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계 최고 대우’에 구두로 맺은 추가 조건 포함…서울시체육회 “세부적인 내용 발설할 수 없다”
2020년 1월 심석희는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심석희 연봉 계약 규모는 ‘빙상계 최고 대우’라고 알려져 있다. 심석희는 성폭행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고백해 한국 엘리트 스포츠계에 경종을 울린 상징적 인물이다. 그를 영입하는 데 적극성을 보였던 주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20년 1월 1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심석희 서울시청 입단식’에 나란히 서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빙상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일요신문에 “서울시체육회가 심석희에게 구두로 약속한 금액을 주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심석희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심석희에게) 최고 대우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속엔 연봉 및 수당 지급 규정에 벗어난 범위에서 지급되는 금액도 있었다”면서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가 이 금액에 대해선 구두 계약 형식으로 지급을 약속했다. 바로 이 구두 계약이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심석희가 구두 계약에 따른 금액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정황은 구체화됐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심석희가 최고 대우를 받으려면 서울시 조례와 서울시체육회 ‘직장운동경기부 관리·운영규정’ 이 외에서 추가적인 금액을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이런 추가 금액에 대해 박원순 전 시장이 적극적으로 OK 사인을 보내 계약이 성사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구두로 논의된 추가 금액 규모는 연 4000만~5000만 원 규모”라면서 “그런데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뒤 서울시가 구두 계약을 이행할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고 했다. 그는 “계약이 끝날 때까지 구두로 계약한 금액을 못 받으면 1억 2000만 원 정도가 된다”고 덧붙였다.
체육계 다른 관계자는 박 전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가 구상한 ‘추가 금액 마련에 대한 구체적 구상안’에 대해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가 외국계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체육행사 후원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 심석희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가 금액을 마련하는 방안을 언급하면서 ‘최고 대우 영입’이 성사됐다”면서 “보장된 연봉에 추가 금액을 더하면 빙상계 최고 대우가 맞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 관계자 그리고 서울시청 빙상단 코칭스태프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방안이 직접 언급됐다고 한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우선, 서울시청이 심석희를 영입할 당시 상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말 심석희가 뛰게 될 실업팀이 어디가 될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2020년 2월 한국체대를 졸업할 예정이었던 심석희는 빙상 실업팀을 보유한 지자체와 기업들로부터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석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조재범 전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현재 수감 중)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선수촌을 이탈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9년 초엔 조 전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심석희 입장에서 2020년은 한국체대를 졸업한 뒤 선수로서 재기를 노리는 원년이었다.
심석희 영입에 뛰어든 지자체는 여럿 있었다. 곽윤기, 김아랑, 임효준(중국명 린샤오쥔) 등이 소속돼 있었던 고양시청을 비롯해 심석희 고향인 강원 지역 지자체에서도 심석희 영입을 타진했다. 그러나 이 지자체들은 심석희가 만족할 만한 계약안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자체 조례 및 규정이 언급하는 보수 상한액이 빙상계 최고 대우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까닭이다. 당시 기준 빙상계 최고 대우를 받던 선수는 성남시청 소속 최민정이었다. 2017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뤄진 영입이었다. 최민정 연봉 계약 규모는 연 2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그러나 심석희와 접촉한 지자체들은 최민정 계약 규모에 한참 못 미치는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산 자체가 부족하거나 규정상 정해져 있는 연봉 상한액이 2억 원 규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빙상계 관계자는 “심석희 영입전 초반 지자체들이 제시한 연봉액수는 1억 원대 초·중반”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던 중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이끌던 서울시청이 심석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석희는 서울시청이 내민 손을 잡았다. 2020년 1월 1일 심석희의 서울시청 입단 사실이 스포츠서울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당시 스포츠서울에 따르면 심석희는 팀 내 최고 대우를 약속 받고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었다. SBS는 심석희 연봉 규모를 ‘빙상계 최고 대우’라고 보도했다. 빙상계 복수 관계자들도 “심석희가 빙상계 최고 대우를 받고 서울시청에 입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빙상계 최고 대우 이면의 모순이다.
