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직장인 변신 “바둑공부 할 이유 생겼다”…“승부감각 탁월, 판 커지면 힘내는 선수” 평가
7일 서울 응암동 아마바둑사랑회 회관에서 열린 제1회 기룡전 결승3번기 제2국에서 김정훈 선수가 조성호 선수에게 21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0으로 첫 대회 패권을 안았다.
아마바둑사랑회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기룡전 결승2국 종국 장면. 김정훈(오른쪽)이 2-0 승리를 거두고 첫 대회 정상에 올랐다. 사진=유경춘 객원기자
첫 기룡전에는 총 117명이 도전장을 던졌다. 이중 예선을 거쳐 32명의 본선 진출자를 가렸다. 아마 강자들의 수는 전국에 수도 없이 많지만 기룡전은 그야말로 아마 최강을 가리는 무대. 주로 내셔널바둑리그에 적을 두고 있거나 입상을 노려볼 만한 정상급 선수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중간중간 박윤서, 노근수, 서부길, 박휘재, 최진복, 최호철, 박성균, 이용만, 최욱관 등 낯익은 시니어들의 모습도 보였고 김현아, 박예원, 조경진, 조은진, 한지원 등 여자 선수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프로 무대에서도 시니어와 여자 기사들이 정상급 기사들에 비해 손색이 있듯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입상이 어려울 줄 알면서도 그들이 기꺼이 도전장을 던진 것은 한수 배우겠다는 뜻도 있었겠지만, 프로에 비해 소외됐던 아마추어들에게 이런 무대를 제공해준 익명의 후원자에 대한 성의와 보답은 아니었을까. 잔칫집은 뭐니뭐니해도 좀 북적거려야 제 맛이니까 말이다.
본선 32강은 예상대로 대부분 젊은 기사들의 차지가 됐지만 올해 마흔이 된 하성봉과 온승훈, 정찬호 등 노장(?)급 기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 중 하성봉은 승자 8강까지 진출하며 투혼을 불살랐으나 강구홍에게 패한 뒤 패자조에서도 김정현에 덜미를 잡혔다.
기룡전 초대 우승을 차지한 김정훈 선수. “내년에도 타이틀을 지킬 수 있도록 다시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유경춘 객원기자
김정훈은 “솔직히 우승은 생각하지 않았다. 석 달 전 유통회사에 취업해서 회사생활도 재미있었고, 대회 전 요즘 한창 성적이 좋은 신현석 선수에게 네가 우승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10% 정도라고 하기에 나는 마음을 비웠다. 다만 상금이 커지니까 한판한판 짜릿한 느낌은 있었다. 확실히 승부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가 덜컥 우승까지 하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대회를 주관한 클럽A7의 홍시범 대표는 “김정훈은 예전부터 승부감각이 탁월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판이 커지고 상금이 많아지면 더 힘을 내는 선수가 있는데 김정훈이 바로 그런 기사”라고 평했다.
또 김정훈과 내셔널바둑리그 화성시 소속으로 5년간 함께했던 김경래 선수는 “서른이 됐다 해도 김정훈은 나에겐 영원한 원픽이다. 대회 전 우승후보 맞히는 이벤트가 있었다면 무조건 김정훈에게 올인했을 거다. 승부감각이 정말 탁월한 친구다. 나이에 신경 쓰다보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김정훈은 최근 5년의 내셔널리그에서 다승왕을 세 번이나 했던 친구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었다. 연구생 시절 1992년생 근처가 경쟁이 치열했었다. 박정환, 안성준 등이 그 또래다. 정훈이가 강한 친구들과 경쟁하다 좌절도 많이 겪으면서 입단에 실패했지만 원래 실력은 있는 기사다. 입단했다면 최소한 매년 한국바둑리그에서 뛸 정도는 됐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과거 ‘괴물’이라 불렸던 일본의 전설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은 평소 “나는 1년에 딱 네 번만 이기면 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1977년 제1기 기성전(棋聖戰)에서 우승한 이래 6연패를 달성했는데 그가 이기겠다는 네 번은 이 기성전 7번기에서의 네 판을 뜻하는 것이었다. 즉 기성만 방어하면 1년 살이가 충분하다는 것인데,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당시 기성전은 우승상금 4000만 엔(약 4억 원)의 일본랭킹 1위 기전이었다. 하지만 1983년 기성전 도전기에서 조치훈 9단의 도전을 받아 3연승 후 4연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넘겨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기성전처럼 기룡전도 내년부터는 결승3번기가 아니라 도전5번기로 진행된다. 타이틀 보유자 김정훈은 5번기에서 승리하면 다시 3000만 원의 상금을 획득하게 되니 아마추어로서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김정훈 선수도 인터뷰에서 “다시 바둑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이유가 생겼다. 동기를 부여해주신 익명의 후원자에게 감사드린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과연 내년엔 어떤 승부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기룡전은 국내 아마바둑 사상 최고 기전으로 우승상금 3000만 원, 준우승 상금 1400만 원, 3위 600만 원, 4위 300만 원 등 총 상금 규모만 6800만 원이다.
[승부처 돋보기] 흑이 재미 본 하변 절충 제1회 기룡전 결승3번기 제2국 흑 김정훈(1승) 백 조성호(1패) 213수 끝, 흑 불계승 장면1 #장면1 백을 든 조성호 선수는 작년 연구생을 나온 젊은 기사. 현재 내셔널바둑리그 포항 팀 소속이며 김정훈은 서울 아비콘포에버 팀 소속이다. 둘은 이미 승자조 결승에서 한번 맞붙어 당시는 김정훈이 백 반집승을 거뒀었다. 조성호는 패자조에서 부활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우하에서 첫 번째 전투가 발생했는데 유연해 보이는 백1이 느슨했다. 흑2로 하나 민 다음 4로 바짝 압박하니 백이 답답해졌다. 장면2 #장면2 백은 1로 바로 막는 것이 깔끔했다. 백5까지 안정시켜 놓은 다음 7로 좌하귀를 지켜두었으면 긴 바둑이었다. 장면3 #장면3 하변 절충은 한눈에 척 봐도 흑이 재미있는 형태다. 백 모양은 겨우 두 눈만 갖춘 반면 흑은 귀의 실리에 세력도 꽤 두텁다. 장면2의 그림을 놓친 업보다. 설상가상 흑1로 압박했을 때 백2도 실착. 아니, 거의 패착이 됐다. 장면4 #장면4 백1에 흑2의 젖힘이 강인한 수였다. 백은 9까지 흑 한 점을 잡으며 안정을 취했지만, 제자리걸음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선수를 뽑은 흑은 10의 저공비행으로 백의 근거를 위협한다. “백1로는 A에 두어 좌하 실리를 지키고 하변 백은 버티는 게 겁이 났다”는 김정훈 선수의 감상이 있었다. |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