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김태호 친인척 채용 사임, 2대 김상범 적자 1조 부도위기…이 와중에 1700억대 직원 평가급 지급 논란
‘행복을 나르는 우리 친구 서울 메트로’, ‘오·육·칠·팔 서울도시철도’. 글자만 봐도 가락이 떠오르는 노래다. 수도권 시민들 머릿속 깊숙이 각인된 이 멜로디는 2017년부터 자취를 감췄다. 2017년 서울시가 1~4호선, 9호선 2개 구간을 책임지던 서울메트로와 5~8호선 운영을 담당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를 통합한 까닭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던 두 공기업은 통합을 거쳐 서울교통공사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교통공사 출범은 2014년부터 본격 논의됐다. 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버스 중심 대중교통개혁을 한 지 10주년이 된 시점이었다. 버스중앙차로제 도입과 환승체계 구축 등 교통혁신은 이 전 시장 손에 대권을 쥐어준 핵심 치적이었다. 정치권에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하기 위한 포석으로 ‘지하철 공사 통합’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지하철 공사 통합 작업 추진을 위한 인사는 2016년 단행됐다. 서울시는 2016년 6월 도시교통본부장으로 윤준병 은평구 부구청장을 임명했다. 그는 2020년 총선에서 당선증을 거머쥔 뒤 국회로 입성하기도 했다. 박원순 전 시장은 임기 초반 도시교통본부장을 지냈던 윤 의원을 지하철 공사 통합 추진의 적임자로 봤다.
윤 의원이 도시교통본부장으로 취임한 뒤 서울메트로 신임 사장이 임명됐다. 김태호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이었다. 그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5월 31일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를 출범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이었다.
초대 서울교통공사 사장으론 김태호 서울메트로 사장이 임명됐다. 그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직을 모두 경험한 인물로 통합 공사 초대 사장 적임자라는 평가를 들었다. 서울교통공사 영문명은 서울메트로로 선정됐다. 1만 7000여 명의 직원 규모를 자랑하는 ‘공룡 공기업’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 출범 이면엔 여러 물음표가 달렸다. 통합에 실익이 있느냐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기존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공동으로 관리하던 환승역에 근무하는 인력을 효율적으로 개편할 수 있다는 것 외엔 뚜렷하게 나타난 장점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단행할 경우엔 대규모 교통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하기 전 우형찬 서울시의원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한 뒤 향후 10년간 1조 1140억 원 플러스 알파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하철 역사 간판 교체 및 기업 이미지 통합 작업에 불필요한 예산이 투입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우 시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여러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채 초대 사장이 임기 중 사임하는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김태호 사장이 친인척 채용 논란에 휩싸인 것. 2019년 9월 30일 감사원은 서울교통공사 사장 해임을 권고했다. 김태호 사장은 2019년 12월 사표를 제출했고, 서울시는 이를 수리했다.
2020년 4월 1일 2대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취임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다. 김 사장은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 기획조정실장, 행정1부시장을 거친 ‘늘공’ 출신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앞서 언급했던 윤준병 의원과 흡사하다. 김 사장의 임기는 2023년 3월 31일까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지하철 이용률이 급감하던 상황에서 김 사장을 서울교통공사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화되며 서울교통공사 경영난은 심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사장을 임명한 박 전 시장이 2020년 7월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2020년 서울교통공사 적자가 1조 원을 넘은 가운데 경영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마땅치 않았다. 시장 유고 상황에서 서울시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서울교통공사에 조 단위 재정 투입을 할 명분도 희미해졌다. 서울교통공사는 자금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부도 위기를 맞았다.
김 사장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인 2020년 8월 서울교통공사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서울교통공사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일상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요소로 상존하고 있다. 2021년 적자폭은 2020년보다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1년 4월 오세훈 신임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엔 서울교통공사 ‘경영 합리화’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경영난 해결을 위해 무임승차 손실분 보전 혹은 이용요금 인상 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오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오 시장은 5월 17일 취임 한 달 기념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교통공사에 굉장히 많은 적자가 누적됐지만, 이는 경영 합리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비롯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시민이 많기에 교통요금 인상을 검토하기에 좋은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 이용 요금 인상은 서울교통공사가 경영 합리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적자를 줄이는 게 전제돼야 가능하다. 시간과 여유, 기회를 주고 서울교통공사 경영 합리화 진척 사항을 보면서 요금 인상 여부를 추후에 결정하겠다.”
서울교통공사 입장에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발언이다. 서울시는 올해 1000억 원 규모 재정을 서울교통공사에 투입할 예정이지만, 이 정도 재정이 투입되더라도 서울교통공사 손실분은 1조 60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교통공사의 자구안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력 감축과 더불어 심야 운행 중단, 공사 명의 자산 매각, 역명 병기 사업 확대 등이 강력한 자구책 일환으로 꼽힌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김상범 사장 역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취임식을 생략했던 김 사장은 취임 1주년을 맞은 날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로 직접 나가 서울교통공사 캐릭터 기념품을 직접 판매했다. 기념품 판매 행사는 ‘기념품을 팔아서라도 적자를 메워야 한다는 절박함과 재정 현실을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행사의 효과는 조 단위 적자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김 사장 취임 1주년을 맞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했다. 박 전 시장이 임명한 김상범 사장과 오세훈 신임 서울시장이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셈이다. 오 시장은 서울교통공사가 자구책을 통해 자생하지 않으면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사장은 서울교통공사 출범 당시 목표인 ‘지하철 혁신’이 아닌 ‘공사 자체 혁신’을 추진해야 할 외통수에 몰렸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사장을 두고 ‘공무원 출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비상 상황 아래서 서울교통공사는 허리띠를 꽉 졸라매야 할 상황에 놓였다”면서 “공사 자체가 대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관료 출신 사장이 ‘미움 받을 용기’를 통해 위기를 수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이제 서울교통공사 앞에 놓인 과제는 생존의 문제”라면서 “공사 통합에 대한 당위성 증명보다 교통요금 인상 없이 수익성을 높이는 내부 혁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상범 사장은 지하철 재정난을 시민에게 알리기보다 공사의 재무 건전성을 어떻게 개선하고 있는지 알릴 필요가 더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 당기순손실 1조 1137억 원을 기록했음에도 직원 평가급으로 1750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1만 7000여 명 직원에게 평가급으로 1인 평균 1000만 원을 지급한 셈이었다. 김상범 사장이 직접 나서 ‘재정난’을 호소한 상황과 대조된다. ‘방만 경영 논란’을 피할 수 없는 형국이다. 서울교통공사 직원 평균 연봉은 약 7000만 원을 넘어섰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 연봉은 2020년 예산안 기준 1억 8167만 원으로 서울시가 출자·출연한 25개 기관장 중 두 번째로 높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