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측 “결과와 관계없이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것”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21일 고 곽예남·김복동 등 피해자와 유족 20여 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본안의 판단을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난 1월 국내 법원이 고 배춘희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의 위안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당시 재판부는 “반인도적 사건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재판 관할권을 인정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일본이 무대응 원칙을 고수해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21일 재판에서는 국내법원이 외국국가에 대한 소송에 관해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인 국가면제를 적용했다. 민사 15부는 “2015년 한일 합의가 현재도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어 합의서 내용에 따라 피해회복이 현실적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국가면제를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며 “(국가면제 인정이) 국제법 존중주의와 국제 평화주의, 균형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8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들을 강제징용한 독일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이탈리아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펠리니 판결’을 들었다. 재판부는 “현재 국제관습법은 영토 내에서 이뤄진 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제면제를 인정했다”며 “1997년 대법원 판결 등에서도 이를 확인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관습법인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 질서에 반한다”는 위안부 피해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면제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과 국제법을 준수하는 공익을 비교할 때 후자가 더 크다”며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피해자 240명 중 99명에 대한 현금 지원이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대체적 권리 구제 수단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피해자 측이 항소하게 되면 국가면제 적용이 정당한지 여부는 결국 대법원 판결을 받을 전망이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는 재판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재판부가 지난 1월 국제관습법의 예외를 허용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의 의미를 스스로 뒤집으며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퇴행적 판결을 감행했다”며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했을 뿐 아니라 인권중심으로 변화해가는 국제법의 흐름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판결에 굴하지 않고 항소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피해자 중심의 접근에 따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조속히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는 패소 결과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며 법정을 나섰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