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으로 끝난 초보 단장-초보 감독 만남…40년 동안 무려 20명, 팬심의 철퇴 ‘감독 잔혹사’ 이어져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전 감독(오른쪽)과 성민규 단장(왼쪽)의 동행이 약 1년 6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허 전 감독이 퇴진한 롯데는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을 롯데 20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사진=연합뉴스
허문회 감독의 퇴진은 그리 충격적인 소식이 아니다.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지난해 초부터 성민규 롯데 단장과 허 감독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아서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의 동행이 1년 넘게 이어졌다는 게 오히려 더 놀라운 일이다. 단장과 감독의 오랜 알력 싸움을 짐짓 모른 체하던 롯데는 올 시즌 30경기를 치른 시점까지 팀이 최하위에 머물자 결국 허 감독을 내보내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성 단장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서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불러 올렸다.
#롯데가 감독을 또 바꾼 배경과 과정
꼴찌 팀 감독의 중도 퇴진은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다만 롯데와 허 감독의 결별은 그 과정이 너무 매끄럽지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양측의 출발이 장밋빛이었기에 더 그랬다.
성 단장은 2019년 말 취임 후 허 감독과 계약을 주도했다. 감독이 취임한 뒤에는 “이번 스토브리그 최고의 영입은 단연 허 감독님”이라고 ‘자랑’했다. 계약 기간 3년도 파격적이었다. 프로 감독 경험이 없거나 팀 레전드가 아닌 초보 감독은 대부분 2년 계약으로 출발한다. 롯데는 허 감독에게 3년을 보장하면서 장기적으로 힘을 실어주겠다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만큼 신뢰가 깊어 보였다.
그러나 단장과 감독의 의기투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성 단장 취임 첫 트레이드가 발단이었다. 성 단장은 2차 드래프트 2·3라운드 지명 기회를 모두 포기한 뒤 “원하는 조건의 포수가 없었다. 기다려 달라. 내가 어떤 포수를 영입하는지 보여드리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얼마 뒤 선발투수 장시환을 한화 이글스로 보내고 지시완을 데려왔다. 말하자면 지시완 영입은 ‘단장 성민규’의 첫 작품이다. 그러니 더욱 지시완의 진가를 실전에서 확인하고 싶었을 거다.
허 감독 생각은 달랐다. 스프링캠프를 치르면서 지시완이 주전 포수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 기용권을 초장에 확실히 지켜내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 성 단장과 허 감독의 길은 여기서부터 어긋났다.
이후 두 사람은 베테랑 투수 장원삼의 선발 등판 문제를 놓고 또 부딪혔다. 성 단장은 장원삼을 5선발로 ‘추천’했다고 생각했고, 허 감독은 선수단 운영에 ‘간섭’했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본격적인 기싸움이 시작됐다. 쇼맨십이 강하고 의욕이 과한 성 단장과 융통성 없는 소신을 앞세운 허 감독은 서로 등을 돌린 채 평행선을 걸었다.
단장과 감독의 사이가 나빴던 팀은 수도 없이 많았다. 거의 모든 팀 단장과 감독이 늘 크고 작은 대립을 한다. 이해관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성적이 좋은 팀에서도 불화는 생긴다. 단장은 ‘이 정도 전력을 꾸려줬으면 우승은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감독은 ‘이 정도 전력으로 우승까지는 어렵다’고 내심 아쉬워한다.
성적이 나쁜 팀은 당연히 감정의 골이 더 깊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원망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감독의 경기 운영이 답답한 단장은 자꾸 잔소리하고 싶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 감독은 수시로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는 단장이 원망스럽다. 이런 감정의 충돌을 이겨내고 한 시즌을 무사히 마치는 것도 결국은 단장과 감독의 능력이자 임무다.
롯데의 진짜 문제는 이런 갈등 상황이 외부로 적나라하게 알려졌다는 거다. 야구는 단체 종목이다. ‘내분’의 이미지는 구단에 치명적이다. 많은 단장과 감독이 종종 티격태격하다가도 조용히 갈등을 봉합하거나 절충안을 찾는 이유다.
