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합의서 체결 뒤에도 일부 주민 ‘등급 판정 기준·기존 비대위 대표성’ 반발
지난 6월 14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부영건설 모델하우스 앞 40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부영주택, 동광주택, 광영토건, 부강주택관리 등 부영 계열사 측에 항의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4월 부영애시앙 화재로 피해 입은 입주민들 가운데, 부영과의 합의안에 반대하는 100여 세대를 대표해 나온 ‘올바른 보상을 위한 재협상 비상대책위원회(재협상 비대위)’에 참여한 주민들이다.
이의백 재협상 비대위원장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기존 비대위를 전적으로 믿었고 그들과 협상하던 부영주택에 감사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나는 기존 비대위의 의혹과 부영의 이중적 행태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성명서에는 "보상등급이 아니라던 청소등급은 보상등급으로 바뀌었고, 미리 자비로 청소하고 들어간 수십 세대는 낮은 등급을 받으며 합리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주장이 담겼다. 등급 판정 당시 C를 받고도 해당 주민이 항의해서 D등급으로 바뀌거나, 등급 판정 고지가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표시가 돼 있다는 등 판정 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도 포함돼 있다.
등급은 부영 담당자, 손해보험사 담당자, 청소업체 담당자가 판정한 청소 견적서에 따라 세대마다 매겨진다. A등급은 오염도 경미, B등급은 중간, C등급은 심각, D등급은 청소 불가로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세대에 해당한다. 재협상 비대위 한 관계자는 “집 견적이 B등급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하지 않았고, 청소등급대로 보상액이 나눠진다는 것도 몰랐다. 최종합의서가 나온 뒤 부영 측에 등급을 물어보고서야 알았다”며 “부재중이라 집 문을 열어주지 못했는데 제멋대로 A등급이라고 판정된 세대도 있다”고 토로했다.
#바뀐 합의서…보상금 변경 사유는?
재협상 비대위는 구체적으로 남양주시 부시장이 입회인으로 참석했던 5월 27일 기존 비대위와 부영 측 간 체결된 최종합의서의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최종합의서 체결에 앞서 지난 5월 19일 기존 비대위는 부영과 합의했다며 입주민들을 상대로 추인식을 열고 잠정합의안을 발표했다.
가재도구 손망분에 대한 피해 보상 금액으로 A·B등급 500만 원, C등급 1200만 원, D등급 3700만 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입주민들은 찬성했다. 김 아무개 씨는 “잠정합의서 내용이 기존 비대위가 처음 제시한 보상 금액보다 낮아 아쉬웠으나 부영과 합의안을 이끌어냈다는 데 안심했다”고 했다. 5월 21일 잠정합의안이 부영 이사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5월 27일 기존 비대위가 발표한 최종합의서는 잠정합의안과 달랐다. 우선 A·B·C등급 보상 규모는 같은데 D등급만 5700만 원으로 올랐다. D등급만 이주비와 숙박비 제공, 관리비 면제 등 혜택도 받게 됐다. 재협상 비대위는 “D등급을 받은 세대만 합의 결과(3500만→5700만 원)를 사전에 알고 비밀서약서까지 썼다는 서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의 김 씨는 경기도 국민청원에 “단순 청소등급이 보상등급으로 둔갑하면서 C등급 중 D등급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억울한 세대가 발생했다. D등급으로 책정됐지만 C등급보다 피해가 적은 세대도 있다. 억울함으로 치부하기엔 C등급과 D등급의 4500만 원이라는 차액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재협상 비대위는 최종합의서에 잠정합의안엔 없었던 ‘독소조항’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바로 △민형사상의 이의제기는 물론 국가기관이나 언론에 민원이나 제보를 할 수 없고 △이를 어길 시 배액을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추인식에서 잠정합의안을 발표한 당시 기존 비대위 측은 해당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입주민들은 뒤늦게 최종합의서로 확인했다는 것이 재협상 비대위 다수의 주장이다.
재협상 비대위는 최종합의서 체결 주체의 대표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합의서에는 ‘을은 화재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파트 입주민과 수분양자로부터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이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이 있으나, 입주민들은 협상장에 들어간 입주민 대표자들에게 어떠한 권한도 위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 비대위원장(1차 비대위원장)이자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회장으로서 협상장에 들어선 입대의 회장은 입대의를 대표하는 직인 없이 합의서를 체결했고, 이어 선출된 2차 비대위원장 역시 주민 동의 없이 취임했기 때문에 입주민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 재협상 비대위는 고소와 집단소송을 예고하며, 부영과의 대화와 재협상을 촉구했다.
#부영 측 “14일 내 합의 동의서 제출하라”
최종합의서 체결 후 부영은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속도를 냈다. 6월 9일 부영은 입주민들에게 최종합의 내용과 함께 “6월 3일까지 합의금 수령 및 합의 동의서, 은행명, 계좌번호 등 합의금 수령에 필요한 서류 등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아직까지 합의금 수령 및 합의 동의서 등 위에 기재한 제반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세대는 14일(합의서에 의한 지급 시한)까지 제반 서류를 제출해 달라”며 “위 기한까지 제반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세대들은 위 합의서에 따른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재협상 비대위는 이에 대해 부영이 이미 합의서에서 정한 시한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합의서 중 ‘을이 대상세대의 피해보상금 수령 및 합의동의서 등 현황을 책임지고 청구해 합의서를 체결 후 7일 이내 제출하면 갑이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기한을 지났음에도 합의를 종용한다는 주장이다. 부영이 기간을 미루면서도 동의서를 받아내려는 이유에 대해 “수사기관에 제출할 자료로서 동의서를 많이 만들려는 의도”라고 재협상 비대위는 추측했다.
이와 관련, D등급 대표를 포함한 기존 비대위는 입주민들이 애초 청소등급을 알고 있는 등 합의 과정이 투명했고, ‘독소조항’은 본래 합의 과정에서 따라다니는 조건이라는 입장이다. D등급 보상금이 높아진 이유로는 “3700만 원으로는 집 복구가 불가하고, 소송으로 더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송 과정이 지치는 만큼 2000만 원을 더 인상하는 것으로 합의봤다”고 설명했다.
부영건설 측은 입주민들 주거 안정을 위해 입주민 측에 숙식비 총 7억 4500만 원, 상가 임차인들에 임대료와 관리비(6개월 분), 긴급생계비용 총 30억 원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또 D등급 세대를 위해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 단지 내 공가세대를 제공해 언제든 이사해 거주할 수 있도록 했고 이사비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부영건설 관계자는 “비대위가 원하는 최종 금액을 수용한 것으로, 17일 기준 총 361세대 중 271세대가 동의했다”며 “전사적으로 빠른 복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빠른 시설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등급은 비대위에서 선정한 손해사정인과 청소업체에서 한 것이고 동의서를 내라는 안내문은 합의 절차에 따른 사항으로 강제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