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수발로 출장비 받거나 출장 간 적 없는데 ‘갔다 온 척’…“원스트라이크 아웃 징계 도입” “제도 정비” 지적
19일 시민단체 ‘NPO주민참여’에서 받은 서울 일부 지역주민센터와 구의회 공무원들의 출장기록 정보공개청구 자료에 따르면 최근까지 일부 행정기관 공무원들이 출장을 다녀온 것처럼 속여 출장여비를 부정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성산1동주민센터 공무원 A 씨는 2020년 7월부터 올 7월까지 1년여 동안 일일 4시간 남짓씩 관내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타갔다.
A 씨의 올해 출장기록을 살펴보면 ‘문서수발’ ‘환경기동반 운영’ ‘무단투기 쓰레기 수거 및 처리’ 등의 목적 출장지는 대부분 관내다. 문서 수발은 주로 마포구청에 문서를 전달하는 등의 업무인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의 출장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전 11시 30분까지,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오전 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다.
최동길 NPO주민참여 대표는 “A 씨가 문서수발을 목적으로 다녀온 마포구청에 함께 갔던 적이 있다”며 “성산1동주민센터에서 마포구청까지 걸어갈 경우 편도로 10분 내외 걸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길찾기 시스템을 통해 성산1동주민센터에서 마포구청까지 거리를 살펴본 결과 도보로 최단거리 이용 시 886m로 15분 소요된다. 또 다른 포털사이트에선 도보 이용 시 809m로 약 12분 걸린다고 나온다. 즉, 왕복 2km도 아닌 상황.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공무원 여비규정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보면 근무지 내 출장을 다녀올 경우 4시간 미만이면 1만 원, 4시간 이상이면 2만 원을 수령한다. 이때 공용차를 이용하면 1만 원이 삭감된다. 출장거리가 왕복 2km 이내면 출장여비가 아닌 다녀온 거리 동안 사용한 금액을 지급한다. 이에 따르면 A 씨가 마포구청에 문서수발 업무만 했을 경우 출장여비를 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최동길 대표는 “왕복 2km도 안 되는 거리를 출장 다녀왔는데 출장여비는 꾸준히 타갔다”며 “주민센터 측에 항의하자 마포구청 문서수발 외 다른 업무로 출장을 다녀왔다고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성산1동주민센터 측 해명대로라면 A 씨의 출장 기록에서 문서수발만 적힌 부분에 또 다른 출장 목적이 적혀 있어야 한다. 성산1동주민센터 측은 해당 사안을 알고 있는 관계자가 휴가 중인 상태로 다른 관계자를 통해 연락하겠다고 밝혔으나 답신은 오지 않았다.
비슷한 일은 서울 서대문구의회에서도 발생했다. 서대문구의회 사무국 의정팀 소속 B 씨가 출장여비 부정수령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B 씨의 출장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지난 2일 오전 9시 8분부터 오후 1시 10분까지 4시간 2분 동안 출장에 다녀왔다. 출장 결재도 완료됐다. 하지만 최동길 대표가 같은 날인 2일 오전 11시 12분 서대문구의회에 직접 찾아가 찍은 현장 사진에서 B 씨는 사무실에 있었다. 출장기록대로라면 B 씨는 해당 시각 서대문구의회에 있으면 안 된다.
B 씨뿐만이 아니다. 서대문구의회 의정팀 소속 공무원 C 씨는 출장여비 부정수령 의혹 대상으로 오르자 8월 말까지 약 3개월간 받은 출장여비를 자진반납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한 영상에서 C 씨는 시민단체 측의 ‘앞으로 이러지 마세요(출장여비 부정수령 하지 마세요)’라는 지적에 “네”라고 답했다. 이는 자신의 출장여비 부정수령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이 같은 공무원들의 근무수당 부정수령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지난 6월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 서울 노원구청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결과 상당수가 초과근무수당을 부적절하게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부평에서도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육아종합지원센터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을 속여 80여 건의 초과근무수당을 타낸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센터 아래층이나 200m, 600m 떨어진 어린이집과 인근 마트에 갈 때도 출장여비를 타냈다.
행정안전부 지방인사제도과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시행 중인 공무원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거짓으로 수당을 수령할 때 고의성이 있는 경우 100만 원 미만 소액이더라도 파면이나 정직 등 중징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공무원들의 수당 부정수령 문제는 꾸준히 발생했으며 사례는 더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인사혁신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국가기관 47곳 중 26곳에서 722명이 초과근무수당을 부당하게 챙겨 적발됐다. 직원 12명이 퇴근하면서 컴퓨터를 끄지 않고 마지막 퇴근자가 초과근무 기록을 대리 입력하는 수법으로 선거업무 식비를 챙긴 사례까지 있었다. 이 정도면 공무원 집단 윤리의식까지 마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동길 대표는 “출장여비 부정수령은 해당 공무원뿐 아니라 결재를 올린 상급자와 결재한 부서장까지 최소 3명이 가담한 범죄”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무원 근무수당 부정수령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공무원의 보수 산정 방식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한국정부학회에서 발행한 ‘지방공무원 수당 부당수령의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무원의 기본급이 낮게 측정돼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비 등의 방식으로 보수가 보충된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이 정해진 보수뿐 아니라 본인 노동 대가에 포함되는 부가적 수입까지 보수의 일종으로 인식한다는 것.
하지만 공무원이 국민들이 낸 세금을 부당수령하는 행위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합리화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수당 부당수령은 국민 세금을 도둑질한 것으로 ‘원스트라이크 아웃’ 중징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공무원 임금 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무원 수당 부정수령 문제는 고질적이다. 특히 8~9급 공무원들의 경우 특별수당을 정기적인 급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본급을 낮게 측정해 특별수당을 받아가는 형식이 아닌, 특별수당을 어느 정도 포함한 급여를 줘야 한다. 이러한 관행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거나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