성민규 롯데 단장(사진)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허 감독과 불화를 암시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사태는 자존심 문제로 확대된다. 공개적인 링 위에 올라 대결하면서 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성 단장과 허 감독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탓하는 동안 롯데 선수단은 혼란에 빠져 뒷걸음질쳤다. 성 단장은 팬들이 지켜보는 자신의 SNS에 수차례 의미심장한 글이나 사진을 올려 두 사람의 불화에 대한 억측과 관심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롯데는 오랜 고민 끝에 일단 단장의 손을 들어줬다. 성 단장을 링 위에 남기고 허 감독을 먼저 퇴장시켰다. ‘여론’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팬심’이 연일 허 감독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반대급부로 성 단장의 과오는 묻히고 인기는 올라갔다. ‘인기구단’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큰 자랑거리인 롯데는 늘 그랬듯 또 한 번 팬이 원하는 대로 했다.
그럼 성 단장이 이 전쟁에서 이긴 걸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애초에 집안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게 무의미할지 모른다. 초보 단장과 초보 감독이 취임하자마자 ‘내전’에 집중하느라 정작 본연의 업무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더 그렇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손해와 상처가 크다.
무엇보다 팬심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수시로 뒤바뀐다. 어제 ‘역적’이던 감독이 오늘 ‘영웅’으로 둔갑하고, 부산이 자랑하던 4번 타자 이대호도 연패 중 퇴근길엔 ‘팬’이 던진 치킨박스를 맞는다. 그 팬심의 향방을 좌우하는 건 단장과 감독의 뜻대로 되지 않는 ‘승리’와 ‘패배’다. 단장의 SNS에 몰려와 “허 감독을 이겨 달라”고 응원하던 팬심의 화살은 성적에 따라 언제든 방향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 이제 성 단장을 위시한 롯데 프런트가 ‘총알받이’도 없는 최전방에 나선 셈이다.
SSG 랜더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얼마 전 롯데를 향해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고 도발했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팀이 1년차 구단주에게 이런 얘기를 들어도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거다. 실제로 롯데는 올 시즌 성적과 화제성 모두 SSG에 크게 뒤진다. 오랜 암흑기를 겪었으면서도 초보 감독과 검증 없이 덜컥 3년 계약을 하고, 1년여 만에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며 그 감독을 내보내는 게 지금 롯데의 현실이자 유일한 해결책이다.
믿지 못하면 쓰지 말았어야 했다. 썼으면 믿었어야 했다. 롯데는 둘 다 하지 못했다. ‘기본’을 다져야 할 팀이 방향 없는 ‘혁신’부터 꾀하다 또 자충수를 둔 모양새다.
#롯데 감독 잔혹사는 계속됐다
롯데 감독은 대대로 ‘독이 든 성배’ 같은 자리였다. 팬들의 열정과 관심은 전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뜨거운데, 성적과 경기력은 대체적으로 안 좋았다. 과거 롯데 감독을 역임한 한 야구인은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과가 안 좋을 때는 가족의 신변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비난이 거셌고, 결과가 좋을 때는 너무 갑자기 달라진 평가와 찬사에 도리어 씁쓸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또 “부산 어딜 가도 날 알아보기 때문에 때로는 길 가다 갑자기 받는 격려조차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한 전직 감독이 “성적을 못 내는 감독이 야구계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면, 성적을 못 내는 ‘롯데 감독’은 아마 국내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다.
그동안 롯데 사령탑을 거쳐 간 야구인은 서튼 감독 전까지 총 16명이다. 박영길, 강병철, 성기영, 어우홍, 김진영, 강병철, 김용희, 김명성, 우용득, 백인천, 양상문, 강병철, 제리 로이스터, 양승호, 김시진, 이종운, 조원우, 양상문, 허문회 감독 순이다. 강병철 감독이 제2대, 6대, 10대 감독을 맡아 세 차례나 같은 팀 지휘봉을 잡았다. KBO리그 역사에서 유일한 사례다. 양상문 감독도 두 차례(11대, 18대) 롯데 감독을 역임했다.
이들 중 3년 이상 연이어 팀을 지휘한 감독은 강병철, 김용희, 제리 로이스터, 조원우 감독이 전부다. 40년 역사에 4명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잔혹한 역사가 시작됐다. 2대와 6대 감독을 맡았던 강병철을 제외하면, 1대 박영길, 3대 성기영(1987년), 4대 어우홍(1988~1989년), 5대 김진영(1990년) 감독까지 ‘단명’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 사슬을 간신히 끊은 인물이 7대 김용희 감독이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 감독은 1994년부터 1998년 6월까지 4.5시즌 동안 팀을 지휘해 ‘최장수 롯데 감독’ 기록을 남겼다.