심석희가 서울시청 입단식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심석희가 최고 대우로 서울시청에 입단했다면, 성남시청 소속 최민정을 넘어선 연봉 2억 원 이상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그런데 서울시체육회가 규정하는 직장운동부 선수 보수 상한액은 연 2억 원에 못 미친다. 내부 규정에 따라 심석희가 지급받을 수 있는 상한액은 연 1억 7000만 원 규모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먼저 연봉이다. ‘서울시 직장운동경기부 관리·운영 규정’ 제22조에 따르면 ‘A급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연봉 상한액은 6000만 원이다. 여기서 A급 선수란 국가대표 경력이 있으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입상 등 국내 경쟁력이 있는 선수를 일컫는다. 심석희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선수다.
여기에 1억 원이 추가된다. 심석희의 경우 3년 계약기간 중 계약 첫해엔 규정 제23조에 언급된 우수선수 영입비를, 나머지 2년 동안은 규정 제27조에 명시된 우수선수육성지원비를 수령할 수 있다.
우수선수 영입비는 고교 및 대학 졸업 예정자 또는 실업팀 소속으로 주요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이 있거나 그 가능성이 인정되는 선수를 대상으로 지급되는 ‘영입 비용’이다. 계약 첫해에 적용되는 조항으로 일종의 ‘계약금’이라 볼 수 있다.
우수선수육성지원비는 계약 이후 선수가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주요 국내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 서울시 명예를 드높인 선수에게 지급된다. 이적 가능 시기에 도달한 서울시 소속 선수의 유출 방지를 명목으로 지급되는 금액이다. 선수는 서울시의 사전 승인 아래 해당 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다. 우수선수영입비와 우수선수육성지원비 상한액은 1억 원이다.
추가로 심석희는 규정 제24조가 언급한 입상보상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체육회가 규정한 빙상단 입상보상금은 ‘금메달 3회 획득’을 기준으로 연 1000만 원이다. 심석희가 규정 테두리 안에서 서울시청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상한액은 1억 7000만 원인 셈. 기존 빙상계 최고 대우인 2억 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심석희가 최고 대우를 받고 서울시청에 입단했다는 소식 자체가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 7월 세상을 떠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제공
빙상계 관계자는 “‘모종의 추가 조건’이 없었다면 ‘빙상계 최고 대우’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모종의 추가조건’은 앞서 언급한 구두 계약을 통한 추가 금액이다. 이 구두 계약 건을 협상할 당시 심석희 및 심석희 대리인은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빙상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청 빙상단 코칭스태프가 심석희와 계약서를 쓰며 이 구두 계약을 통한 추가 금액 조건을 언급했고, 심석희는 그 말을 믿고 ‘최대 연봉 1억 7000만 원’ 계약서에 사인했다. 공식적으론 빙상계 최고 대우 계약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 관계자는 “최고 대우 약속을 믿고 계약서에 서명했던 심석희는 추가 금액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추가 금액에 대한 약속이 ‘구두 합의’였던 데다 계약을 추진했던 주요 인물이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20년 7월 세상을 떠나면서 구두합의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귀띔했다.
2017년 2월 최민정이 성남시청 빙상단 입단식에 참석했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오른쪽)가 서 있다. 사진=성남시청 제공
여기서 의문스러운 대목은 왜 박 전 시장이 ‘추가 금액’을 약속하는 구두 계약을 하면서까지 심석희 영입을 추진했는지 여부다. 체육계와 정치권 관계자는 ‘대권 도전을 앞둔 상황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재임 시에 영입했던 최민정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성과를 냈다”면서 “생전 박 전 시장과 더불어 지자체장 출신 대권 주자로 꼽혔던 이 지사의 체육 분야 성과를 넘어서고 싶은 욕심이 (박 전 시장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박 전 시장이 사실상 이면 계약이라 볼 수도 있는 구두 계약을 통해 추가 금액을 보장하면서까지 심석희를 영입한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던 박 전 시장이 성폭행 사실을 용기 있게 폭로한 심석희에게 최고 대우를 보장하며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려 했던 그림”이라면서 “심석희를 서울시청이 최고 대우로 영입하면서 박 전 시장의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도를 입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대권 도전을 앞두고 ‘이미지 제고’를 하는 데 있어 심석희 영입만 한 드라마틱한 요소는 없다는 판단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심석희 측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 측 실무자들은 ‘아직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입장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심석희 소속사는 5월 20일 통화에서 해당 사실에 대해 “실업팀과 연봉 협상엔 소속사가 개입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5월 21일 서울시체육회 측은 “세부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선 발설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청 측은 “규정 안에서 최대 규모인 연봉 계약을 맺었다”면서 “추가 금액에 대한 부분은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5월 21일 심석희 선수 부친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서울시청 빙상단 감독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