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케슬러 미국 보건복지부 코로나19 대응 수석과학담당자는 지난 4월 15일(현지시간)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추가 접종을 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녹십자는 러시아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코비박의 위탁생산(CMO)도 추진 중이다. 녹십자는 쎌마테라퓨틱스, 휴먼엔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러시아 추마코프연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이 녹십자 오창 공장과 화순 공장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녹십자의 CMO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구체적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서 녹십자의 코로나19 백신 CMO 사업에 부정적인 예상도 있었지만 녹십자가 CMO를 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녹십자가 보유한 완제시설을 감안하면 CMO 계약 체결 발표는 시간 문제”라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컨소시엄을 주도하는 쎌마테라퓨틱스가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는 변수가 발생했다. 지난 3월 30일, 쎌마테라퓨틱스 감사인인 예일회계법인은 쎌마테라퓨틱스의 2020년 감사보고서에 대한 감사의견을 거절했다.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부적정이거나 의견거절인 경우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쎌마테라퓨틱스는 수년째 수백억 원의 적자를 기록 중이고, 지난 4월 5일에는 개발 중이던 코로나19 치료제 ‘네오비르주’의 임상 3상 시험계획도 식약처로부터 반려당했다. 쎌마테라퓨틱스는 지난 4월 19일 상장폐지에 대한 이의제기를 신청했다.
쎌마테라퓨틱스는 코비박 CMO를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부채비율이 2000%가 넘어 회사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일각에서는 녹십자가 독자적으로 코비박 CMO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녹십자는 오너 3세인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를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형인 허은철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과 형제경영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코로나19 사업 성공 여부에 따라 이들의 리더십이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녹십자 입장에서도 사활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녹십자 관계자는 “GC5131A 임상은 해외 혈장치료제 임상과 별개이므로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고, 대량생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나 언론 등에서 완치자들에게 혈장 공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며 “CMO와 관련해서는 기업과 기업의 비즈니스이기에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