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컨설팅 업체 에이치엑스피 설립…현대그룹 “개인 자산 관리 위한 것, 그룹과 거래 없어”
#현대그룹 “개인 자산 관리 위한 것”
정지이 전무가 올해 2월 에이치엑스피라는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에이치엑스피는 현대그룹의 지원을 받지 않고, 정지이 전무가 독자적으로 설립한 회사로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현대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에이치엑스피 지분은 없다.
현재 에이치엑스피의 등기임원도 정지이 전무가 유일하다. 이우일 현대그룹 상무가 에이치엑스피 설립 직후 감사에 이름을 올렸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에이치엑스피의 사업목적은 △경영자문 및 컨설팅 업무 △시장조사 및 경영상담 업무 △인수합병(M&A)과 관련한 재무자문 업무 및 자금 유치 업무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심의 업무 등이다. 대부분 경영 컨설팅 업체가 수행하는 업무들이다.
대기업 총수 자녀들이 컨설팅 업체에서 경영 수업을 받는 사례는 적지 않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도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한 바 있다. 그러나 오너 일가가 직접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활동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법인등기부에 등재된 에이치엑스피의 사무실 위치는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K 빌딩 4층이다. 그러나 일요신문이 K 빌딩을 방문해보니 4층에는 병원만 있을 뿐 에이치엑스피의 사무실은 보이지 않았다. K 빌딩 관리사무소 직원도 “에이치엑스피라는 회사가 입주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현대그룹 측은 에이치엑스피가 정지이 전무 개인 자산 관리를 위한 회사이고, 현대그룹과 거래 관계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는“(에이치엑스피가) 현대그룹 계열사를 컨설팅한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지이 전무의 보폭 커질까?
현대그룹 오너 일가 3세 중 정지이 전무는 장녀로 가장 연장자일 뿐 아니라 직책도 높고 보유 지분도 가장 많다. 1977년생인 정지이 전무는 2004년 현대상선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2005년 현대상선 과장에 올랐고, 2006년에는 현대유엔아이 실장(상무)을 거쳐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2018년 현대유엔아이와 현대엘리베이터의 물류자동화 부문을 합병한 법인 현대무벡스가 출범하면서 정 전무의 소속도 현대무벡스로 바뀌었다.
현재 현대그룹 지주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는 현대네트워크로 지분율은 10.61%. 현대네트워크의 2대주주가 정지이 전무다. 정 전무는 7.8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동생인 정영이 현대무벡스 차장과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는 각각 0.23%, 0.58%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무벡스의 경우에도 정지이 전무가 지분 4.36%를 보유 중이고, 동생인 정영이 차장과 정영선 이사의 지분율은 각각 0.14%, 0.19%다. 이처럼 삼남매 중 정지이 전무만 유의미한 수준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무벡스는 지난 3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정지이 전무는 2018년 임당장학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보폭을 넓혔다. 임당장학문화재단은 현정은 회장의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과 부친 고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이 2005년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임당장학문화재단 설립 후 이사장을 맡아온 김문희 명예이사장이 2017년 12월 퇴임한 뒤 후임으로 정지이 전무가 취임한 것이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나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등 오너 일가가 그룹의 재단법인 이사장을 맡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재단법인 이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서현 이사장과 최기원 이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국세청 공익법인결산서류공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임당장학문화재단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37%를 갖고 있다.
정지이 전무는 오랜 기간 임원으로 근무했지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많지 않다. 2000년대 중후반 현정은 회장이 대북사업을 위해 방북할 때 몇 차례 동행했지만 이후 대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대중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