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사건 “억울하게 누명” 재심 수리…같은 날 장손녀 급사, 딸과 4살 손녀는 투신 ‘가정사 미스터리’
일본에서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998년 7월 25일, 와카야마현 마을축제에서 제공된 카레를 먹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복통을 호소했다. 67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그중 4명이 숨진 사건이다.
최초엔 식중독에 의한 사고로 판단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독극물 ‘아비산(비소)’이 검출돼 살인사건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사건 2개월 만에 전직 보험영업사원인 주부 하야시 마스미가 용의자로 체포됐다. 검찰에 따르면 “마스미는 평소 주민들과 잦은 불화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진다. 마스미는 2009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상황 증거만으로 마스미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유명 저널리스트 타하라 소이치로는 “비판을 무릎 쓰고 말한다. 본인이 혐의를 부인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다. 동기 또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형 판결을 확정해도 좋은 것인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스미 사형수도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9일 와카야마 지방법원에 ‘억울하다’며 재심 청구를 해 수리된 사실이 밝혀졌다. 마스미 사형수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날 ‘비극’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랑해 마지않던 손녀 고코로(향년 16세)가 사망한 것이다.
“한번은 딸과 사위가 장손녀를 데리고 마스미의 면회를 왔대요. ‘눈이 동글한 귀여운 아이였다’고 마스미가 엄청 좋아했죠.” 마스미의 남편 겐지 씨는 이렇게 인터뷰했다. 손녀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마스미는 구치소에서 직접 손녀의 이름도 지어줬다”고 한다. 한자 획을 전부 조사하고, 운수 좋은 이름을 열심히 생각한 끝에 ‘고코로(心桜)’라 지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사춘기 소녀가 됐다.
6월 9일 오후 2시경. 자택으로 귀가한 마스미의 딸 A 씨는 쓰러져 있는 장녀 고코로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돌아오니 딸이 의식이 없다. 검은 핏덩어리 같은 걸 토했다.” 고코로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사였다. 경찰은 “시신의 온몸에서 멍 자국을 확인했다”며 “학대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A 씨와 차녀는 간사이공항 인근 바다에 투신한다. A 씨는 다발성 손상으로 숨졌으며, 아이는 익사했다. 경찰은 “A 씨가 자동차에 차녀를 태운 후 간사이국제공항 연락교로 이동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 모녀가 목숨을 잃은 날, 때마침 TV에서는 “마스미 사형수의 변호인이 와카야마 지방법원에 재심 청구를 한 것”이 보도되고 있었다. 동시에 딸 A 씨의 사망 소식이 더해지면서 세간의 이목은 마스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한편, 사건 직후 행방불명됐던 A 씨 남편은 경찰 수색 결과 와카야마항 근처에서 발견됐다. 당시 “남편은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매체 ‘주간여성’에 따르면 “남편은 경찰 조사에서 ‘약을 복용했지만 죽지 못했다’며 털어놨다”고 한다. 일견 딸을 학대한 부친이 죄의식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간여성은 “이번 사건에는 좀 더 복잡한 가정사가 얽혀 있다”고 덧붙였다.
시간을 23년 전으로 거슬러 가본다. 1998년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으로 마스미가 체포됐다. 남편 겐지 씨도 보험금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가운데, 장녀 A 씨를 비롯해 남겨진 3남매는 양호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이후 A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취직했으며, 20살에 첫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
“지주이자 부유한 집안이었던 시부모는 며느리가 될 A 씨가 사형수 딸임을 알자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고, 2005년 태어난 아이가 마스미의 장손녀 고코로였다. 하지만 부부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코로가 초등학생이 될 무렵 두 사람은 이혼, 얼마 가지 않아 A 씨는 재혼했다.
새아버지가 들어오면서 A 씨의 가족관계는 꼬이기 시작한다. 그즈음 아동상담센터에는 ‘고코로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아동상담센터에 따르면 “2013년 학대 통보가 들어와 부모와 면담한 결과, ‘다시는 학대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누가 학대했느냐다. 고코로의 중학교 동창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여동생이 생기니까 돌봐야 한다’며 고코로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뒀다”고 회고했다. 이후 고코로는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동창은 “중3 때 우연히 동네 슈퍼에서 만났는데 살이 많이 빠져서 놀랐던 적이 있다”면서 “당시 고코로가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 역시 이혼한 남편의 아이라서 그런 거겠지’라고 우울해했다”고 덧붙였다.
동네 주민은 “A 씨가 항상 빨간 차를 몰고 다녔으며 조수석에는 남편과 작은딸이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볼 때마다 화목한 가족이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A 씨와 큰딸 고코로가 함께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 매체 ‘주간신초’는 “경찰이 아직 누가 고코로를 학대했는지 특정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서는 “입원 중인 A 씨 남편의 증언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와 관련, 겐지 씨는 “‘부모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이 됐다’며 원망할 법도 한데, 우리 딸은 그렇지 않았다”며 “올곧은 딸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않는가. 혹여 경찰이 거짓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일까 두렵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한 네티즌은 “23년 전 사건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인생도 송두리째 바뀌었다”며 “그 사건만 없었어도 A 씨는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른다”고 피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딸을 학대한 사람이 엄마인지 계부인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섣불리 말할 순 없지만 범죄는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