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선두 달리고 김웅·김은혜는 존재감 미미…“수적 우위 활용 원내대표 노렸어야” 지적
초선 당대표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기는 4·7 재보궐선거 이후다. 선거에서 압승한 뒤 국민의힘 중진들 사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4선 서병수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2020년 총선 참패 이후 중도 지지층 확장에 사활을 걸어온 국민의힘을 둘러싼 ‘도로 자유한국당’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부터 지속적인 중도 지지층 확장과 당의 체질개선을 위한 해법으로 초선 당대표론이 거론됐다.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김웅, 김은혜 의원이 초선 당대표론을 대표하는 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수는 56명이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1명 중 과반을 차지하는 비중이다. 여지껏 제1야당에서 초선 비율이 이처럼 높았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석수로만 보면 초선이 당대표가 된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당 내부에선 초선 의원들의 결집력을 놓고 회의론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전당대회의 경우 원내 머릿수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당내 조직력이 영향력을 미친다”고 했다. 이 당직자는 “설사 전당대회 룰에 국민 여론조사 비중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당내 조직력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제 막 정치권에 입성한 초선 청년 정치인들이 전당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쉽지 않은 구조”라고 했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1차 컷오프에선 여론조사 비중이 50%고, 본선거에선 여론조사 비중이 30%로 줄어든다”면서 “결국 승부처에 접어들수록 당 전반에 걸친 조직 장악력이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부각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신진 세력의 돌풍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한 후보를 중심으로 한 쏠림 현상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면서 “그 쏠림 현상의 방향성이 지금으로선 초선 의원들을 향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초선 당대표 주자들의 존재감이 미미해지는 형국 이면엔 결정적인 변수가 작용했다. 바로 이준석 돌풍이다. 5월 22일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국민의힘 당대표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30.1% 지지율을 기록해 선두를 달렸다. 나경원 전 의원이 17.4%,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9.3% 지지율을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초선 당대표론 깃발을 든 김웅, 김은혜 의원은 각각 5.0%, 4.9%의 응답자로부터 선택을 받았다(자세한 사안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여론조사 결과로만 보면 초선 의원 두 명이 단일화를 하더라도 당권은 멀어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 내부에선 ‘조직력 싸움’이 시작되면 초선들의 존재감이 더욱 미미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차 컷오프가 끝나게 되면 초선 국회의원들을 향한 지지세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란 관측도 뒤를 잇는다.
일부 초선의원들 사이에선 ‘초선 당대표론’ 프레임 자체가 패착이란 이야기도 들린다.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중 초선 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반이 넘는데, 그런 수적 우위를 활용할 수 있는 선거에서 초선들이 출사표를 던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야권 관계자는 “사실 초선들이 현역 의원 투표만으로 선출하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큰 목소리를 냈다면 전당대회의 흐름 역시 상당히 바뀌었을 것”이라면서 “김기현 원내대표가 현재 당대표 권한대행 직함을 달면서 당 전반에 걸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초선이 있었다면 많은 부분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다”면서도 “초선들이 결집해 원내대표를 배출해냈다면 전당대회 룰에 대한 주도권과 더불어 임시 체제를 꾸려가는 가운데 경험치까지 얻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 단계씩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어를 잡으려고 욕심을 부린 것이 ‘초선 당대표론’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부 한 중진급 인사는 “이런 실수 자체가 초선 당대표론이 안고 있는 리스크”라면서 “‘이땐 이럴걸, 저땐 저럴걸’이란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실패로 직결되는 것이 정치판”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이런 경험치 부족에 대한 공감대가 ‘당원 투표’ 과정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향후 본선거에 돌입했을 때 초선 당대표 주자들이 생존해 있다면, 그들의 역할은 두 가지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돌풍에 합류하는 ‘청년 단일화’에 종속되거나, 이준석 돌풍의 지지세를 나눠먹는 경쟁자가 되는 경우다. 이미 국민의힘 전당대회 프레임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당대표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
초선 당대표론이 0선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둘러싼 대세론에 휩쓸려 좌초될 위기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앞서의 국민의힘 관계자는 “존재감이 없는 다선들을 예비선거에서 정리한 뒤 중진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본선거가 펼쳐질 가능성이 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면서 “본선거 여론조사 비중이 예비선거보다 낮다는 점도 이런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4·7 재보궐선거 압승 이후 야심차게 닻을 올렸던 초선 당대표론이 ‘찻잔 속 태풍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전당대회를 앞둔 현재 흐름을 0선 돌풍, 초선 부진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여전히 국민의힘 내부에서의 젊은 피 돌풍은 유효하다”고 했다.
신 교수는 “초선이 원내대표 선거에 나갔어야 한다는 말들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협상 전면에 서야 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지 않은 초선이 맡기엔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많다”고 했다. 신 교수는 “대선을 앞둔 현 시점 당대표는 ‘당의 얼굴’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결정될 대권 주자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선이나 청년 정치인이 당대표로 선출된다면 당 색깔 자체가 젊어지는 이미지 쇄신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선 의원들이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것을 나쁜 수로만 볼 수는 없다. 초선 의원들이 출마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지 않나.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초선을 비롯한 젊은 피들이 국민의힘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