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최대주주 등극 과정 ‘헐값’ 유상증자·스톡옵션 논란…소액주주들 본사 앞 1인시위 진행
2020년 5월 4일 경영진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주식거래가 정지됐던 신라젠은 지난해 11월 한국거래소로부터 1년의 개선 기간을 부여받았다. 거래소는 거래재개를 위한 경영정상화 요건으로 △경영진 전면 교체 △대규모 자본금 확보 △지배구조 개편 등을 제시했다. 신라젠은 두 차례 유상증자로 1000억 원의 실탄을 확보해 거래소가 요구한 500억 원(신규 최대주주 지분율 15%) 이상의 투자 유치 요건을 이행했다. 지난 13일 임시주총과 이사회 의결을 거쳐 경영진도 교체했다.
신라젠의 새로운 최대주주인 엠투엔은 지난 5월 31일 600억 원 규모(1875만 주)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라젠 지분 20.75%를 확보했다. 엠투엔은 지난 7월 8일 정정된 증권신고서를 통해 1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결과를 밝혔다. 엠투엔은 조달 자금 중 600억 원을 신라젠 인수자금인 KB증권 관련 브릿지론 상환자금으로 활용하고, 200억 원을 신라젠 관련 추가 투자를 위한 인수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신라젠 거래재개 가능성이 커졌지만 일부 소액주주의 우려는 여전하다. 3600여 명의 신라젠행동주의주주모임은 여의도 신라젠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이성호 신라젠행동주의주주모임 대표는 “처음 6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결정됐을 때에는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이라 소액주주들이 환영했다”면서도 “이후 또 다시 4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헐값에 추진했는데, 이는 그간 고통 받은 주주들을 외면하고 ‘뉴신라젠투자조합’의 배를 불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대주주가 변경된 신라젠은 지난 7월 14일 운영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400억 원 규모의 추가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제3자배정 대상자는 뉴신라젠투자조합1호다. 소액주주들은 ‘뉴신라젠투자조합’에 서홍민 리드코프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가족과 측근이 포함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엠투엔 최대주주인 서홍민 리드코프 회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처남이다. 김 회장의 부인이자 서 회장의 누나인 서영민 씨는 지난해 9월 엠투엔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엠투엔이 자회사 엠투엔바이오를 설립하고 미국 신약개발 전문업체 GFB를 인수하며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직후다.
신라젠이 최근 결정한 두 차례 총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주당 발행가액은 3200원이다. 거래정지 중인 신라젠 주가가 1만 21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경우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소액주주들의 동의가 필요치 않고 주식 발행 절차가 간단하다. 오는 11월 개선기간 내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한 투자 유치가 절실했던 신라젠에 필요한 선택지였지만,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신주가 발행되면서 기존 주주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신라젠은 공시를 통해 “매매거래가 정지된 이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와 임원의 구속기소, 소송 합의 등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다”며 신주 발행가액 산출 근거를 설명했다. 신라젠은 “기준주가를 산출할 수 없어 미래현금흐름할인모형(DCF Model)을 이용해 평가한 기업가치를 기준주가로 삼기로 결정했다”며 “외부평가기관(회계법인)은 지난 3월 31일 기준으로 회사의 상업화 성공확률 등을 고려해 산출한 기준 가격 범위는 2057~3200원”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신라젠과 엠투엔이 신라젠 기업가치를 얼마로 평가했는지다. 유증 발행가액 3200원에 신라젠 상장주식 수 9037만 주를 반영하면 신라젠의 기업가치는 2891억 원이다. 거래정지 직전 시총 8666억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반면 신라젠 관계자는 “파이프라인 현재 단계로 가치를 산정했는데, 통상 임상 2상 성공 가능성을 40%, 3상 가능성을 30%로 본다”며 “(엠투엔이) 시가총액을 2000억 원에서 3000억 원 사이로 평가했고, 이를 역산하면 (펙사벡 임상 성공 등) 상업화 성공시 기업가치를 2조 원으로 본 것”이라고 전했다.
소액주주들은 신라젠이 지난 13일 임시주총을 통해 임직원에 부여한 스톡옵션도 지적했다. 저가 스톡옵션 부여가 고가에 주식을 매수해 보유 중인 소액주주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시장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은 지난 7월 말 서 회장과 김상원 신라젠 신임 대표에게 행사가격 재조정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하고 신라젠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신라젠은 임직원 40명에게 총 128만 6000주의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행사가격은 4500원이다. 신라젠은 공시에서 행사가격 산정에 대해 “유상증자 결정 당시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가액을 실질가액기준으로 산정하되 현재 시점 주식의 실질가액 이상이 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라젠 관계자는 “행사가격은 낮지만 행사 조건이 까다롭다”며 “임직원이 받은 스톡옵션을 모두 행사하려면 4년이 걸리는데, (펙사벡) 임상 성공 전까지 직원들의 퇴직을 방지하고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소액주주들은 향후 추가 유상증자로 신라젠의 새로운 최대주주와 그 측근이 헐값에 지분을 늘릴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다만 앞의 신라젠 관계자는 “이번 유상증자로 거래재개까지 자금이 충분하다”며 “현재 추가 유상증자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뉴신라젠투자조합 출자자는 추후 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