은퇴 뒤 롯데 코치로 일했던 김용희 감독은 강 전 감독이 한화로 떠난 뒤 39세 젊은 나이에 사령탑에 올랐다. 향후 차기 감독감으로 꼽히던 인물이긴 했지만, 마흔도 안 된 젊은 감독이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로 통했다. 미국 연수 경험을 살려 ‘자율 야구’를 롯데에 도입했고, 투수 분업화도 처음 실행했다. 실제 효과도 충분히 봤다. 첫 시즌은 6위로 마감했지만, 이듬해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김용희 감독은 이 성적 덕에 1997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롯데 역사상 최초의 감독 재계약이었다. 하지만 롯데는 1997년과 1998년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김 감독도 결국 1998시즌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해 김 감독 대신 대행을 맡았던 김명성 코치는 이듬해인 1999년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2001년 시즌 도중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로 쓰러졌다. 결국 순위싸움이 한창이던 그해 7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이후 우용득(2002년), 백인천(2002년 6월~2003년 8월) 감독 등과 짧은 인연을 맺은 롯데는 또 다시 팀으로 불러들인 양상문, 강병철 감독이 팀을 하위권에서 구하지 못하자 대대적인 결단을 내렸다. 2008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 사령탑 출신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3년 계약을 해 KBO리그에 최초로 외국인 사령탑 시대를 열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 첫해 팀을 정규시즌 3위에 올려놓으면서 롯데에 8년 만의 가을야구를 선사했다. 선수들에게 두려움 없는 플레이를 독려했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더그아웃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롯데가 보여준 공격적인 야구에 팬들이 열광했고, 사직구장에는 다시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그러나 점점 약점도 눈에 띄었다. 정면승부를 강조하는 로이스터 감독의 철학은 아시아 야구의 특징인 섬세함과 거리가 멀었다. ‘내일이 없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정공법을 추구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재임 3년간 매년 가을 야구를 했지만, 한 번도 다음 시리즈로 올라가지 못했다. 결국 로이스터 감독과도 재계약은 하지 않았다.
이후 롯데는 양승호(2011~2012년)-김시진(2013~2014년)-이종운(2015년)-조원우(2016~2018년) 감독과 함께하면서 꾸준히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1992년 마지막 우승의 영광은 재현되지 못했다.
동시에 롯데 감독들의 조기 퇴진 릴레이도 이어졌다. 애초에 계약 후 한 차례라도 임기를 연장한 감독이 강병철, 김용희, 김명성, 조원우밖에 없다. 2010년 이후 계약기간을 모두 채운 사령탑도 조원우 감독이 유일하다. 조 감독은 2016년부터 2년간 팀을 이끈 뒤 3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재계약 첫 해인 2018시즌을 마치고 1년 만에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야구계는 “롯데 자체가 감독을 조급하게 만드는 팀”이라고 평가한다. 팬들은 직접 야구를 하는 선수들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감독을 더 자주 비난한다. 위기 상황에서 올린 불펜 투수가 실점하면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을 탓하고, 야심차게 낸 대타가 삼진으로 물러나면 감독의 대타 카드 선택을 문제 삼기 일쑤다. 롯데 수뇌부는 그런 팬들의 반응과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면서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롯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유로 다시 ‘모셔 온’ 양상문 감독에게도 구단과 팬심은 어김없이 철퇴를 내렸다.
양상문 감독은 2004년부터 2년간 롯데를 이끌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2019년 고향팀 롯데 감독으로 재취임했다. 선수 생활을 롯데에서 시작했고, 롯데 1군과 2군 감독, 투수코치까지 두루 역임한 ‘롯데통’이라는 이유에서다. 롯데 못지않게 팬이 많은 LG 트윈스에서 감독과 단장을 지내면서 산전수전도 다 겪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찰나에 고향팀의 러브콜을 받고 어렵게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양 감독이 계약 첫 시즌 전반기에 34승 2무 58패(승률 0.370)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자 롯데는 또 ‘신속한’ 결단을 내렸다. 전반기 종료 다음날 “양상문 감독과 이윤원 단장의 자진사퇴 요청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양 감독은 구단을 통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기대에 많이 부족했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양 감독은 그렇게 임기 첫 시즌조차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역대 두 번째 감독으로 기록됐다.
롯데는 양상문 감독 퇴진 후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렀고, 파격적인 인물을 새 감독으로 선임해 새출발을 다짐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허문회 감독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모두 아는 그대로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