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사들 연장근로수당 못 받고 폭언·폭행당해 ‘모멸감’…삼환기업 측 “숙직자료 보내달라 했지만 못 받아”
최용권 전 삼환기업 회장과 삼환기업에 대한 진정서 및 고발장이 지난 5월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접수됐다. 고발인인 조 아무개 씨는 최용권 전 회장 등으로부터 당직·숙직에 따른 연장근로수당 1억 2500만여 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조 씨는 2000년 7월 삼환기업 총무부 운전직 직원으로 입사, 고 최종환 삼환기업 명예회장 수행기사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2008년 10월부터 최 명예회장 장남 최용권 당시 회장의 지시로 최 명예회장 일가의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당직·숙직 근무에 들어갔다. 당시 한남동 자택에는 최 명예회장 일가 5가구 1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숙직·당직 근무는 정상 업무시간이 끝나고 한남동 자택 기사 대기실에서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일하는 업무였다. 최 전 회장 가족 구성원이 늦게 외출하거나 개인운동을 나갈 때 운행을 했고,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회장 일가가 새벽에 호출을 하면 어디든 모시러 가야 했다. 또한 가족들의 입·출입 상황을 시간까지 체크해 수시로 최 전 회장에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숙직 근무자는 인터폰 호출에 항시 대기상태로 있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숙직 근무를 해도 다음 날 제대로 된 휴식이 부여되지 않았다고 조 씨는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회사는 숙직 근무 후 바로 퇴근하거나 오전업무만 하는데, 조 씨 등 최용권 전 회장 일가 수행기사들은 다음 날도 정상업무를 했다는 것이다.
당초 숙직·당직 근무를 서는 수행기사는 4명 정도였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숙직근무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조건에 일을 그만두는 수행기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결원이 생기면서 숙직근무 순번이 빠르게 찾아왔고, 조 씨는 한 달에 10번 넘게 숙직·당직 근무를 서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일을 시켰다. 삼환기업 재직 20년 동안 아이들의 초·중·고교 입학·졸업식 한번 못 가봤다. 정작 우리 집안일에는 전혀 신경을 쓸 수 없어 가정불화까지 생겼다. 건강도 나빠져 한 차례 입원했었고, 지금도 병원진료를 받고 있다”며 “삼환기업 본사 비서실과 총무부 등에 근무환경 개선과 숙직·당직 수당 지급을 요청했으나, 곤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고 토로했다.
최종환 명예회장은 건강이 악화돼 2007년과 2009년, 2011년 4차례에 걸쳐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조 씨는 최용권 전 회장의 지시로 입원기간 내내 입원실에서 숙식하며 최 명예회장을 보살폈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을 비롯한 가족 누구도 조 씨를 챙겨주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최용권 전 회장이 부당한 인사 및 폭언, 폭행 등 ‘갑질’을 했다고 조 씨는 주장한다. 조 씨는 2009년 차량에 이상이 생겨 최 명예회장에 보고하고 차량 수리를 맡기러 AS센터를 방문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근무지 무단이탈’이라며 조 씨에게 감봉 10호봉의 징계가 내려졌다. 삼환기업에서 말단 5급 사원을 감봉 10호봉 중징계를 내린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징계위원회나 소명의 기회도 없었다. 조 씨가 항변했지만 회장 비서실에서도 ‘미안하게 됐다’ ‘도와줄 수가 없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조 씨는 “한번은 내실로 올라오라는 최용권 전 회장의 호출이 있었다. 최 전 회장이 나를 보자마자 ‘미국에 사는 최 명예회장 사위가 서울에 왔는데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며 골프채를 휘둘렀다. 놀라서 피했는데 골프채에 벽이 움푹 파였다. 그러자 폭언을 하면서 몇 차례나 어깨와 가슴 등을 찌르고 가격했다”고 회고했다.
최 전 회장 일가를 수행한 복수의 기사들은 최 전 회장이 수시로 폭언과 폭행 등 갑질을 행했다고 증언했다. 수행기사들이 대기실에서 인터폰을 늦게 받거나 응대를 제대로 못하면 나무 막대기 등으로 때리고 “덜떨어진 놈들” “너희는 인간취급을 해줄 수가 없다”는 등의 참기 힘든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폭언은 운전 중에도 계속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씨와 함께 일했던 한 수행기사는 “수행기사 A 씨의 경우 인터폰을 잘못 받는 실수를 했다. 그러자 최용권 전 회장이 인터폰 수화기를 100번 들었다 내렸다 하도록 시켰다. 또한 집으로 불러 현관에서 1시간 동안 무릎 꿇고 있도록 했다.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끼도록 한 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수행기사도 “조 씨를 비롯해 삼환기업에서 오래 일한 수행기사들이 최 전 회장에게 수없이 많은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과거 언론 등을 통해 최용권 전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폭언을 서슴지 않는 ‘반인권 황제경영’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당시 회사의 부장은 최 전 회장에게 맞고 고막이 찢어져 청각장애로 고생했고, 또 다른 임원은 서류철로 뒷머리를 얻어맞고 목을 다쳐 2개월 이상 병원 치료를 받다 결국 사직했다는 등의 증언이 나왔다.
조 씨를 비롯한 수행기사들도 최 전 회장에게 비슷한 폭행과 폭언으로 고통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숙직·당직 근무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은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9월 최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자택 숙직 근무가 없어지리라 생각했지만, 숙직·당직 근무는 6년간 더 이어졌다. 2018년 9월부터는 오후 9시까지 당직근무만 실시하는 구조로 변경됐다. 이때 조 씨는 삼환기업에서 최 전 회장 차남 최동욱 대표가 대표이사로 있는 우성홀딩스로 소속이 변경돼, 지난해 9월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업무를 이어갔다. 약 12년간 최종환 명예회장 일가를 수행해온 셈이다.
조 씨는 지난 2월 최 전 회장 측에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조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서와 고발장을 제출했다. 조 씨와 함께 일한 다른 수행기사 3명도 마찬가지로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고발에 함께 참여했다. 근무기간에 따라 체불액에 차이가 있었는데, 이들이 받지 못한 액수도 총 1억 7000만여 원에 달했다.
고발장을 접수 받은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관계자는 “고발건에 대해 조사 진행 중이라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추가적으로 법적 검토를 한 뒤 검찰 지휘를 받든, 검찰에 송치하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삼환그룹 관계자는 “조 씨가 2년 전쯤 숙직·당직 근무 수당을 요청했다. 이에 숙직 세부자료를 보내주시면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씨는 자료를 동료 기사가 분실했다고 답했다. 이후 조 씨가 연장근로수당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고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조 씨는 “과거 숙직 근무 세부자료는 동료 기사가 분실했다”면서도 “어느 시점에 최용권 전 회장이 기사 대기실에서 작성해온 근무일지·운행일지 등을 전부 수거하고, 앞으로는 일체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업무상 필요하다고 하니까 칠판을 주면서 ‘노트에 적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적고 지우라며 기록을 못하게 했다”고 반박했다.
일요신문은 고용노동부 피고발건과 ‘갑질’ 의혹 등에 대한 최용권 전 회장 측 입장을 들어보려 했다. 먼저 최 전 회장이 사는 서울 한남동 자택을 찾았으나 만날 수 없었다. 장남 최제욱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우성개발로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최용권 전 회장과 최제욱 대표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편 최용권 전 회장은 2012년 삼환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최 전 회장은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거액의 사업자금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와 계열사를 부당지원해 183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삼환기업은 이후에도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2016년 10월 소액주주들의 주도로 다시 한 번 법정관리에 돌입, 2018년 5월 SM그룹에 630억 원에 매각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