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7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 513회는 '귀촌 일기,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니겠니' 편으로 꾸며진다.
산길과 물길 따라 새로운 보금자리에 안착한 이들이 있다. 자연과 함께 인생 2막을 연 달콤 쌉싸름한 부부들과 그들이 반한 자연 속 삶으로 함께 빠져본다.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삶의 자리를 옮긴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 대게는 인연 따라 산촌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쌓으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꾼다는데.
다양한 지역의 맛이 섞여 만들어진 더덕구이와 황태튀김, 내 멋대로 원하는 재료를 올리면 뚝딱 완성되는 명이모둠말이, 만들어 먹는 방식이 지역마다 다른 미역줄기무침과 미역줄기볶음까지. 오늘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귀촌 후 인생 2막을 연 사람들의 특별한 한 상을 만나본다.
약 해발 750m 고지에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 경북 군위에 자리한 화산마을은 현재 마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귀농 귀촌 인구일 정도로 주민들 중 귀농 귀촌 인구가 차지라는 비율이 많다.
그중 남편 따라 내려와 귀촌 4년 차가 된 서경애 씨는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구름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 귀촌 생활을 시작했을 때 경애 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외로움. 다행히 주변의 비슷한 사연을 가진 귀촌 이웃들이 점점 늘며 경애 씨의 요즘은 신나는 일들로 가득하다. 밭일하다 지칠 때쯤 이웃 언니, 동생에게 향해 늘 맛있는 걸 함께 만들어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쑥과 취나물을 더해 한소끔 찌면 산에서 맛볼 수 있는 설기떡 완성이다. 하지만 산에 사는 사람이 이곳에서 나는 산물로만 요리해 먹는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시내에 있는 시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1시간. 그래서 이곳은 저장 음식이 발달했다. 사다 둔 멍게를 젓갈로 만들어 조금씩 꺼내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게다가 여러 지역에서 모인 귀촌인들 손맛 덕에 만들어진 새우완자쑥국 그리고 더덕구이와 황태튀김의 조화까지 이곳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귀촌인들이 차린 한 상을 만난다.
청정한 물줄기 가득한 그림 같은 풍광의 이른 아침부터 계곡으로 등장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는 김병철 씨가 있다. 오늘 1급수에서만 잡히는 고기들을 잡아 보겠다며 넣어두었던 통발은 허탕을 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이곳 자연에서의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 대신 때로 예상치 못한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물고기 대신 길가에서 발견한 돌나물을 가지고 돌아가면 아내는 그날그날 달라지는 식재료 따라 새로운 요리를 준비한다.
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오는 야영객들을 능숙하게 맞이하는 이들은 원래 도시 토박이들이었던 동갑내기 귀촌 5년 차 부부. 직장 생활이 힘들었던 남편의 귀촌 결단에 묵묵히 따라나선 혜연 씨는 귀촌 후 더 다양한 요리에 도전을 하게 됐다.
아내 혜연 씨가 요즘 흠뻑 빠진 코다리에 차전초를 넣고 이들 부부의 최고의 보양식인 차전초코다리찜을 만든다. 게다가 같은 요리도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혜연 씨의 방식대로 명이나물말이에 관자, 버섯 등 있는 재료를 모두 올려 명이모둠말이를 만든다.
처음엔 이곳 생활이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내가 더 사랑하게 된 이곳, 앞으로 함께 할 인생 2막이 더 기대되는 부부의 하루를 함께 한다.
바다 내음을 맡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이 다 잊힐 것만 같은 바다. 그중에서 경북 울진의 바다에는 이맘때 돌미역이 가득하다. 한창 돌미역 채취로 바쁜 사람들 사이로 유독 알콩달콩 붙어 서로를 챙기는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20년 전 정년퇴직을 한 후 도시 생활을 접고 남편의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귀어 생활은 꿈도 꿔보지 않았지만 몸이 불편한 시숙을 돌보기 위해 남편을 따라 귀어한 김성복 씨. 쉽지만은 않은 세월, 울진 바다의 맛과 시간이 덧대어 이제 이곳에 끈끈한 정이 생겼단다. 능숙한 솜씨로 오늘도 남편의 입맛을 한눈에 사로잡을 음식을 만든다.
갓 따온 미역을 말리는 것도 일이다. 고된 일이 끝나면 버릴 데 하나 없는 미역이 무궁무진한 변신을 시작한다. 미역귀로는 달콤한 간식인 미역귀부각을 만든다. 도시에서 살 때는 미역볶음만 알았던 성복 씨는 이곳에서 미역무침까지 배워 날마다 먹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어 먹는단다. 게다가 남편이 직접 잡은 주꾸미를 넣고 만든 주꾸미 전복죽과 도다리 미역국까지 푸짐하게 차린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이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가득 물든다. 고생한 아내에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은 드넓은 바닷가에서 노년을 맞은 부부의 삶으로 들어가 본다.
집 앞 정원에 고추 모종을 심느라 분주한 부부. 자세히 보니 그 모양새가 어째 능숙해 보이진 않는다. 구례로 귀촌한 지 6년 차가 된 주영애 씨 부부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최근에야 뒤늦은 신혼을 맛보고 있다.
늘 마음 한편에 시골 찻집 주인이 되는 모습을 품고 살았다는데 이제야 그 꿈을 이뤄 함께 가장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자연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먹는 것도 더 정성을 들인다. 가장 먼저 팔각과 과일들을 넣고 오향족발을 만든다.
붙어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지다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가끔 부딪히는 일도 있지만 실은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는 부부. 해독에 좋은 다슬기로 다슬기 국수를 만들고 두릅과 재첩으로는 전을 부친다. 사실 이곳 생활의 또 다른 별미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이다.
오늘은 구례로 귀농을 준비 중인 사람들이 부부를 찾았다. 준비생들에게 이들 부부는 든든한 귀농 선배이자 조력자이다. 게다가 오늘은 도시에서 생활 중인 큰딸까지 찾아와 정성 가득한 한 상 앞에 함께하며 행복하기만 할 부부의 앞날을 응원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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