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장 사익 편취 제재 방법 사라져…내부거래 이익 확인 불가, 재해 벌어져도 책임 없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쿠팡 총수 지정 논란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해 발표한다. 대기업에 경제적 집중을 억제하고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시·신고 의무와 각종 규제가 적용된다.
쿠팡은 지난해 말 기준 총 자산 규모 5조 7750억 원으로 재계 순위 6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현행법상 쿠팡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논란도, 변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 올해 공정위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71개 기업집단을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문제는 동일인 지정이었다. 동일인은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공정위가 지분율과 임원 선임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한다. 기업의 수장이 총수로 지정될 경우 본인은 물론 그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배우자까지 공시 의무 대상에 포함돼 규제와 감시를 받는다.
쿠팡 창업주이자 현재는 이사회 수장을 맡고 있는 김범석 의장의 회사 지분율은 10.2%, 의결권 행사 비중은 76.7%에 달한다. 그동안 회사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과 임원 인사, 인수합병(M&A) 등에 관한 의사결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기준대로라면 쿠팡이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는 것과 같이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 대신 쿠팡의 한국법인을 동일인이라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인 것은 명백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설계돼 미국 국적인 김 의장을 규제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없는 점 △그동안 외국계 기업(에쓰오일, 한국GM 등)의 동일인은 국내 법인으로 지정해 왔던 점 △지금 시점에서 김 의장과 그의 친인척이 보유한 계열회사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정위 결정을 문제 삼는 관련 업계와 정치권은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의장이 정부 규제와 감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피하게 된 규제는 사익편취다. 이번 결정으로 김 의장과 특수관계자들이 향후 쿠팡을 통해 ‘사익’을 챙겨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를 방문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왼쪽)과 김범석 쿠팡 대표. 사진=연합뉴스
쿠팡이 최근 공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특수관계자들과 지난해부터 조 단위의 내부거래를 하고 있다. 특수관계자로 분류되는 쿠팡의 종속회사는 떠나요, 씨피엘비, 쿠팡대구에프씨제일차, 쿠팡대전풀필먼트제일차,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쿠팡페이 등이다. 물류와 결재, PB(자체브랜드상품)사업 등을 계열사로 떼어내 각각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기타특수관계자는 Coupang USA 등 해외법인들이다.
특수관계자들이 쿠팡에 제공한 수익은 2019년 130억 원에서 2020년 380억 원으로 늘었다. 반면 쿠팡이 특수관계자들에게 제공한 비용 등은 같은 기간 7151억 원에서 1조 5797억 원으로 증가했다. 쿠팡은 또 지난해부터 일부 계열사들과 대여금과 유상증자 등으로 직접적인 자금 지원도 시작했다. 2019년까지 계열사들과 자금거래는 없었다.
내부거래 자체는 문제 소지가 없다. 쿠팡과 계열사들은 수직 계열화돼 있고 이에 따라 계열사에 지급되는 비용은 쿠팡 매출과 연동된다. 실제 쿠팡 매출은 2019년 7조 원에서 2020년 13조 9000억 원으로 2배 늘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 급격하게 몸집을 키운 쿠팡은 사업 구조상 향후 일감을 계열사에 더 밀어줄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내부거래 규모도 커진다. 공정위는 최근 수년 사이 내부거래에 대해 시장질서를 해치는 불공정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직계열화된 구조에서 과도하게 많은 내부거래가 이뤄지면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정위는 ‘특정 계열사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와 시장 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등 행위를 부당 내부거래로 본다.
쿠팡은 앞으로 불공정거래 관련 규제와 감시를 받는다. 다만 이는 쿠팡 법인과 계열사 간 거래관계만 대상이 된다. 정부가 쿠팡 내부거래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인지, 누구를 향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재로선 쿠팡의 이익은 모기업인 미국 회사 쿠팡Inc로 유입되고, 배당 및 우선주 등의 형태로 김 의장과 해외 투자가들에 흘러갈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될 뿐이다.
또 올해 초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를 보면, 현재 회사에는 김범석 의장의 동생과 처제가 근무하고 있다. 쿠팡은 이들이 주요 임원 직급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각각 억 단위 연봉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됐다면 이들은 특수관계자로 묶인다. 그러나 사익편취 규제에서 벗어나면서 이들은 감시를 받지 않게 됐다. 공정위는 총수로 지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현재 기준 김 의장과 특수관계자들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법인이 없다는 점을 꼽았는데, 이들이 앞으로 회사를 설립해 쿠팡과 거래를 할 경우 감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허점이 있다.
공정위는 쿠팡이 NYSE에 상장돼 미국 규제기관의 철저한 감독을 받고 있는 만큼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미국 상장사 지분을 보유한 대표 및 임원, 10% 이상 보유 주주와 그 가족들에 대해 주식 보유 내역 및 회사와 거래 내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 범위가 명확하게 명시돼 있지 않아 아마존 등 주요 기업들은 배우자에 한해서만 공시하고 있어 국내 상황과 크게 다르다.
김범석 의장은 노동, 안전재해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공정위 설명대로 김 의장은 미국인이라 문제가 생겼을 경우 형사처벌 및 제재 등에 어려움이 따르고, 여기에 올해 초 대표이사직도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만 맡고 있다.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모든 법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셈. 그동안 쿠팡의 총수 지정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경쟁사와 관련 업계, 시민단체 및 일부 정치권에서 “이번 논란의 유일한 승자는 김범석 의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경제계에선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대기업들이 이사회에 힘이 싣고 있는 가운데 총수 지정 제도 자체가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제도의 궁극적 목표가 좋은 지배구조의 구현이라고 할 때 이사회 중심,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가 정착한 곳이라면 굳이 총수 지정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법적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한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있는데도 총수를 별도로 지정하는 것 자체가 주식회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법에 의해 설립된 쿠팡 기업집단 회사는 공정거래법상 모든 의무사항이 동일하게 적용되고 대규모유통업법에 의한 감시대상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일인 지정제는 편법적 지배력 확대나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 등에 목적이 있다. 동일인이 지정돼야 관련자가 획정되고, 그래야 규제대상이 확정된다”며 “다만 이번 동일인 지정 논란, 현재 71개의 규제 대상기업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견 등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